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즐거우니까.
드디어 이 지긋지긋하고 길었던 코로나 시대가 끝을 보이고 있다. 백신 접종률이 어느덧 안정권에 들어선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는 다시 2020년 이전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확진자는 다시 증가하고 중환자실도 위급해져 간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지만, 생전 처음 경험한 전쟁 같은 일상을 벗어난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사람들은 위험보다는 다시 돌아온 평범한 삶에 집중하고 있다.
동시에 여행의 문이 드디어 다시 열리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언제나 비행기표를 검색하고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다. 생업 때문에 바로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스카이스캐너를 통해 가고 싶은 여행지까지 어떤 비행기가 언제 가장 저렴한지 고민하기도 했다. 가끔은 일이 너무 힘들어 어디든 상관없으니 당장 다음 주에 가장 저렴하게 갈 수 있는 여행지를 충동적으로 검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검색조차도 한동안은 쉽지 않았다.
물론 당장 나가는 사람들이 예전만큼 폭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감출 수 없는 여행의 본능이 살아나고 있다. 일을 하다가 몰래 비행기 표를 검색하는 사람들도 생겼고, 코로나 자가격리 없는 여행지가 어디인지 확인하기도 한다. 혹은 예전처럼 여행기를 조금씩 찾아보기도 하고, 몇 년 전 갔던 여행을 돌아보며 다음 행선지를 고르기도 한다. 봄이 돌아왔다. 길고 추웠던 겨울이 드디어 지나고, 따듯한 봄의 설렘 같은 여행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기다린 설렘은 오랜만이다. 첫사랑과의 첫 만남을 기대하는 설렘, 처음 손 잡는 연인의 설렘과 비슷한 감정이다. 혹은 처음 비행기를 타던 그 순간의 감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고대하고 있었다. 우리가 사랑했던 여행이 그곳에 있으니까. 도망치듯 떠났던 여행도 있지만, 그런 여행 말고 온전히 사랑하던 여행 말이다.
일본에서 만난 본토의 라멘의 진득함, 차가웠던 맥주의 짜릿함, 베트남의 담백한 쌀국수, 뉴질랜드의 신선하고 탱탱한 크레이피시… 이런 각 국의 다양한 음식부터 깎아내리는 듯한 절벽부터 푸른 숲, 석회를 잔뜩 머금어 옥색으로 찰랑이던 호수가 있는 플리트비체, 푸르고 깊어 그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지중해, 끝없던 모래의 연속과 함께 석양을 바라봤던 사막… 끝이 아니다. 게다가 여행을 하며 만나는 좋은 사람들과 색다른 문화들까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경 속으로 녹아드는 기분. 이를 위해 그동안 우리는 버텨왔다. 여행의 설렘은 이런 모든 감정을 다시 불러왔다. 여행이야 말로 이런 모든 감정을 즐기는 삶이지 않은가.
떠나지 못하고 갇혀 있으니 오히려 여행의 진정한 이유가 확실히 떠올랐다. 바로 이런 감정들이었다.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다양한 이유들에 대해 분석한 다양한 말 들이 존재한다. 여행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이나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도피라던가(이건 내가 한 말이긴 하지만) 새로움을 배우고 싶어 하는 갈망이라던가. 하지만 여행을 좋아했던 단 하나의 유일한 이유를 꼽으라면 바로 즐거움 아닐까. 즐거우니까 떠났던 것이었다. 파편적으로 흩어진 또 다른 이유들이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떠나면 즐겁다는 공통적이며 가장 거대한 이유가 있었다.
이런 즐거움을 그동안은 너무 익숙한 나머지 잊고 있었다. 언제나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자유로운 여행, 떠나고 싶다면 훌쩍 떠날 수 있는 기회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 물론 떠나고 싶다고 무조건 떠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원한다면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소중하다.
그래서 나도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떠나고 돌아오는 여행을 준비한다.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떠나고 돌아올 준비를 한다. 그것이 도피가 되었든 지친 코로나에서 벗어난 힐링이 되었든, 혹은 고대하던 새로운 문화와의 만남이던 상관은 없다. 그냥 떠나는 것이 즐거운 것이니, 그 유일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