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에 눈물이 나는 이유

어린 왕자의 외로움에 공감

by 박희성

산허리 옆으로 해가 기울었다. 오늘의 해가 마지막 뒷모습을 보여주며 슬며시 사라지고 있다. 노란 기운을 뿜어내던 해는 이제 꺼져가는 불꽃처럼 주황색을 머금는다. 이제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의 해다.


일몰을 일출보다 만나기 쉽다. 찬 겨울 아침 일찍 나와야만 볼 수 있는 일출과 다르게 일몰은 보통의 하루를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타는 지하철 안에서 한강을 건너다보면 서쪽 끝으로 떨어지는 일몰이 창문 사이로 스며 들어온다. 휴대폰만 보고 있던 모든 사람이 갑작스레 눈을 노크하는 마지막 햇빛을 보곤 고개를 든다. 오늘 하루 힘든 삶을 살았거나 외로움이 가득했던 사람들은 창문 밖 노을을 바라보고 감상에 젖는다.


같은 빛을 머금은 일출과는 다르다. 한 해의, 혹은 하루의 멋진 시작을 위해 바라보는 일출은 벅찬 기분이지만, 일몰은 아련하다. 힘들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하루를 보내며 지난 시간의 후회를 되돌아보기 때문일까. 떠나가는 하루에 인사하며 노을을 보면 지구상에 해와 나 둘만 덩그러니 있는 듯하다. 아무도 이 감상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인도를 여행할 때 나는 푸쉬카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푸쉬카르는 정말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갠지스강으로 유명한 바라나시나 거대한 대륙의 수도 델리, 혹은 타지마할의 도시 아그라에 비하면 이 동네는 정말 영화에 나올 법한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하지만 작은 마을이라고 해서 특색이 없지는 않다. 도시 가운데 크게 자리 잡은 호수가 또 다른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나름 사막 속 오아시스처럼 호수를 뺑 둘러 마을이 형성된 모습이 신기하긴 하다. 그리고 나는 이 작은 호수 마을에서 이틀 연속으로 노을로 사라지는 해를 배웅했다.


푸쉬카르에 도착한 날은 12월 30일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한국에서도 한 해의 마지막 일몰을 보기 위해 서해안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듯이, 이 작은 마을에도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일몰을 보기 위해 한 장소로 모였다.




푸쉬카르에서 일몰로 가장 유명한 ‘선셋 포인트’, 말 그대로 일몰 포인트다. 호수 바로 옆 계단 같은 이곳에 앉아 있으니 해는 점점 붉은빛을 내며 가라앉았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원에서 나오는 종소리와 기도 소리는 발을 통해 온몸으로 진동하며 울려 퍼졌다. 호수에는 저무는 태양이 마치 황금 잉어들처럼 비치며 울렁거려 눈이 부셨다. 오감으로 이곳의 일몰을 느끼고 있으면서 눈은 저무는 노을에서 떼지 못했다.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태양을 쳐다본 적은 없었다. 어제와 내일과 같은 태양이지만 한 해의 마지막 태양이라는 의미가 더욱 아름답게 태양의 흔적을 붙잡고 있었다. 하루의 태양에는 하루의 후회가 담기지만, 한 해의 마지막 태양에는 한 해 동안의 후회가 담기고 덕분에 더욱 안타깝게, 아쉽게 바라보는 사이 태양은 하늘 사이로 사라지고 어스름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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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거리기 시작할 때부터 완전히 질 때까지 선셋 포인트를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긴 시간 지는 해를 본 적은 없었다. 창문 너머 흩어지는 노을을 바라본 적은 많지만, 기껏해야 고작 1분 내외다. 금세 다시 외로움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하지만 인도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본 노을은 그보다 오래, 하늘의 모든 색깔이 천천히 바뀌는 순간을 두 눈으로 지켜봤다. 한 해의 마지막 해이라는 기념비적인 순간이라 그랬던 건지, 아니면 작은 도시라 노을 말고는 할 일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냥 노을을 따라가는 나의 공허함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다.


12월 31일이라는 기념비적인 날 한 해의 마지막 태양과 인사한 다음 날인 1월 1일에도 저녁쯤에 같은 장소에 같은 시간 앉아 또다시 신년 첫 태양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내 주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해를 보내는데 눈물이 난다. 그런데 자꾸 보고 싶다. 스멀스멀 떨어지는 해를 눈이 부셔서 찡그려도 계속 본다. 아름다운 주황빛이 보라색 하늘에 져서 자꾸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눈물이 나는데도 보내기 싫다.




그래서 어린 왕자가 부러웠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동화 <어린 왕자>의 주인공이자 외로운 소행성의 주인인 어린 왕자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노을을 바라볼 수 있다. 너무 작은 별에 사는 덕분에 단지 앉아있는 의자만 몇 걸음 옮기면 원하는 만큼 떨어지는 일몰을 만날 수 있는 덕분이다.


어린 왕자 역시 노을을 좋아했다. 특히, 우울하거나 외로울 때면 석양을 본다고 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홑씨에서 싹이 튼 장미 한 송이를 제외하곤 언제나 홀로 외로이 있던 어린 왕자다. 어린 왕자는 언제나 언제나 자신의 전부인 행성이 파괴되지 않을까 걱정하기 바빴다. 일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던 어린 왕자 옆에는 줄곧 아무도 없던 셈이다. 언젠가는 44번이나 의자를 옮겨가며 노을을 본 적이 있었다. 혼자 먼 우주 한 복판에 떠 있는 소행성 위에 살다 보니 근본적으로 외로움을 깊이 간직한 채 살아가는 애석한 존재였다.


그런 연유로 외로운 사람들이 어린 왕자에 나온 문구에 끌리는 경우를 종종 봤다. 언제나 일에 몰입해 하루를 모조리 쏟아 부어야 하고, 겨우 애정을 쏟을 상대가 생기지만 서툰 서로의 감정 표현 때문에 상처를 받고 떠나가고, 여기저기 떠돌아 다녀 보지만 결국 마음을 정착할 무엇도 찾지 못한 이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어린 왕자에 나온 단어나 문구를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한 채 남 모르게 외로움을 숨기고 있었다.


이렇게 마음속에 어린 왕자를 품고 살던 사람들처럼, 나도 노을을 보면 어린 왕자가 생각난다. 특히 오랫동안 외로움에 지쳐 노을을 보고 있을 때면 더욱 그렇다. 아무도 없는 소행성에서 홀로 있는 어린 왕자는 마음의 짐을 차마 놓지 못한다. 울컥하는 마음의 짐이 생길 때 마다 어린 왕자는 지는 태양을 따라가며 마음을 다스린다. 같은 마음을 속에 담은 나 역시 멍하니 붉은 하늘을 보며 천천히 사라지는 하루의 끝을 잡아 본다.


그래서 노을을 볼 때면 눈물이 난다. 외로울 때 혼자 보고 있으니 어린 왕자처럼 덩그러니 혼자 넘어져 있는 기분이다. 인도에서도 그런 이유로 눈물이 났었다. 뉘엿거리며 넘어가는 해를 긴 시간 바라보고 있으니 외로운 소행성 위에 덩그러니 있는 어린 왕자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외로운 사람들이 노을에 끌리는지, 노을을 보고 외로움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작은 소행성에 사는 외로운 누군가의 아픈 마음에 공감하니 노을을 보니 눈물이 난다.


그래도 이제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 넓은 지구에서 떨어지는 노을을 함께 보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누군가 있을 수 있다고 말이다. 눈물이 나더라도 몰래 같이 흘려줄 누군가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괜찮아진다. 하다못해 어린 왕자라도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노을을 봐도 조금 덜 외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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