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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운영의 철학의 부재

링컨과 한국 정치

by 박희성

200여 년의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은 45명이나 되었지만, 언제나 부동의 1위의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1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 링컨은 왜 국부 취급을 받는가. 노예제를 폐지해서?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원동력, 국정 철학 덕분이다. 그의 목표는 하나였다. 통일된 연방으로의 미국이 존재해야 한다. 개인적인 철학은 노예제 폐지였지만, 노예제가 폐지된 채 미국은 연방으로 지속되어야 한다는 일념이 있었다. 그리고 끝까지 몰아붙이고 결국 자신의 철학을 성공시켰다.


세상에 완벽한 대통령이란 존재할 수 없다. 완벽한 인간이 없고, 정치는 하나를 주고 하나를 빼야 하는 것이니 민주사회에서 누군가는 빼앗기는 일이다. 주나라와 군자를 표상하길 원하는 대통령이 있지 않는 이상 완벽한 대통령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철학과 그 철학 실현을 위해 노력한 대통령이 있다면 국민들은 대통령을 인정한다. 신념과 철학. 대통령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만 모두가 망각하고 있다. 단지 상대 진영을, 내가 싫어하는 진영을 파괴하기 위해 그리고 당장 눈앞에 떨어지는 이익을 위해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국정 운영의 철학은 지도자가 쇼핑하듯이 선택해 고르는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는 국민 국가인 탓이다. 국민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통된 방향성이 국정 운영의 철학이 가야 하는 방향이다. 물론 여기서 국가주의적 발상으로 빠져 버리면 안 된다. 단순히 나라의 부강이나 민족 우월성을 논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한 나라에 살면서 각기 다양한 사회 기반 시설, 세금 등을 공유하는 인간들이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분배의 철학인 셈이다.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확실한 방향성이 없으면 세금과 국가의 에너지는 소모되어 버리고 말 뿐이다. 결국 국민을 반하는 철학은 철학이 아니라 아집이며 대통령의 이기심으로 전락한다.


링컨이 집권할 당시 남부 지방은 노예제에 반대를, 북부 지방은 찬성을 주장했다. 당시 미국은 약한 연맹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링컨에게 노예제 폐지보다 중요한 건 연맹을 지키는 것이었다. 링컨의 생각은 언제나 확고했다. 노예제 폐지보다 연맹이 중요하다. 하지만 노예제를 폐지하는 길이 미국 전체에 좋은 일이다 라는 것 역시 링컨의 생각이었다. 국민 전체에 이득이 되는 철학의 이해와 실행으로 결국 노예제는 폐지되었고, 링컨은 아직도 칭송받는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국정 철학이 성장이던 시절에는 경쟁이 목표였다. 새마을 운동으로 시작된 잘 살아 보세라는 외침과 북한과의 이념 전쟁의 승리가 모든 국민들이 순응할 수 있는 국정 철학이었다. 이후로도 절대악을 바탕으로 국민 전체가 가졌던 운영 철학이 우리 정치를 끌고 다녔다. 절대악을 국가에서 지정해주기도 했고, 국가 그 자체가 절대악이 되기도 하였다. 국가 방향성의 철학이 도덕성으로 점철된 셈이다.


현대로 들어온 이후에는 이렇게 획일화되었던 국민들의 의견이 다분화 되었다. 양 끝 정당의 입장이 극단이니 국민들의 의견도 극단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사사오입부터 체육관 선거까지, 많은 희생을 거쳐오며 결국 세계적으로도 얼마 되지 않은 민주 선거를 이룩한 한국은 민주화 이후의 정치가 문제였다. 정치 민주화는 이룩했지만 경제 민주화, 사회 민주화는 아직 멀다는 사람들이 있고, 혹은 우리 손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자유롭게 뽑는 날이 도달한 이상 민주화는 이룩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또 양극단에 존재하게 되었다.


링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미국도 남북전쟁의 승리 이후에 완전한 한 국가로 통합은 아니었다. 남북전쟁 승리 이후 갈등은 덮어진 것이지 봉합되지 않았다. 링컨이 암살당한 이후 남부에 대한 북부의 탄압도 거세었고, 인종 차별 역시 만연했다. 그러나, 링컨이 보여주었던 철학은 하나로 유지되었다. 하나의 국가, 노예제 폐지라는 근본적인 링컨의 목표는 달성되었고 유지되며 지금의 미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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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의 대선 주자들의 현 상황은 사실 중도, 회색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엔 암울할 뿐이다. 각자 경계를 가지고 그 내부 단속에 그치는 양극단의 정책과 이념은 갈등만 낳고 있다. 각자의 이상 실현이나 국정 운영에 대한 철학은 없다. 어떤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라며 외치고는 있지만 확실한 목표 없는 공허한 울음뿐이다. 발전한 듯 보이던 한국 정치는 단순한 색깔론으로 회귀하였다. 갈등 봉합을 위한 후보들이 아니라 갈등의 상처에 소금을 부으며 표를 울부짖는다. 철학 없는 국가의 미래는 어둡다.


어두운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상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생각해보자. 우리 스스로가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상대가 싫으니 상대를 처단하기 위한 갈등의 선거가 아니라, 우리부터가 과연 어떤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반쪽을 위한 지지로 누가 더 많은 표를 얻어 승리하는 가 지켜보는 대선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하나 되는 대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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