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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Oct 06. 2023

정말 '인도'다움을 만나다

12월 25일, 바라나시행 비행기

바라나시행 비행기 12시 40분

11시 넘어서 슬슬 게이트 앞으로 갔다. 하지만 원래 출발 시간을 훨씬 지나서 11시 30분이 되어서야 전광판에 우리 비행기와 게이트가 떴다. 탑승하라는 표시가 아니라, 게이트만 알려 주는 정도였다. 기차가 연착된다는 사실은 인터넷에서 하도 많이 보고 유명하기도 해서 알고 있었지만 비행기도 그런 건가. 예전에는 인도에 한국인 여행자가 많았다고 들었는데 이 넓은 공항에서는 한 명도 못 봤다. 신기하다. 수도에 있는 공항에서 이렇게 한국인 없는 건 오랜만이다. 


인터넷에서 자주 접하던 인도에 관한 안 좋은 뉴스 때문에 여행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나 혼자 생각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왜 대체 안 뜨지 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비행기 연착 사유 물어보는데 아무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불안해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오고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드디어 12시 40분에 비행기가 이륙하기 시작한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공항 바깥 풍경은 역시 안개 낀 듯 미세먼지 가득했다. 이제 바라나시로 떠난다.



바라나시행 비행기 13시 40분

황토색으로 된 진흙 속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기분이다. 비행기가 떠나고 한동안은 구름만 보이더니 바라나시 인근 상공으로 와서는 하늘과 땅의 경계에 검은색 무지개 같은 띠가 보였다. 저게 다 먼지다. 


인도 대륙은 길고 긴 갠지스 강을 따라 온통 농경지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도시에는 그렇게 많은 건물과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이쪽으로 오니 오히려 들판밖에 보이지 않는다. 멀리 검은 먼지 띠를 제외하고는 보기 괜찮은 풍경이었는데 천천히 고도가 낮아지면서 서서히 진흙색 구름이 나타났다. 비행기가 천천히 착륙을 시도한다. 비행기에서는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실패한 여행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실패한 여행기. 기껏 돈 써서 왔으니 실패한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거꾸로 실패한 여행에서 나오는 이야깃거리에는 두근거린다. 아이러니하다.


바라나시 게스트 하우스 20시 37분


어메이징한 하루가 지났다. 본격적으로 인도다. 이게 인도구나 싶다. 뭔가 인도다운 하루였다. 


비행기가 착륙을 한 이후 내리니 생각보다 공기가 괜찮아 보였다. 뉴델리보다는 여기가 그래도 깨끗한 공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가까워 금세 도착했다. 공항에서 머뭇거릴 시간 없이 바로 빠져나왔다. 비행기가 오기 전에 좀 연착되어서 그런가 내릴 때 다음 비행기 타는 사람 있으니 빨리 내리라고 재촉했다. 버스나 택시처럼 빨리 내리라고 재촉하는 비행기는 처음이다. 내리고 있는데 비행기에서 우리 수화물을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짐을 찾고 나가서 우버를 불렀다. 어제는 바가지를 쓰였지만 오전에 확인한 우버의 위대함 덕분에 우버 신봉자가 된 우리였다. 우버로 600루피 정도 나온다고 떴길래 바로 승낙했더니 기사가 금세 도착했다. 차 타고 나가는데 공항을 빠져나가자마자 인도의 빈촌이 나타났다. 


논 밭을 지나 길거리 사람들, 1층짜리 집과 각종 쓰레기들이 여기가 인도라는 사실을 한 번에 보여주었다. 짙은 미세먼지 사이에 퍼지는 푸른 나무들과 들판, 그리고 2~3층의 허름하고 공사판 같은 집들 사이로 연이 날아다닌다. 아이들이 날리는 연이다. 여행객의 입장으로 섣부른 판단은 위험하다. 하지만 바라나시에 도착해서 처음 보이는 모습이 이러니 인도의 빈부격차가 여실히 보이는 기분이었다. 


한참 그런 풍경들이 이어지다가 어느새 시내에 근접했다. 델리는 약과였다. 시내에 들어서니 교통체증이 시작했다. 수많은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거북이보다 느린 속도로 도로에 가득 찼다. 사람들이 중간중간 그 사이를 메꾸고 있었다. 유리병 속에 자갈을 넣고 조약돌을 넣은 다음에 그 사이에 모래를 넣은 기분이다.



택시 기사 말로는 크리스마스라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렇다고 한다. 힌두교나 이슬람이 가득한데 크리스마스가 큰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상 크리스마스는 이제 전 세계의 축제가 되었으니 뭐 할 말은 없다. 


한 참을 그렇게 느리게 오다가 겨우 우리 숙소 근처로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든 생각은 정말 ‘인도스럽다’였다. 공항 근처에 있던 도시와는 완전 다른 기분이다. 상점들의 간판부터 파는 물건들 모두 신기하고 기이하다. 각각의 건물과 상점이 모여 있으니 혼돈의 모습인데, 막상 각 가게들은 깔끔하고 정렬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전부 다 괜찮은 건 아니고. 


드디어 길거리에서 소와 말, 닭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 역시 인도스럽다. 머리 위에 어지럽게 늘어진 전선마저도 신기했다. 숙소 근처에 도착했으니 700루피를 건넸다. 원래 이런 여행지는 잔돈 없다고 그냥 다 받으려고 하는데, 이 아저씨는 거스름돈 바꾸러 옆에 상점에 가서 친히 돈을 바꿔주었다. 팁 조금 주고 나서 라이터 어디서 사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받은 팁으로 성냥도 사다 주었다. 작은 호의지만 큰 기쁨이다.


도로를 건너서 숙소로 들어가야 했는데 소와 차와 사람과 오토바이 가득한 길을 건너기는 쉽지 않았다. 사람보다 오토바이가 더 많아 위험했다. 한 아저씨가 우릴 보더니 어디 가냐고 물어보길래 지도 보여주었다. 그러니 우리를 데리고 길을 건너는데 순식간에 건넜다. 건물도 높고 골목도 복잡한데 아저씨가 걱정하지 말라면서 우리를 데리고 숙소가 있는 골목까지 와주었다. 고맙긴 한데 팁이나 이런 거 때문에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냥 담배 한 대만 달라고 해서 주었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했다. 와 정전이다. 일기 쓰는 여기 옥상에 있는데 모든 불이 다 꺼졌다. 정전은 처음이라 신기하다. 한 다섯 명이 테라스에 있는데 각자 다른 얘기 중이다. 일단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다행히 5분도 되지 않아 불이 다시 돌아왔다. 아무튼 체크인을 하는데 한국인 한 명이 있어서 신기했다. 거의 한국인은 안 보이는 데 있어서 조금 마음이 놓인다. 방은 8명이 쓰는 방이다. 게스트하우스 가격은 매우 저렴한데 생각보다는 깨끗해서 좋다. 조금 자유로운 분위기에 방은 좁지만 침대는 넉넉하다. 짐도 침대 위에 올려도 자기 충분해서 안전을 위해 짐은 내 침대 위에 두었다. 


짐을 두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배고파서 갠지스 강 쪽으로 가는데 교회 앞 쪽에서 자신이 갠지스 강으로 데려다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인도 오기 전 읽은 블로그들에서 이런 사람들이 가이드비나 자기 가게로 유도한다는 이야기를 읽어서 그런지 경계심이 생겼다. 그냥 우리끼리 갠지스 강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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