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델리 국내선 대기 중
12월 25일 10시 33분 델리 공항 게이트
공항이다. 시계 확보가 불가능한지 자꾸 비행기가 딜레이 된다. 걱정이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여행에서 특히 이렇게 일정이 꼬이는 일은 너무 불안하다. 낯선 곳에서 최소한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일정을 짜 두는 것인데 만약 조금이라도 꼬이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감이 안온다. 가려던 식당이 문을 닫아도 불안한데 비행기가 연기되거나 취소된다면 더 무섭다.
아침에 너무 추워서 새벽에 깨버렸다. 다행히 다시 잠들고 7시에 알람이 울려 일어났다. 방에는 우리 말고는 없었다. 시차가 딱 5시간이니 한국은 낮이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네.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타국에서 보낸 적이 없었는데 다른 나라도 아닌 인도에서 보낸다니 기분이 묘하다.
씻고 나오니 어제 체크인 할 때 봤던 아들 주인이 잘 잤냐고 물었다. 시위 근황에 대해 물어보니 좀 심하댔다. (이 시기 이슬람교 과격 시위가 델리 시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짐을 칭겨 나와서 우버를 불렀다. 어제 심하게 데이니 우버를 우선적으로 찾게 되었다. 우버를 잡기 전에 혹시 몰라 다른 택시를 잡고 한 번 가격을 물어보려 했다. 서 있는 택시에 가까이 다가가는데 한 젊은 현지인이 다가와서 공항 가냐고 한국어로 물었다. 그리고는 여기서 공항 가는 법을 친절히 알려줬다. 어떤 버스타면 싸고 빠르게 간다고 했다. 낯선 환경에서 만나는 한국어는 그 무엇보다 반갑다. 한국어를 곧잘했는데 알고보니 대한항공에서 일했던 친구였다.
우버가 아직 도착 하지 않았고,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고, 가격도 저렴하니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데 마침 우버가 도착했다. 인도는 우버가 잘 되어 있어서 신기했다. 나는 아직 데이터가 없으니 친구가 찍었는데 110루피라고 폰에 표시되었다. 공항까지 110루피라니, 어제는 완전 사기 먹은 거였다. 900루피라니 말도 안되게 눈탱이였네. 심지어 택시기사도 깎아서 600에 준다고 했으니 얼마나 해먹으려 했던 것일까. 어제 받은 명함 무시하고 우버 타길 잘했다.
터미널 2로 가는데 인도 공기가 진짜 나쁘다는 것이 아침에 더욱 실감이 났다. 어제는 밤이라 잘 몰랐는데 낮이 되니까 피부도 당기고 하늘도 뿌옇고, 심지어 오늘 날씨가 맑음인데 언뜻 보니 흐림같아 보일 지경이다. 눈이 너무 아프다.
공항에 도착해서 줄을 서는데 우리 비행기가 연착되었다고 떠 있었다. 수화물을 보내고 공항에서 뭔가 먹으려했는데 안에 별게 없어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라이터는 뺏겼다. 한국은 하나 허용인데 여기는 테러에 민감하다. 공항 게이트 안은 마치 한국 버스터미널 같아 보였는데, 은근히 식당은 많았다. 피자헛, 커피숍, 인도식 식당들, 서브웨이 등 다양하다. 인도 음식점이 하나 있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지, 그냥 주문했다. 인도식 콤보라고 되어 있길래 그냥 눈 딱 감고 1번, 3번 이렇게 달라고 했다.
그러니 애기용 식판처럼 생긴 무언가에 버터가 들어간듯한 커리, 두유 맛의 무언가, 매콤한데 묽은 커리가 담겨 있었다. 거기에 과자처럼 바삭한 난이 한 세트, 같은 모양인데 겉은 노랗고 달달한 이름 모를 것까지 하나의 세트였다. 두 세트 다 술빵 같은 맛의 부드러운 빵과 도넛같이 쫄깃한 빵이 포함되어 있었디. 원래는 음료수로 세븐업 시켰는데 그냥 물이 나왔다. 차라리 그냥 물이라 비행기에서 마실 수 있어서 다행이다. 버터 커리 같은 것은 어제 먹은 것과 같은 맛이었는데 초록색 두유 같은 것은 우유가 들어가 부드럽지만 검은색 기름이 올리브나 발사믹처럼 되었는데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맛이 약해 다른 것부터 먹으니 그닥 느낌이 없었다. 묽은 커리는 안에 계피인지 헛개나무가 하나 들어있었다. 커리들과 흰색 술빵을 먹고 크고 바삭한 난까지 먹었더니 접시 하나가 금방 동났다. 친구한테 있던 노란색 무언가는 유튜버 빠니보틀의 영상에도 나왔던 것이었다. 먹어보니 잘게 다진 조 같은 호박 맛이었다. 나는 나름 먹을 만 했다.
다 먹고 치우려 보는데 청소부가 와서 바로바로 치워준다. 커피 마시면서 하루치 돈 쓴 거 계산했는데 하루 3만원 정도 쓸 듯 하다. 먹고 우연히 친구는 휴대폰 번호로 와이파이가 된다는 것을 들었다. 아쉽게도 나는 번호가 안터지는지 안되었다.
휴대폰 데이터가 없으니 힘들다. 그런데 또 나름 일기 밀리지 않고 쓰는 맛이 있다. 한국에서는 너무 휴대폰을 많이했다. 생각해보면 휴대폰이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시간이 없고 노래나 동영상이 휴대폰에서 멈춘 적이 없다. 인도에 와서야 겨우 멈춘 휴대폰이다. 휴대폰에게 휴식을 주고 내 뇌에도 휴식을 준다. 그래도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 지루한데 다행히 책을 넉넉히 들고 왔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와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를 들고 왔다. 이번 여행에서는 읽은 책을 다시 읽기 위해 가지고 왔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많으니 그동안 새로운 책을 읽기에는 지나치는 풍경에 눈이 팔려 제대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새로운 책 읽기 보다는 읽었던 책 또 읽는게 좋더라. 집중력이 약해진 탓인가.
오랜만에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휴대폰이 아닌 책과 노트를 들었다. 색다른 낭만이다. <여행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