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소년에 대한 단상
높은 성곽에서 흐르는 바람으로 땀을 식히며 경치를 보고 있었다. 한 꼬마가 저 밑에서부터 연을 날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작은 몸으로 자기 몸 만한 연을 날리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5살 정도로 보이던 꼬마는 힘겹게 올라오던 우리와 다르게 순식간에 우리가 있는 성곽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의 땀을 식히던 바람을 이용해 높게 연을 날리며 놀았다.
평일 낮인데 혼자 돌아다니는 어린아이를 보니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꼬마는 당연하듯이 혼자 신나게 연을 날렸다. 잠시 꼬마를 제쳐 두고 암베르 포트의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꼬마는 어느덧 우리 옆으로 와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사실 인도에서 사진 제안을 받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어디를 가도 동아시아인이 신기한 건지 아니면 관광객이 신기한 건지 자신의 카메라로 혹은 우리의 카메라로 사진 찍는 일을 하나의 놀이처럼 여겼다.
앞선 사진 촬영들처럼 당연하게 꼬마와 사진을 찍고 난 이후 우리는 성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갑자기 꼬마는 우리한테 다가와 서툰 영어로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귀를 가져다 댔다. 꼬마는 웅얼거리는 말투로 사진을 찍어 주었으니 10 루피만 달라고 했다. 10 루피면 우리 돈으로 당시 150원 정도 되는 값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은 돈이다. 주어도 여행에는 큰 지장이 없다. 심지어 우리가 먹은 점심 가격에 포함된 팁 가격이 그보다 훨씬 많았었다.
사실 인도와 같이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빈번한 일들이다. 어떤 여행 에세이에서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자신이 먹을 점심 가격을 아껴 큰돈을 주기도 하는 모습을 읽었고, 어떤 블로그에서는 그냥 지나가다 불쌍해 돈을 적선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하는 적선이 나쁜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동정을 느껴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일은 인간의 선한 본성과도 맞물린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의 구걸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이들의 구걸을 거절하지 못하는 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타깃으로 조직적 구걸이 있을 수도 있고, 구걸하는 도중의 소매치기 같은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극빈층 아이들에게 동정으로 돈을 쥐어주면 아이들은 학교보다 길거리로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견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돈은 쉽게 얻는 것이 아니고 교육을 통해 앞으로 나아지는 미래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웠다. 머리로는 주면 오히려 아이의 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10루피 정도라면 아이가 오늘 하루 행복한 날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내적 갈등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아이는 산타가 오지 않았으니 크리스마스 선물로 10루피만 주면 안 되겠냐는 말을 했다. 생각해보니 며칠 전이 크리스마스였다.
그동안 다녔던 여행지들에서 만난 어린아이들은 부모 손을 잡고 관광하는 아이들 뿐이었다. 여행에서 만난 아이들은 언제나 기쁘게 놀고 있었다. 아주 가끔은 무언가 사달라고 떼쓰고 있었다. 하지만 구걸하던 꼬마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런 관광을 온 아이들과는 달랐다. 같은 순수한 눈을 가진 아이들이었지만, 인도에서 만난 아이들은 구걸을 하거나 일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단순히 아름다운 말로 포장할 수는 없다. 안타까운 현실을 그냥 보고 지나치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기엔 웅장하고 아름다웠던 인도라는 나라를 배신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들을 거리로 내보낸 부모의 잘못일까, 이런 아이들을 만들어낸 사회의 잘못일까, 아니면 국가의 잘못일까. 아동은 행복해야 한다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 말고는 외부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더욱 안타까웠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민 따위 하지 않고 그냥 아름다운 풍경만 보고 지나쳤을 텐데, 씁쓸한 인도의 뒷모습을 보고 나니 머릿속에는 고민만 자리 잡았다.
인도에만 존재하는 그런 안타까운 현실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에도, 베네수엘라에도, 남수단에도 이런 꼬마 같은 아이들은 존재한다. 심지어 법적 경계선 때문에 지원받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우리나라에도 존재한다. 큰돈을 가진 부자라면 이런 아이들을 위해 턱 턱 좋은 일에 쓰라고 기부금도 큰돈으로 주고 할 테지만 당장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도 아쉽다. 아이들이 불쌍하고 안타깝지만 손 놓고 바라만 보기에도 아쉬웠다. 특히, 여행에서 만났던 그 꼬마 아이의 얼굴이 아른거려 더욱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