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델리, 게스트하우스
22시 46분 델리, 게스트 하우스
아무리 인도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인도”라고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인도양이나 석양이 떨어지는 사막 이든지, 갠지스강에서 기행을 펼치며 혹독한 수련을 하는 수행자 라든지, 혹은 날카롭고 차가운 히말라야든지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인도의 첫인상은 그런 아름답거나 달달한 것이 아니었다.
인도의 첫인상은 미세먼지. 미세먼지 천국이다. 공항 밖은 물론이고 공항 안까지 미세먼지로 뿌옇게 앞이 안보였다. 흡연실 한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공항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밖의 먼지가 안으로 들어오는 듯 했다.
인도 공항인데 특이하게 한국인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네팔까지 가는 산악회, 단체 모임 같은 곳에서 온 듯 하다. 여기서 갈아타시나보다. 비자를 여기서 바로 발급받을 수 있어서 입국 심사에 줄 섰는데 앞에 아주머니에게 일이 난 듯 했다. 영어를 못하시는데 비행기도 놓칠 것 같아 답답한 상황인듯 했다. 원래 남들 앞에서 나서지 못하는데 희한하게 외국만 나오면 한국인들에게 말을 걸게 된다. 대충 통역해서 공항 직원에게 전달했는데, 일단 입국하고 다른 터미널로 이동해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선 심사하고 나가라고 말씀드렸다. 확실하지는 않아 도망치듯 짐 챙겨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 어리버리하게 서 있는데 그 아주머니가 지나가면서 고맙다고 하신다. 다행히 직원 도움을 받은 듯 하다.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환전부터 했다. 공항 안에 유심 사는 곳이 있는데 유심을 지금 사도 내일 개통이고, 공항 안은 밖보다 비싸고, 거기에 문제 생겨도 공항 안으로 못들어오니 그냥 안하고 물 하나만 사서 마냥 기다렸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이 게이트가 맞는지 아닌지 확인부터 해야 했는데 다행히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어떤 상점 보이는 그 게이트 앞에서 만나기로 했고, 출구는 하나니까 그냥 마냥 기다렸다. 다행인건 딱 8시 되자마자 나와서 만났다. 그 어디서 만난 것보다 기뻤다.
어차피 내일 다시 공항으로 와야 해서 그냥 공항 바로 앞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오늘의 숙소로 잡았다. 밤거리가 위험하니 공항 안에서 미리 요금을 지불하는 프리 페이드 (pre-paid) 택시를 이용해서 가려 했다. 그런데 공항 안에 있는 택시 회사에서 거기까지 1500루피 불렀다. 한 10분 거리에 한국보다 비싸게 부를 줄이야. 그래서 아 이건 아닌거 같아서 나가서 타려 했는데 900으로 깎았다. 이때는 몰랐지 우리가 엄청 잘 깎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것도 엄청난 바가지였다. 근데 또 우리 숙소 못찾고 택시 기사랑 말 안통해서 고생하는 비용이라고 퉁 치고 넘어가야지 어쩌겠나.
택시타고 가는데 기사가 자꾸 말건다. 택시 안에서 영업을 뛴다. 저기 수수료 때문에 비싸니까 자기 명함으로 연락주면 델리 있는 동안 데려다 준댔다. 내일 공항 바로 간다니까 공항까지 500루피면 가준다고 꼬셨다. 무시하고 바깥 경치를 보고 싶어도 밖에 보이는 건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마치 김 서린 안경처럼 뿌옇게 보이는 풍경 뿐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안개가 낀 줄 알텐데 싶을 정도로 심하다. 할 말을 잃었다.
그와중에 택시기사는 또 이름이 뭐냐, 아침에 불러라, 팁 달라 자꾸 말을 걸었다. 차가 막혀 잠시 멈추니 아기를 업고 있는 엄마가 와서 창문을 두드린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라 멍 때리니 택시 기사가 반대쪽 창문 열고 뭔가 주었다. 멀리 미세먼지 사이에 보이는 다리 밑에 판자, 아니 그것보다 못한 널판지와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살면서 택시타고 공항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빈부격차가 여실히 보여진다. 택시기사가 우리를 귀찮게 해서 조금 짜증났는데 저렇게 해결해주니 고맙기도 했다.
무사히 도착한 것에 대한 약간의 팁과 함께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공항 안에서 보던 미세먼지는 약과였다. 숙소는 앞에 큰 고가도로가 있는 곳이었는데 온 동네가 마치 뿌연 안개가 낀 듯 앞이 보이지 않았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안개의 정체는 미세먼지였다. 가로등조차 안개로 희뿌옇게 빛나고 있었고, 아직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의 라이트는 50m 안에서만 보였다. 외계 생명체가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을 풍경에 넋이 나갔다.
우여곡절끝에 숙소에 도착했다. 2층으로 올라갔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말도 안통하는데 짐 내려두고 뭔가 계속 말을 건다. 돈은 언제 내냐고 물어보는데 기다리래서 기다렸다. 잠시 후 아들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계산해줬다. 다행히 아들과 영어로 소통했다. 와이파이까지 친절하게 잡아주었다. 숙소는 딱 하루 묶기 좋은 정도였다.
첫 날이라 긴장해서 그런지 뭔가 안심되지는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깨끗하기는 하다. 뭔가 바깥이 그래서 그런가, 인도에 대한 악평이 많아서 그런가 숙소도 더럽고 냄새날거 같았는데 그냥 평범한 유럽이나 한국 게스트하우스와 다를 바는 없었다.
“형, 우리 프리페이드 택시 사기당했어.”
우리가 지불한 택시 요금은 900루피였는데, 친구가 내일 아침을 위해 숙소 주인에게 물어본 공항까지의 택시 요금은 단 돈 110루피였다. 원화에서 루피로 갑자기 바뀐 환율 탓에 둘 다 머리가 굳어버린 탓에 만 오천 원에 육박한 돈을 주고 10분을 온 것이다. 심지어 택시 기사가 반값에 태워주겠다던 금액도 공항까지 가는 택시 요금의 5배였던 것이다.
인도 여행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두 가지인 미세먼지와 사기를 도착하자마자 당해버리니 어이가 없었다. 너무 황당하니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몸성히 도착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며 울며 겨자 먹기로 잠에 들었다. 이렇게 미세먼지 가득한 델리에서 하루가 지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첫날 목격한 인도의 첫인상은 후에 나타날 다양한 사건 사고의 전초에 불과했다.
허탈해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줘버린 돈이니. 이제부터는 흥정 잘해야지. 아니면 잘 알아보던가. 지갑에서 큰 돈이 나가버려도 배는 고프기 매한가지다. 일단 저녁을 먹지 못했으니 밥부터 먹어야 했다. 식당 추천 받으려고 물어보는데 길이 어려워서 가지는 못했고 그냥 눈 앞에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한국으로 치면 기사식당 정도 되려나. 손님도 한 테이블 밖에 없지만 안이 생각보다 깔끔했다. 물론 카운터 앞뒤로 꾸며진 힌두교 동상과 장식이 신기하긴 했다. 메뉴판도 영어, 힌디어 나뉘어 있고 무엇보다 채식주의자 메뉴가 따로 있었다. 힌두교랑 이슬람교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인도에 많다고 하더만 일반적인 식당에도 이렇게 나뉘어져 있어 신기했다.
버터치킨커리, 치킨 비리아니(볶음밥), 그리고 난 하나 이렇게 딱 한국에서도 만났던 그정도의 평범한 식사를 주문했다. 인도에서 첫 끼니다. 인도음식의 첫인상은 인도의 첫인상과 다르게 엄청났다. 맛있고 적당하고 양도 많다. 난은 바삭하고 깔끔했고, 치킨 커리는 매콤하면서도 부담이 없어 계속 손이 갔고, 안에 있는 치킨은 훈제한 듯 불맛이 살아있었다. 고수는 원래 안먹는데 볶음밥에 있는 고수는 외려 잡내를 잡아줬다. 볶음밥에도 고기가 숨어 있었는데 커리 안의 고기보다 닭고기 본연의 맛이 더 잘 났다. 음료수에 물 하나까지 해서 585루피, 도합 9천원 정도에 포식하고 났더니 순식간에 인도가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밥 다 먹고 입가심 용 디저트가 나왔다. 소금이랑 허브랑 섞인 무언가였다. 친구가 빠니보틀 유튜브에서 봤다면서 한웅큼 입에 집어 넣었다. 먹고 뱉어야 하나 그냥 삼켜야 하나 모르겠었는데 그냥 물이랑 같이 마셔버렸다. 식당이 숙소 바로 옆이라 올라와서 짐정리하고 씻었다. 내일은 7시에 일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