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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May 13. 2020

도망쳐 달아난 곳은 인도?

또다시 도망치듯 인도로



 잠에서 깨고 비몽사몽 한 와중 손을 더듬거려 휴대폰 시계를 확인했다. 상쾌한 아침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군용 텐트보다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한쪽만 끌어올리고 확인한 시간은 집을 나가기 40분 전이었다. 억지로 올린 눈은 다시 감겼지만 머릿속에서는 일어날까 조금 더 누워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똑같이 고민하게 되는 중대한 사항이다. 여기서 일어나 씻는 선택지가 아닌 조금 더 누워있는 선택지를 택하면 어떻게 될지는 수년간 쌓아 둔 데이터로 알 수 있다. 학교 첫 수업 시간은 아직 2시간이 남았지만 지금 일어나서 씻고 나가지 않으면 지각이 확실했다. 다년간 학교를 다니며 배운 것은 전공도 교양도 아니었다. 아침 7시 30분에 지하철을 타지 않으면 지각을 하고, 그 지하철을 정확히 타기 위해서는 7시 17분에 엘리베이터를 타서 7시 24분에 지하철 앞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으면 지각을 한다는 명료한 지식만 배우게 되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한 시간 반이 걸려 도착한 학교에는 어느덧 쌀쌀한 가을 공기가 찾아왔다. 대학교 3학년이 거의 끝나가던 가을, 서늘한 바람과 함께 학교엔 친구들도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이미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거나 전문직 자격증을 위해 고시원에서 공부하는 동기들이 사라졌다. 이십 대는 어느덧 중반을 지나 후반을 향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상상한 20대 후반의 내 모습은 무엇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아니 20살 새내기 때만 해도 20대 후반은 먼 미래였다. 그때만 해도 이 정도 나이면 뭐든 척척 해내고, 높은 오피스텔에서 혼자 고독하게 살면서 일을 하는 어른이 될 줄 알았다. 현실은 매일 아침 지하철 시간에 초조해하며 차갑게 녹슨 기계처럼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대학생이었다. 백세 인생이라고 불리는 시대지만,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자리잡지 못하면 은근한 걱정의 눈빛이 쏟아지는 나이였다. 내 새끼는 똑똑하니 언제든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던 부모님도 이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곤 했다. 곧 학교는 떠나야 하지만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뭔가 열심히 준비한 것은 없었다. 취업 준비로 한 것은 토익 하나뿐이었다. 20대 초반 호기롭게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 것이다 라며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실패하고 돌아오는 것은 절벽 끝에 서 있는 성적표와 이력서의 빈칸뿐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친구들은 과녁을 향해 활을 조준하고 있었고, 나는 과녁이 아닌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의 활은 어디를 향해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불타 오르다 못해 잿빛이 되어버린 마음과 달리 그날만큼은 하늘이 매우 맑았다.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푸르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었다. 오랜만에 학교에 남은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 먹게 되었다. 내가 아직 3학년 2학기를 다니고 있을 때, 친구들은 이미 4학년 생활을 마감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휴학을 하고 놀러 다니던 것과 달리 전역할 때부터 취업 준비를 했다. 정확한 과녁을 향한 삶을 살아온 성실한 친구들이었다. 인생의 계단을 하나씩 밟으면 사회인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 성실한 대학생이다. 이미 굴지의 대기업 면접을 몇 차례 통과한 친구도 있었고, 차근히 로스쿨을 준비하던 친구도 있었다. 미래가 거의 그려진 친구들의 관심은 이제 나에게로 쏠렸다. 도대체 뭐 해 먹고 살 생각이냐, 이번에 어디 공채가 떴더라 지원을 해 봐라 하는 사랑 어린 충고이자 조언이었다. 친구들은 언제나 나를 보며 구름 위를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미래에 뭘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언제나 식사를 하다 보면 이런 식으로 나의 미래가 이야기의 주제가 되곤 했다. 그러면 언제나 나는 내년부터 제대로 준비할 거라는 말로 방패를 세웠다.


“형, 할 것 없으면 그럼 나랑 인도나 가자.”


갑자기 뜬금없는 말이었다. 친구는 말을 이어갔다.


“이제 나 로스쿨 들어가면 여행도 못 갈 텐데, 여행이나 한번 갔다 올라고. 근데 형도 내년부터는 취업 준비 제대로 한다며. 그럼 여행이나 가면 되지. 형 어차피 대학생 생활 6년 넘게 하면서 여행밖에 한 거 없잖아. 이번에 인도 여행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취업 준비 확실히 시작하면 되잖아. 내가 요즘 유튜브 보고 인도에 꽂혔는데 혼자는 위험해도 둘이 가면 안전한 것 같아.”


딱히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언제나 내년부터 취업 준비한다고 말하고 오늘은 놀던 것은 나였다. 그런데 인도는 너무나도 뜬금없었다. 교수님이 자네 할 것 없으면 대학원이나 오지 그래?라는 농담을 꺼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유럽도, 미국도, 하다못해 동남아도 아닌 인도라니.


“너 요즘 여행 가고 싶다고 노래 불렀지?”


“그렇지.”


“그럼 둘이 가라.”


“너는?”


“나는 면접 있지”


“나는?”


“너는 할 거 없지.”


“나 공부해야지.”


“하이고 내년부터 한다며? 그리고 쟤 혼자 인도 갔다 뭔 일이라도 생기면 옆에서 챙길 사람은 있어야지. 가서 인생의 길도 찾아보고, 수양도 좀 해보고 하면서 뭐 먹고살지 고민도 하고.”


“그렇게 하면 답이 나올까?”


“나는 모르지. 근데 그거라도 안 하면 뭐 할 건데 이번 방학에?”


“그건 그렇지. 근데 왜 인도야?”


 이렇게 인도를 가게 된 것은 말 그대로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정해졌다. 인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위험하다’와 ‘더럽다’ 이 두 가지뿐이었다. 친구들과 밥 먹고 헤어진 후 서점에서 인도에 관한 책도 살펴봤지만 어려운 지명과 들어보지 못한 역사 때문에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사라진 인도였다. 삶은 화살 위에 탄 시간처럼 순식간에 지나갔고 정신을 차려보니 인도행 비행기에 탑승해 인도로 향하고 있었다. 바쁘게 살던 와중 친구가 비행기 예약하라는 말을 듣고 비행기 표를 산 것이 유일한 기억이었다. 인도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을뿐더러, 인도에 대한 막연한 환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행에 대한 계획조차 없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이런 무계획이 난무하는 여행은 해 본 적도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나는 비행기를 타고 델리 공항으로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를 보면 주인공 길은 할리우드에서 각본을 쓰고 있지만 언제나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 같은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언제나 벨 에포크라고 불리던 문학의 황금시대를 동경한다. 약혼녀와 파리를 간 길은 약혼녀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낭만과 문학이 가득한 파리에 대해 설파한다. 하지만 약혼녀는 길의 말에는 시큰둥하고 오히려 친구와 친구의 애인과 함께 파리를 구경한다. 실망한 길은 무도회를 가자는 말도 무시하고 혼자 호텔로 돌아간다. 호텔로 돌아가던 중 길을 잃은 길 앞에는 오래된 자동차가 나타나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가 있는 과거로 데려다준다. 


 길은 장인과 와이프 같은 주변으로부터 압박을 받는다. 그래서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 환상으로 여기던 세상으로 간다. (물론 이후의 이야기가 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겠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캄캄한 인생이라 생각할 때, 나에게 오래된 자동차처럼 뜬금없이 다가온 것이 바로 인도였다. 나도 영화처럼 갑자기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나를 받아줄 것이라 믿는 환상으로 떠난 것이 아닐까. 그것도 평소에 자주 보며 익숙한 여행이 아니라 단 하나의 정보도 없던 인도로 말이다. 아무런 감이 잡히지 않는 여행의 품에 안겨 전혀 사라지는 길을 택한 것이다. 무언가 쫓아오는 것은 없지만 언제나 쫓기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도망만 갈 수 없어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비행기에 숨어 인도로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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