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에 목마른 이유

고독을 즐기고 싶어 떠난 여행, 고독과 고립은 다르다

by 박희성

혼자 부산을 다녀왔다. 떠나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비행기에 올랐다. 누구랑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굳이 시간과 일정을 맞춰가며 떠날 날짜를 정하는 번잡함은 귀찮았다. 떠나고 싶을 때면 마음먹은 즉시 떠나는 편이 좋다. 떠날까 하는 고민을 하면 마음만 동요되어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된다.


부산으로 여행을 가는 건 처음인 덕분에 가야 할 곳과 가고 싶은 곳은 널려 있었다. 비행기가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해운대로 갔다. 몇 없는 옷가지가 담긴 작은 캐리어 하나를 손에 쥐고 책 몇 권, 노트 한 개가 들어 있는 가방을 둘러메고 도착한 해운대는 이미 해가 거의 저물었다. 높은 건물들 사이로 사라진 태양이 남긴 주황빛의 흔적만 슬쩍 하늘에 남아 있었고, 이미 어두워진 바다는 검은 파도를 천천히 나르고 있었다.


혼자 다니는 여행은 익숙해 별 무리가 없었다. 잠이야 혼자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는 쪽이 호텔이나 민박에 묵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기도 하고, 밥도 혼자라면 배고플 때 아무렇게나 먹어도 상관이 없으니 좋다. 상대의 발걸음을 맞출 필요도 없고, 나 혼자만 생각하면 되니 의견 충돌도 없고 편하기만 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누군가와 만나고 있지 않은 모든 시간을 거의 혼자 보낸다. 집에 가만히 누워 있어도 홀로 있고,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도 혼자다. 사실 일의 많은 부분도 거의 혼자 한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와 협업을 하는 동안만 함께할 뿐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일하는 셈이다. 함께 일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일은 혼자 하는 것이었다. 컴퓨터에 앉아서 물량을 체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나, 망치나 드릴을 들고 조립을 하는 사람이나, 혹은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는 사람이나, 앉아서 글을 쓰는 사람이나 모두 일하는 순간은 혼자라고 볼 수 있다.


함께 일을 하는 동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같은 회사 속에 묶여 있고 같은 공간에 함께하고 있을 뿐 ‘일’은 단순히 혼자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알게 모르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은 혼자가 익숙하다. 점심 식사를 같이하는 시간을 빼면 일하는 시간 동안은 혼자나 다름없다. 일이 끝나고 난 이후 쉴 때도 누군가를 만나서 함께 무언가 하지 않는 이상 혼자 운동을 하거나 집에서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혼자 여행하는 것도 사실 이상하지는 않다.




부산을 여행으로 간 적은 없었던 덕분에 갈 곳은 많았다. 해운대도 처음이었다. 가장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 2층 침대 안에 짐을 던져두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해는 저물어 어두워졌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애매한 해 질 녘보다 많아졌다. 해운대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서 대충 저녁을 때운 뒤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싶어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았지만 이미 만석이 되어버린 가게 안에는 혼자 온 손님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결국 맥주는 포기하고 그냥 천천히 밤바다를 산책했다. 불빛이 가득해서 낮처럼 밝고 시끄러운 육지와 다르게 바다는 적막한 어둠과 고요한 파도 소리만 들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해운대의 바다는 육지 못지않게 사람들이 많았다. 해수욕을 즐기듯 물 반, 사람 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많은사람이 밤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밤이지만 생명력 가득한 바다를 함께 온 사람들과 보며 광활한 어둠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혼자 조용하고 고즈넉한 바다를 보며 고독을 느끼고 싶었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대화 주제는 파도 소리를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혼자 여행을 해도 즐길 거리가 많고 편한 점도 있지만, 이렇게 외로울 때도 많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환상을 공유하지만, 나 홀로 여행자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심지어는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방해를 받아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버리기도 한다.


말동무가 없어 외로워진다는 건 서글프다. 일하거나 무언가 함께 하고 있을 때는 혼자라고 생각을 하지만 눈을 돌리고 말을 걸면 혼자가 아니게 된다.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적다. 오히려 너무 많은 관계를 겪다 보니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혼자 여행을 오게 되면 다시 말을 걸 사람이 없어지니 외로워진다.


특히, 오늘처럼 국내로 여행을 떠나오게 되면 외로움은 더욱 증폭된다. 모든 사람의 대화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화인 탓이다.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은 주변을 나도 모르는 사이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속해 있는 사회를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떠났을지라도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회의 사람들 주변에 있으면 떠난 것인지, 혹은 아직 그 안에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들어갈 수 있는, 혹은 들어가야 하는 현실 사회를 바로 옆에 두고 나 혼자 밖에 걸쳐 있으니 완전한 혼자도 아니고 혹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도 아니라 외로움이 더욱 커진다. 참 아이러니하다. 혼자 있고 싶어 떠났지만 애매하게 아직 그 안에서 더 많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니.


그래서 해외여행이 목마르기도 하다. 특히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이 그립다. 해외를 나가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가득하다. 알 수 없는 문화도 많고,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도 많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집중해야 들리는 단어들이다. 자연스럽게 통째로 들어오는 국어와는 다르다. 모국어와 다른 언어들은 무시하면 백색 소음이 되는 문장들이다. 덕분에 완벽한 고독을 원할 때는 국내보다 해외로 가고 싶다는 욕망이 커진다.




고독과 고립은 다르다. 고독의 사전적 정의는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다. 외로움이지만 내가 원하는 감정의 상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내가 걸어가는 삶이 옳은지 생각하고 싶을 때, 특히 고독을 원하고 있다. 그래서 고독의 독(獨)은 독(毒)이 아니다. 나에게 해가 되는 성분이 아니다. 단지 혼자일 뿐이다.


고립은 다른 감정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면 기분이 묘하다. 비밀번호를 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 전등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켜진다. 신발을 벗고 고개를 들어 올리면 불 꺼진 어두운 집이 어렴풋한 그림자로 보인다. 한 발자국 내디디면 방바닥의 냉기에 놀란다. 아무도 없는 집의 차가운 외로움은 그 무엇보다 쓸쓸하다. 이런 감정이 고립이다. 사전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어 사귀지 아니하거나 도움을 받지 못하여 외톨이로 되는 것이다. 원치 않게 혼자가 되는 외톨이의 감정이 바로 고립이다.


혼자 즐기기 위해 떠나가는 여행은 결국 고독을 즐기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다. 혼자가 좋아서, 아니면 자신과 만나기 위해서 혼자 떠나간 덕분에 고독을 씹어도 격한 외로움에 사무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말소리 탓에 나만의 세계가 깨져버린 고독은 고립이 되어 버린다. 고립되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닌 탓에 고독에서 고립으로 떨어져 버리면 외로워진다. 즐기기 위한 외로움이 아니라 남들과 떨어져 소리칠 수 없는 외로움이다.


여행을 가서까지 고립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혼자 여행을 가고 싶을 때는 해외로 떠나고 싶다고 느낀다. 모든 여행이 의미를 가지지만 해외여행만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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