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을 달고 마시는 쓴 술
성인이 되고 처음 마신 맥주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단맛은 없고 쓴맛만 가득하고, 탄산의 톡 쏘는 느낌은 콜라보다 강해 마시기 힘들었으며, 홉의 향은 이질적이었다. 이런 걸 왜 마시지… 라는 생각을 하며 술자리에서 되도록 맥주를 피했다. 하물며 맥주 알레르기까지 있어 맥주를 마시면 온몸이 가려웠다. 술자리에서 취하고 싶다면 다른 술들을 마시면 되고, 청량한 탄산을 원하면 콜라나 사이다, 하다못해 탄산수를 마시면 되는데, 굳이 쓰고 취하는 맥주를 왜 마시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하는 순간이 왔지만, 그래도 나는 맥주가 별로였다.
맥주를 조금씩 마시기 시작한 계기는 여행 덕분이었다. 분위기가 맛을 좌우한 탓인지, 아니면 맥주 마니아들의 말마따나 한국 맥주가 맛이 없는 탓인지, 혹은 맥주 아니면 독주밖에 없던 여행지 덕분인지 몰라도 여행하며 맥주를 자연스럽게 찾게 되었다.
덕분에 다양한 맥주들을 만났다. 러시아에서 게스트하우스 친구가 마셔보라고 던져 준 발티카, 병이 신기한 탓에 마시고 한 이틀 가방에 보관했던 에스토니아 비루, 친구 삼촌이 직접 운영하던 체코 시골 마을의 작은 양조장에서 갓 나온 신선한 맥주, 인도 타지마할 앞에서 만난 킹피셔 등등…
이렇게 많고 맛있는 맥주를 그동안 왜 찾지 않았는지 싶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맥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친구들이 불러내 어쩔 수 없이 마시는 경우를 빼면 말이다. 혼술, 혼맥이라는 말이 유행할 때는 이해되지 않았다. 나에게 맥주는 여행에서 마시는 음료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술자리가 줄어들다 보니 혼자 맥주를 마시는 잦아졌다. 어쩌다 보니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맛이 없다고 느끼던 한국 맥주도 한 캔, 두 캔 마시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맥주가 스며들었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맥주의 맛인지, 알코올의 성분인지에 서서히 중독된 탓에, 얼마 전부터는 집으로 돌아오면 꼭 자연스럽게 맥주 한 캔씩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게 되었다. 맥주에 빠졌다기보다는 습관 같았다.
물론 혼자 마시는 맥주에는 여행에서 마시던 즐거운 맛이나 친구들과 마시던 재밌는 맛은 없었다. 말 그대로 습관적인 음주였다. 온몸이 가려울지라도 꼭 달이 지는 시간만 되면 맥주를 마셨다. 알코올이 약한 덕분에 한 캔이면 충분히 취했다. 적당히 청량함을 마시고 싶을 때는 작은 맥주 캔 하나를,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면 큰 캔 하나를, 우울한 날에는 두 캔을 마셨다.맥주를 마실 때마다 조금씩 고민이 올라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왜들 그렇게 혼자 맥주를 마시나 싶었는데 아마 이런 기분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울컥 취하지는 않지만 알딸딸한 이런 기분. 생각을 지우고 싶어 마시지만, 취기에 올라오는 우울함을 즐기고 싶다. 술은 기분 좋을 때 마셔야 하는데, 이렇게 마셔도 될까.
술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생 때 만나 오랜 시간을 함께한 그 친구는 가끔 소주를 “쏘오주” 라고 발음했다. 쏘오주. 우리가 일상적으로 발음하는 “쏘주” 도 아니고 꼭 가운데 “오”를 넣어 “쏘오주” 라고 길게 말했다. 잘못 들으면 양꼬치와 먹을 듯 한 중국 고량주 같은 이 발음은 처음 들었을 때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어느덧 귀에 익어 가끔가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다. 이 늘어지듯 발음하는 쏘오주는 어느 날부터 기분이 좋을 때 마시는 술을 의미하게 되었다. 일이 고되거나 한탄할 일이 있으면 그냥 덤덤하게 술 한잔하자는 식의 문자가 왔고,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항상 전화로 “오늘 쏘오주 한잔 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연락이 왔다.
친구와 나는 스무 살이 되는 해 1월 1일 새벽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성인이 된 첫날부터 시작된 음주는 마치 종교의식처럼 거의 매일같이 일어났다. 하루 일하고 받던 적은 돈으로 한잔, 시험을 잘 봤다고 한잔, 여자에게 차였다고 한잔, 날씨가 좋다고 한잔. 술을 마시는 이유도 다양했다. 왜 술을 마셔야 하는지 목적은 없었다. 그 술이 소주이건, 쏘오주이건 들이부었다. 성인이 되었다고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한 것도 아니었고, 날마다 기념일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관성처럼 술을 마시게 되었다. 어린 나이의 치기로 술에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술을 마시다 토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일에 주어진 술은 모두 마셔야 했다. 마시고 게워낼 한이나 억울함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젊고 튼튼한 간과 위장 덕분인지 우리는 술의 무서움 없이 술을 마셨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철없는 음주 활동은 점점 줄어들었다. 정확히 따지면 함께 마시는 날의 빈도가 줄어든 것이었다. 나는 대학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모임에 들어가며 다양한 술자리가 생겼지만, 친구는 이런 새로운 만남보다는 골방에 박혀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20대가 속절없이 흘렀지만 이뤄낸 것이 없다고 생각한 탓에 다양한 시험에 도전했다. 수능을 다시 보기도 했고, 고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자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자신의 현재 상황을 스스로 인정할 수 없었기에, 떨어져 낙상을 입더라도 다시 새로운 시험을 준비했다.
친구가 공부하는 동안 나는 새로 만난 사람들과 쏘오주를 마시며 즐거운 생활을 보냈다. 친구는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을 안주 삼아 공부가 끝나면 잠이 들기 위해 혼자 술잔을 들었다. 서로의 다른 이유를 담은 술을 각자의 공간에서 마시게 되었다.
친구는 매일 밤 술을 마셨다. 사실 걱정될 정도로 마셨다. 계속 혼자 마시다 20대 젊은 나이에 위궤양에 걸리게 되었다. 매일 밤 소주 한 병씩 마셨는데 위가 버텨줄 힘이 없었다. 그러다가 탈이 난 것이다. 친구는 술을 마신 게 아니었다. 술이 친구를 마셨다. 외로움이 물밀듯이 닥쳐오니 술이 아니면 이겨낼 재간이 없던 것이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고독하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니 술로 도피하고 말았다.
며칠 전 맥주를 마시다 문득 더 취하고 싶어졌다. 친구의 기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무도 모르게 숨어 있던 고민이 맥주를 통해 증폭되고, 그 끝을 알고 싶은 마음에 계속 술을 찾게 된 셈이다. 외로움과 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은 알딸딸한 감정으로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취기가 올라가야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보이지 않는 정답 앞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 앞의 수험생처럼 끙끙거리고 있었다. 정답이 보이지 않는다면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풍화되며 나도 모르는 사이 사라질 문제다. 하지만 굳이 술로 나를 재웠다. 술을 찾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답은 보이지 않지만 그럴수록 더욱 빠져드는 늪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늘도 맥주 한 캔을 냉장고에 꺼냈다. 하지만 친구 생각이 나서 그만두고 말았다. 술은 기분 좋게 마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