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치의 창을 넘어 총천연색의 여행으로
나는 중독에 약하다. 초등학생 때는 게임에 빠졌다. 시끄럽게 더운 열을 뿜어내는 컴퓨터를 이불로 덮어 소음을 없애고 게임에 빠졌다. 모니터 빛이 새어 나갈까봐 그 이불을 뒤집어 쓰고 게임을 했다. 방에서 주무시는 부모님이 혹시나 깰 까봐 노심초사하며 새벽 내내 잠을 못 이루었다. 중학생 때는 걸그룹에 빠졌다. 이름부터 아름다운 소녀시대에 빠져 모아둔 용돈은 모조리 앨범이나 콘서트 티켓을 사는데 써버렸다. 어쩔 때는 책에 빠져서 공부도 내팽겨치고 책만 죽어라 본 적도 있었다. 다른 중독에 관해 말하자면 끝도 없다.
마치 ADHD를 의심케 할 정도로 한 번 중독되면 다른 것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때도 중독된 것만 미친듯이 생각나는 중증 중독이다. 이렇게 중독에 약한 나는 20살부터 스마트폰에 빠져 살았다. 나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거의 대부분 스마트폰에 빠져 살지만 가끔 돌이켜보면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 스마트폰을 만들었을 때 자신의 발명품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는 상상할 수 있었을테지만, 이렇게까지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등교나 출근을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보고, 학교나 직장에 도착해서도 5분에 한 번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메신저나 SNS의 알림이 없어도 스마트폰을 켰다 끄고 다시 확인하는 이런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도 거대한 TV를 앞에 두고 스마트폰을 만지고, 자기 전에도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꼽고 듣다가 잠에 든다. 게임이나 알코올 중독보다 강력한 것이 스마트폰 중독인 것 같다.
여행에서도 스마트폰은 나의 생명줄이며 마약이었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준 모르핀에 중독된 환자처럼 스마트폰은 있으면 남용하고 없으면 불안했다. 스마트폰이 개발되기 전 여행을 떠났던 선배 여행자들은 지도와 가이드북을 가지고 세상을 누볐다. 숙소나 교통 수단들도 역에 마중 나온 호객꾼들을 따라가거나 추천을 받아 이용하고,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이 되었다. 혼자 있을 때도 사색을 하거나 여유롭게 뇌를 쉬게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발달한 이후 여행은 더욱 편리해 졌을지 몰라도 깊은 생각에 잠기거나 멍 때리는 여유로움은 사라졌다.
인도 여행을 떠났을 때 역시 스마트폰은 동반자였다. 인도에서는 기차 시간이 길고 이동 거리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 스마트폰 없는 여행은 상상하지 않았다. 미세 먼지가 가득한 델리 공항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8시였다. 유심을 사기 위해 공항에 있는 통신사를 찾아갔는데 인도에서는 유심을 꽂으면 바로 개통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날 12시가 되어야 사용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공항에서 유심을 사면 가격도 비싸고 사기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본 기억이 떠올랐다. 함께 간 친구는 로밍이 되기 때문에 하루 정도 스마트폰을 못 쓴다고 큰 일이 날까 싶었다.
다음날 아침, 다시 인도 국내선을 타고 그 유명한 바라나시로 아침 일찍 떠났다. 갠지스강으로 유명한 바라나시는 다른 도시들보다 최소 수 백 년은 더 오래된 탓에 도로, 건물 모두가 추상화처럼 어지럽게 늘여져 있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이동하는 시간은 택시로 한 시간이 걸렸다. 평소라면 신기함에 밖을 한 번 봤다가 다시 스마트폰으로 눈을 돌렸을테지만, 유심을 사기 전까지 스마트폰은 사진기에 불과했다. 사진은 나중에도 많이 찍겠지라는 생각으로 창문 밖만 바라봤다.
알아 들을 수 없는 힌디어로 가득 찬 간판들 아래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보다 많은 소와 개, 그 동물들보다 많은 오토바이와 자동차들로 거리는 가득 차 있었다. 사람과 릭샤, 차량으로 정체된 도로의 사이에 테트리스 마냥 껴 있는 다양한 동물들까지 합세하니 생전 처음보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작고 네모난 유리에서 넓은 유리로 눈을 돌리니 더욱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있는가 하면, 다 허물어져가는 판자집 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무심코 지나칠 뻔한 작은 것들도 세심하게 바라보니 세상이 더욱 화려한 색상으로 다가왔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니 유심을 사야 된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스마트폰 없이 만난 이 도시의 다채로움이 꼭 유심을 사야 한다는 조바심을 없애 주었다. 유심 판매점을 찾으러 다니기 보다 눈에 들어오는 각양각색의 건물들과 발 밑의 동물들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내일 사면 되겠지 라는 생각은 하루 하루 쌓였고, 결국 3일이라는 기간동안 바라나시에서 유심 판매점을 찾지 않고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고 이동한 도시에서 또 같은 일들이 반복되어 결국 유심은 여행이 끝날 때 까지 사지 않았다.
그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여행을 하면서도 스마트폰의 사용은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나라에 가서도 가이드북에 나온 장소나 맛집만 찾아가고 그 도시가 가진 매력을 찾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수박 겉 핥기의 여행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SNS에 자랑하고 또 이 동네에서 놓친 것이 있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보기 일쑤였다.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여행을 하면서도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스마트폰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나온 신조어로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이 있다. 독을 해소한다는 디톡스라는 단어처럼 디지털 사용을 줄이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일을 말한다. 사실 일상에서 한 뼘 거리에 있는 사람끼리도 스마트폰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등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니 생각이 줄어들었다. 청각과 시각에 의존하는 강한 자극에 익숙해져서 뇌로 무언가 생각하지 않는 기분이다. 디지털 디톡스는 이런 현대인들이 자발적으로 스마트폰을 포함한 디지털 기기에서 멀어지면서 자극의 시간이 아닌 생각, 사유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어쩌다 보니 디지털 디톡스를 하게 되었다. 7인치의 작은 창을 벗어나니 세상의 다양한 색채가 눈에 들어왔다. 바라나시에서 평소면 그냥 지나쳤을 사원의 작은 조각들도 세심하게 관찰하게 되었다. 연못 사이로 지는 석양이 유명한 도시 푸쉬카르에서는 3일 연속으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봤다. 서울에서 퇴근길에 해가 지는 모습을 보았을 땐 매일 같은 태양이구나 생각하며 다시 스마트폰 화면으로 눈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호수와 하늘 사이로 사라지는 석양을 가만히 앉아 한 시간 가량 바라보니, 어제와 오늘의 태양이 다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