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성 Aug 16. 2022

인도에서 닥친 첫 위기

가야할 길은 먼데 타야할 버스는 하나

큰일 났다. 버스를 놓쳤다. 여행에서 돌발 상황은 언제나 생기지만 이렇게 두려움과 함께하는 돌발 상황은 당황스럽다. 여행 전 모두가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하던 인도의 밤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가야 하는 길은 멀다. 버스를 놓쳤을 때의 당황과 긴장은 다른 나라와 사뭇 다르다. 한국에서 본 인도 버스의 강력 범죄에 관한 뉴스 때문인지 더욱 두려움이 크다. 분명 아침에 눈을 떴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걱정은 없었다.


예상보다 아름다웠던 도시 자이푸르의 마지막 아침은 따사로운 햇빛보다 벽을 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로 잠을 깨웠다. 점점 한 해의 마지막 날이 가까워지니 날씨 역시 더욱 추워졌다. 오늘은 제일 먼저 버스표부터 예매하러 가야 했다. 벌써 12월 30일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버스에서 보내기는 싫으니 신년이 오기 전 미리 한적한 호수의 도시인 푸쉬카르에 가 있으려는 계획이었다. 


다행히 미세먼지에 가려진 해가 떠오르니 더 이상 춥지는 않았다. 인도의 겨울 추위는 밤새 벽을 뚫고 들어와야 사람을 괴롭히지, 해가 뜬 이후에는 모습을 감췄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일교차가 심했다.


터미널로 가는 길에 보인 자이푸르는 오늘도 활기찼다. 1년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니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기분이다. 물론 그냥 인도 자체에 사람이 많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거리에 차는 그리 많지 않아 버스 터미널까지 빠르게 도착했다.


조금 더 편하고 안전하게 가기 위해 럭셔리 버스라는 다소 비싼 버스를 예약한 후 자이푸르 시내를 구경하러 떠났다. 확실히 지난 도시들과 다른 느낌의 도시다. 바라나시에 비해 더 깔끔하고, 아그라에 비해 더 발전해 있다.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진 도시의 특색은 다른 도시와 확연히 차이가 있다. 


도시를 돌아다니며 놀다 보니 시간이 약간 빠듯해 보였다. 그래도 뭐, 기차도 항상 연착을 하는데 버스도 10분에서 20분 정도는 늦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벌써부터 인도의 느긋함을 체득해버렸다. 버스를 타고 긴 거리 가기 전 식사는 해야 하니 하와 마할 근처에 있는 케밥집에서 식사를 했다. 푸쉬카르는 힌두교에서 신성한 도시 중 하나이므로 거의 채식 식당 밖에 없는 탓에 마지막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두어야 했다. 하지만 점점 눈앞에 제한된 시간이 가니 아무리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려 해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결국 허둥지둥 식사를 마치고 나가 터미널로 가는 우버를 호출했다. 하지만 퇴근 시간대라 그런지 우버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눈앞에 있던 릭샤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버스표를 사기 위해 오전에 떠났을 때 20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빠듯하게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오판이었다. 퇴근 시간대에 겹친 탓에 도로에 차가 퇴근길 올림픽대로처럼 막혀 있었다. 오전에는 사람이 많은 기분이었다면, 오후에는 사람보다 차가 가득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곳곳에 도로 공사가 이어지고 있던 탓에 차는 거북이보다 느리게 움직였다. 기다시피 가던 릭샤는 결국 예상보다 2배의 시간을 더 소모했고,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버스는 떠나버렸다.



무사안일을 꿈꾸던 여행에 갑작스러운 균열이 생겨났다. 오늘 안에 푸쉬카르로 들어가는 방법은 현지인들과 타는 마을버스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같은 거리를 가는 버스이지만 굳이 저렴한 마을버스를 두고 럭셔리 버스를 예약했던 것은 단순히 안락함 뿐만 아니라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너무 여유를 부리는 바람에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긴장되었다. 마을버스는 30분마다 존재했다. 더 늦으면 어둠 속을 헤치고 가야 하니 차라리 해가 떠 있는 지금 타기로 했다.


사실 지금까지 인도의 치안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델리에서는 밤 비행기로 도착해 저녁을 먹은 후 잠깐 도시 구경을 하기도 했고, 바라나시에서는 언제나 사람이 많은 대로변으로, 그것도 10시 이전에만 돌아다니니 위험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수 백에서 수천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서 이제는 시골로 향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있는 버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고물차나 다름이 없었다. 차량 여기저기 파인 상처는 오랜 세월을 대변하듯 녹슨 흔적이 가득했고, 털털거리며 힘든 소리를 내며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동안 여행에서 수많은 버스를 타 왔지만 이렇게 불안한 버스는 처음이었다. 타기 전 마지막으로 주춤거리던 나는 결국 버스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릭샤 기사들은 사기를 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