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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의 언어는 시를 닮았다

아이의 말속에는 언어 그 자체의 정수가 담겨있다

by 박희성

건널목에 서 있는 어린아이와 엄마의 대화를 무심코 들었다. 아마 옷이나 신발을 사 주려고 하는 듯했다.


“…그럼 노란색으로 살까?”


“난 노란색 싫어!”


“왜애? 노란색이 어때서? 너 노란색 좋아하잖아. 노란색이 왜 싫어?”


“노란색이 태권도 데려가잖아. 엄마랑 놀고 싶은데 못 놀아서 싫어.”


아이의 뽀로통한 투정이지만 참 시적으로 들렸다. 노란 학원 버스가 자신을 데리고 간다는 이유에서 노란색이 싫다는 표현, 거기에 엄마가 무언가 사 주겠다는 제안에 뜬금없이 이용하며 곰곰이 그 숨은 뜻을 찾아야 하는 한 편의 동시를 아이는 순간적으로 만들어냈다.


아이의 언어 세계는 아직 미성숙하다. 덕분에 직선적이고 단순하다. 그래서 한 번 들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한다. 어설프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아직 만들어지는 중의 유리잔과 같다. 물렁하지만 환한 빛을 머금어 뜨겁고 빠르게 다른 언어들을 취하며 점차 색을 입혀간다. 색을 입히기 전의 아이의 아름다운 단어들은 자세히 들어보면 시적으로 함축하고 은유한 단어들이다. 아는 단어가 적다 보니 그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말을 전하려 노력한 덕분이다.


이런 아이의 언어는 시인의 노력과 닮았다. 시인들이 고민해서 만들어낸 한 조각의 아름다운 단어는 시로 태어난다. 한 마디를 전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수 백가지의 단어를 고르고 골라 하나의 단어에 의미를 담고 시를 만든다. 시인뿐만이 아니다. 평소 살아가는 우리도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돌리고 돌려 한 마디를 겨우 건네기도 한다. 사랑한다는 말이거나 고맙다는 단순한 말이라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 시인이 된 것 마냥 촘촘한 그물망 속을 뒤져보며 내 말의 의미를 담는다. 상대가 쉽게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곰곰이 음미하면 떠오를 수 있는 단어를. 이런 어려운 말을 전하고 나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고 뿌듯해 하지만 사실 우리는 결국 어린아이 시절을 벗어나지 못했다.


때로는 우리가 말하지 못하는 것들도 아이들은 쉽게 말한다.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들에게는 잘생겼다, 예쁘다 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다. 하지만, 덕분에 못생겼어도 못생겼다고 직선적으로 말한다. 물론 절대 내가 들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쉽게 사랑한다고 꺼내지 못하는 어른들과는 다르다.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누구보다 쉽게 건넨다. 아이와 대화하는 어른 역시 아이의 언어를 닮아간다. 그래서 순수하게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전한다.


아이의 말속에는 언어 그 자체의 정수가 담겨있는 덕분이다. 모래알 씹히는 듯한 딱딱하고 씁쓸한 어른의 말에는 독이 담겨 있다. 아이의 말에는 티 없이 맑은 말들이 찬란하게 빛난다. 덕분에 어른들은 미처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보아뱀을 보고 코끼리를 삼켰다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어른들은 그 말이 그대로 담고 있는 모습을 보지 않고 비싼 모자를 본다. 그래서 가끔은 노란색을 싫어하는 아이처럼 시적인 말을 뱉는 어린아이들에게서 언어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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