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이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온 적은 거의 드물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직까지 매일같이 연락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꼬박꼬박 만나는 친구들이지만, 이렇게 함께 여행을 온 것은 9년 만이었다. 20대를 맞이하며 떠났던 여행이 이제는 30대를 반기며 떠나는 여행이 되어버릴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되는 대로 한 두 명씩 가끔 바다나 산으로 가서 놀다 온 적은 많지만, 이렇게 거의 모두가 같이 떠나 한 장소에 모이는 여행은 20살 이후 처음이었다.
그 무심하지만 빠르게 흐른 시간 동안 속초도 예전과 달리 많이 바뀌었다. 속초 한가운데 위치한 거대한 호수인 청초호에는 하나둘씩 멋진 카페와 식당들이 들어섰다. 예전에는 지나가다 쓱 보고 말았을 호수였지만 이제는 어느덧 꽤 잘 꾸며진 관광지로 변해 있었다.
늦은 점심 식사를 대충 때운 우리는 소화를 시킬 겸 걷다 칠성 조선소라는 장소에 도착했다. 언뜻 보면 낡은 조선소로 보이지만, 속초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카페였다. 수 십 년 전부터 동해 바다로 나가는 작은 나무배를 만들거나 수리하던 조선소였던 이곳은, 조선소의 흔적을 그대로 두고 대신 그 옆에 카페를 만들어 두었다. 카페만 보면 또 동해안에서 흔히 보이는 평범한 오션뷰 카페처럼 보이지만, 밖으로 나오면 예전에 배를 만들던 흔적이나 배를 수리하던 장소가 녹슨 채 남아 오묘한 감정을 낳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색다른 장소로 바뀐 셈이었다. 평소 만나볼 수 없는 조선소라는 낯선 장소에서 만나는 향기로운 커피, 그리고 멋진 풍경 덕분에 속초에서 꽤나 유명해진 지 오래였다.
사실 혼자 이미 와 본 적이 있었다. 작년 가을인가, 첫 산문집을 출간하고 나서 홀가분한 기분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늦은 시간에 떠난 탓에 속초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저물었다. 간단히 밥을 먹고 할 일이 없어 천천히 호수를 배경으로 산책을 하고 있던 와중에 발견한 장소였다. 속초 여행이라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항상 상위권에 노출되던 칠성 조선소인 덕분에 낯설지만 반가운 기분으로 들어갔다. 주중 저녁. 카페도 마감을 해서 커피를 뽑지도 못하는 시간이라 아무도 없었다. 호수 반대편에 펼쳐진 야경만이 조용히 파도 위에 넘실거렸다. 호수인지라 파도 소리조차 조용했다. 나 역시 적막한 풍경 속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 조용하게 분위기 속으로 녹아드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그때와는 정 반대였다. 완벽한 야경도 아니었고, 주말을 맞아 놀러 온 사람들이 붐벼 사색할 겨를도 없었다. 시간도 애매했다. 해가 서서히 저물기 시작하는 순간인지라 완벽한 파란색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노을색도 아닌 뒤섞이기 시작한 색깔의 하늘이었다. 가장 바다가 멀리 느껴지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 주위에 함께 바다를 구경하는 누군가가 함께한다는 점이 가장 달랐다.
‘저기 봐라, 갈매기다.’ ‘저기에는 뭐 이상한 게 있는 거 같은데’ ‘저기 배 지나간다.’
처음 바다를 구경하는 아이들 마냥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모두 공유하곤 했다. 거기에 싱거운 농담과 서로 웃기는 이야기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장난을 치기도 하고, 마치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듯 끊임없는 웃음으로 추억을 쌓았다. 함께 하기에 좋은 여행이다. 혼자 다니는 여행과는 결이 다른 행복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면 여행이라는 음식을 다양한 각도로 세세히 맛을 보며 음미하는 즐거움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특히 허물없는 친구들과 하는 여행은 강한 자극을 주는 여행이다.
여행의 본질인 즐거움이라는 자극이다. 웃고 떠들고, 그렇게 새로 쌓이는 추억을 가슴속에 담는다. 여행을 떠나지 않고는 이런 즐거움을 새롭게 얻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 추억을 반추해서 얻는 즐거움이 아니라, 지금 당장 웃고 떠들며 찌들어 있던 스트레스를 없애는 행복이다.
이런 즐거움이 바로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