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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Oct 09. 2023

낯선 인도에서 사기를 당했다. 당신의 행동은?

12월 25일, 바라나시 게스트 하우스

22시 04분. 게스트하우스


숙소는 어메이징하다. 그냥 혼돈 그 자체다. 긍정적인 의미로도, 부정적인 의미로도. 오늘 바라나시 구경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일기를 쓰러 루프탑에 올라왔다. 혼자 앉아 있으니 구경을 마친 여행자들이 하나둘 씩 모여 들었다. 그리고는 한 두명 씩 대마초를 피우기 시작한다. 좀 적응 안되서 내려왔는데 아까 만난 한국인 만나서 수다 떨었다. 나는 한국인 친구랑 왔고 불과 3일전만 해도 한국 사람들이랑 있었지만 이분은 핀란드에서 시작해 중동을 거쳐 인도까지 온 분이라 한국인이랑 오랜만에 대화하는 듯 했다. 이미 바라나시에 5일 정도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하고 친해 보였다. 저런 성격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게스트 하우스를 떠난 우리는 바라나시 강가에 있는 가트 쪽으로 걸어갔다. 가트는 물가의 계단 혹은 언덕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갠지스강 옆 계단같은 땅을 말했다. 사원부터 옛 귀족의 별장 등 다양한 모습의 가트가 있다. 걷다가 배가 고파져 근처 아무 식당이나 들어갔다. 그렇다고 너무 아무 식당은 아니고. 적당히 인도 현지 관광객들이 갈만한 그런 식당이었다. 

식당에 앉아 남인도식 탈리와 스페셜 탈리 하나를 주문했는데 엄청 많이 나왔다. 탈리란, 남아시아의 정식 요리로 우리나라 백반 같이 동그란 쟁반 안에 밥, 커리 난 그리고 달이 있는 음식이다. 내가 주문한 남인도식 탈리에는 밥과 난, 옥수수로 만든 듯한 과자맛의 나초, 달, 공항에서 먹은 것 같은 커리 2개와 짭짤한 야채, 그리고 약간 된 듯한 커리까지 푸짐하게 나왔다. 스페셜 탈리에는 더 많은 음식이 나왔다. 함께 나눠 먹는데 작은 고추가 하나 있어서 먹어봤다. 할라피뇨겠거니 하고 먹었는데 진짜 너무 매웠다. 과일리싸를 한 번에 원샷했는데도 매운 맛이 남아 있었다. 매운 정도가 청양고추보다 조금 더 매운 정도였다. 치즈가 두부처럼 들어간 빨락 빠니르가 가장 맛있다. 시금치 커리인데 안에 들어간 치즈와 잘 어울려 맛있다. 나중에는 커리끼리 밥 위에 섞여서 오묘한 맛이 났다. 향이 강하고 매운 맛도 강해 어느 순간 거의 다 비슷해 보였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서 이제 다시 갠지스강으로 떠났다. 떠나기 전 1층에 있는 환전소에서 환전을 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사건 접수 번호0000 - 분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환전소가 있길래 들어갔다. 함께 여행하기에 함께 돈을 환전해 공금으로 사용하고 있어 둘다 환전할 필요가 있었다. 환전소에 들어가니 테이블이 있었다. 테이블 앞에 앉으래서 앉았는데, 환전상이 순간 친구의 지갑이 궁금하다고 보겠다고 가져가 슬쩍 보고는 다시 돌려주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준 200 달러를 환전해 주었다. 나에게도 환전할 게 있냐고 묻고 내 지갑으로 손을 가져가는데, 남이 내 지갑을 만지는게 싫어 순간 확 뺏었다. 그리고 지갑에서 직접 200달러를 꺼내 주었다. 

환전을 마치고 나서 이제 슬슬 걸어 갠지스강으로 가려 했는데 친구가 무언가 잃어버린듯 온 몸을 뒤적였다. 분명 달러가 더 있어야 하는데 텅 비었고, 보조가방은 물론 옷 구석구석을 뒤져 보았다. 혹시 몰라 한국에 두고 왔는지 전화도 해 보았지만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도 캐리어에 있겠지 하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갠지스강으로 우선 걸어가 보았다. 강을 따라 가트를 하나씩 지나치며 걷는데 친구가 잃어버린 돈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한참을 가서 그래도 숙소 캐리어에 있을 수도 있다는 마지막 희망을 가진채 구경을 시작하기로 했다. 갠지스강 근처는 확실히 우리가 상상하던 인도와 비슷했다. 원숭이가 가득한 사원도 있었고, 어디를 가도 개와 강아지가 누워 있고, 소가 걸어다니기도 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소끼리 이마를 부딪치며 소싸움도 하고 있었다. 청도 갈 필요가 없다. 인도에서 소싸움을 다 볼 줄이야.

걷다보면 종종 무언가 태우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큼직하게 태우며 주변에 사람들이 둘러 서 있는 것은 분명 화장하며 죽은 자를 보내주는 모습일 것이었다. 나무를 쌓아 올리지 않고 작은 모닥불처럼 불이 올라오는 것이 있길래 죽은 동물을 화장하는 것인가 싶었는데, 시체를 태우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추우니 불을 쬐고 있는 사람들이었따. 날이 추우니 아무것이나 태우고 있었다. 불 앞에 벤치에 잠시 앉아 있었더니 한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화장하는 모습을 처음 보냐고 물었다. 우리는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긴 하지만 직접 타는 모습을 보지는 않아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할아버지는 한국의 장례 문화가 궁금하다고 물어보았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한국의 장례 문화를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다. 말을 하면서 오히려 머리 속에 울 문화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한국은 예전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매장을 많이 했지만, 불교 신자들도 많은 나라였기에 화장에 큰 거부감이 없다. 게다가 매장하기엔 땅이 부족해 요즘은 화장을 많이 하는 중이라 말해 드렸다. 그러니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인도의 문화를 말해주었다.


힌두교인도 많고 무슬림도 많은 인도에서 장례법은 종교에 따라 갈린다. 힌두교인들은 화장을 하고 내세를 기원하지만, 무슬림들은 보통 매장을 많이 한다고 말해주었다. 같은 나라에서도 문화권에 따라 작은 부분에서도 이렇게 차이가 난다. 이게 인도의 매력이지.


할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슬슬 숙소쪽으로 이동했다.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친구가 숨을 헐떡이며 환전상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말했다. 무엇인가 했더니 우리가 갔던 환전소에서 우리처럼 지갑을 뺏기고 돈을 뺏긴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라는 구글 맵의 후기와, 네이버 카페의 후기로 드러나 있었다. 



*사건 접수 번호0001 - 사기, 기망


방법은 이랬다. 환전상이 지갑을 본다고 하며 낯선 공간에 들어와 몸이 경직된 사람들의 지갑을 가져간다. 한 발 늦게 지갑 주인이 인지하기 전, 환전상을 지갑에서 돈의 일부를 슬쩍 빼 테이블 밑으로 숨긴다. 그리고 다시 태연하게 지갑을 돌려준다. 그리고는 천연덕스럽게 돈을 바꿔주면서 환전 수수료도 가져간다. 인터넷에 나온 수법은 우리가 당한 수법이랑 똑같았고, 당한 사람도 많았다. 


친구는 당장 돌아가서 따지려 했다. 나는 솔직히 가긴 싫었다. 밤에는 돌아다니지 말라는 동네에서 한 밤중에 그것도 싸우러 간다니 나에게는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이미 화에 잠식되어 있었다. 결국 반 강제로 일단 환전소 앞까지 갔다. 가는 길에 친구는 자기가 들어갈테니 밖에 누가 오지 못하게 문을 몸으로 막고 있으라 했다. 문을 벌컥 열면서 화를 내는 친구를 본 환전상은 우선 어린 아들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나 역시 문 밖에 서 있었는데 어린 아들들은 문 앞 계단에 앉아 작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뒤에서 들리는 소리를 유심히 듣고 있었다.


한 5분간 큰소리가 오갔다. 물론 대부분의 목소리는 화가 난 친구의 목소리였다. 조금 잠잠해진 후에 문이 열렸다. 긴 시간이 지난 줄 알았지만, 단 10분만에 끝나버렸다. 친구의 얼굴은 조금 밝아졌다. 혹시나 해서 들어갔더니 환전상을 커피를 내온다. 


"나는 착한 사람이라 너가 돈이 없다니 돈을 주는 거다. 세상은 자기가 확실하게 살아야 한다. 사기는 당하는 사람이 잘못이지 하는 사람의 잘못은 아니다. 나는 브라만이라 이런 사기 안치는데 네가 한국 갈 돈이 없다고 사정하니까 호의로 주는 거다." 


말이나 못하면. 구글 리뷰에 사기쳤다고 다양한 국적의 언어로 성토를 하는데 이렇게 뻔뻔할 수가. 한참 싸우다가 돈도 돌려받고, 커피도 얻어 마시고, 결국 인도에서는 속는 사람만 바보라는 명언까지 듣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온 몸이 긴장 때문에 식은땀이 흘렀다.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도 몸이 달아올랐다.


가는 길에 친구에게 어떻게 말했길래 받아냈냐고 물었다. 친구는 첸나이 현대차에 삼촌이 부사장으로 지내고 있고 첸나이 경찰 서장이랑도 친구라고 거짓말을 했었다. 그리고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했다. 인도는 공권력이 강해 경찰이 연결되면 환전상이 무조건 손해인지라 그때 테이블에 돈을 슬며시 올려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그 돈이 한국 갈 비행기 티켓 비용이라 없으면 집 못간다고 하니 결국 돈을 주었다고 한다. 웃긴건 얼마라고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딱 잃어버린 비용 만큼 주더란다. 참 대단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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