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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Oct 20. 2020

외로움은 감정의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

외롭다면 카를교엔 가지 말기를

 프라하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명소 중 하나는 아름다운 카를교이다. 프라하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뿐더러 그 어느 곳보다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카를교 아래에는 거울처럼 잔잔한 블타바강이 흘러가고 강을 따라 함께 흘러들어온 바람은 선선하게 콧잔등을 간지럽힌다. 강변에 융단처럼 깔린 푸른 나무 아래엔 백조들이 평화롭게 졸고 있고 다리 위의 악사들은 음악 소리로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다리에서 고개를 들면 프라하성이 저 멀리 보인다. 첨탑이 뾰족한 프라하성은 디즈니랜드 만화에 나올 법한 낭만적인 성이다. 그리고 수많은 커플이 다리 위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이 모든 순간이 모여 세상 그 어떤 다리보다 로맨틱한 카를교가 완성된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이후로 우리나라에서 프라하는 낭만과 로맨틱한 도시로 언제나 커플이나 신혼부부에게 사랑받는다. 그 때문인가, 주변에서 체코어와 맞먹을 만큼 한국어가 귀를 때렸다. 해외여행을 하며 이렇게 한국어가 많이 들린 적은 처음이었다. 한국어로 서로의 애칭을 부르며 카를교를 지나가는 그들을 보니 정말 행복해 보인다.


 이런 멋진 도시에서 나 홀로 여행가는 불청객이다. 행복한 표정으로 찍는 사진 사이에 갑자기 튀어나와 인생샷을 망치기도 하고, 줄 서서 기다리며 들어가는 멋진 강변의 레스토랑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기다리는 커플에게도, 레스토랑 주인에게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불청객이었다.


 로맨틱한 카를교를 혼자 카를교를 건너고 있으니 갑자기 나는 혼자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라는 한탄이 생긴다. 여행하면서 외로움을 느낀 적은 가끔 있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모국어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 서니 더 증폭되었다. 이렇게 멋진 장소에서의 추억을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꿀이 떨어지는 듯한 눈으로 바라볼 상대가 없다는 슬픔이 만들어낸 이 외로움은 허탈함을 동반했다.


 한국인 커플들을 보고 느끼는 옆구리 시린 기분은 누군가의 온기가 없어 찾아오는 한기 같았다. 이 도시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따듯한 봄바람을 느끼고 있는데 나 혼자 찬 바람이 흘러오는 동굴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꼭 연인 간의 스킨십을 말하는 건 아니다. 한 사람의 사랑할 때 나오는 표정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해 전하고 싶은 표현을 카를교 위의 모든 사람은 누리는데 나만 누리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도 동시에 나타났다. 무인도에 혼자 떨어진 감정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오늘처럼 로맨틱한 장소를 가도 혼자였고, 멋진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언제나 혼자였다. 혼자 여행을 가면 뭐든 자유롭기 때문에 외로울 틈이 없을 줄로만 알았다. 문득 찾아오는 쓸쓸함은 예상하지 못했다. 재밌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도 숙소에 들어와 침대에 눕게 되면 외로움이 슬며시 다가왔다. 혼자 간직하는 경험보다 함께 공유하는 경험이 더 풍부하게 기억되기 때문에 오늘 있던 일은 나 혼자만의 일기 속에만 저장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을 할 상대가 없으니 더 슬퍼졌다. 더욱이 이런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 괜히 휴대폰만 들락거렸다. 누군가에게 연락할까 생각하다가도 이내 그만두었다.


 이런 한탄을 들어줄 사람도 없었고, 혼자 여행하는 걸 선택한 사람도 나였기 때문에 핑계를 댈 곳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여행을 떠나온 이유는 남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에 피로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혼자만의 여행만이 외로운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일이 끝나 혼자 어두운 방 안에서 맥주를 마시다 보면 문득 외로움이 찾아왔다. 각각의 외로움들이 있지만 외롭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각기 다른 말들이었다.




 외로움은 다양한 형태로 찾아온다. 너무 많은 외로움들이 산재해 하나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외롭다는 단어는 하나의 감정만 담기에는 너무 거대한 표현이다. 온기의 부재이기도 한 외로움이지만, 대화 상대의 부재로 나타난 외로움일 수 있다. 혼자 힘들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고독하거나, 공허하거나, 삶이 허무하거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거나,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 때도 외롭다고 한다. 머리 안에 있는 모든 섬세한 감정들이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우리는 이 모든 감정들을 뭉뚱그려 ‘외롭다’라고 해버린다. 외롭다고 툭 던져 버리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감정들이다. 친구들과 만나고 바쁘게 살아가다 문득 혼자 지하철에 앉아 어두운 창문에 내 모습이 비칠 때, 가슴 한 쪽이 시큰할 때도 외롭다. 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에 주황빛 하늘이 파란색을 만나 어지러울 때도 한숨을 쉬면서 외롭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혼자 있더라도 문득 외롭다.


 외롭다는 건 무언가 비었다는 것이다. 사실 외롭다는 말로 뭉뚱그려 채워지지 않은 내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한 탓이 아니냐는 생각도 한다. 그냥 외롭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마음에 걸리는 원인을 숨기는 기분이다. 외롭다는 이유로 연인을 갑자기 만들게 되면 외로움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건 쓸쓸해서 만든 관계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남자친구를 만난 후배는 “외로우니까 만나지 지금 남자친구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라며 자기감정을 슬며시 숨겼다. 혼자 작은 고시원에서 공부할 때도 외롭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힘들어서 나온 탄식이었다.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이 옳은 길인지 몰라 힘든 것을 외롭다고 숨겼다. 내 안에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 부끄러워 외롭다고 덮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외롭다는 말은 결국 감정의 실타래다.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감정들이 한데 묶여 외롭다는 한 단어로 나온다. 엉망으로 묶여버린 실은 하나씩 풀어야 하는데, 감정을 칼로 잘라버리듯 외로움의 해결을 연인을 만드는 것으로, 혹은 누군가와 만나 노는 것으로 처리해 버리면 결국 다시 스멀거리며 올라온다.


 헤어진 연인의 빈자리인지,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의 부재인지, 대화 상대의 공백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무언가 없기 때문에 이 외로움이 생겼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만으로 표현하기 복잡한 감정들이 서로 만나 오늘 카를교에서 외롭다는 한탄으로 터지게 되었다. 결국 오늘의 외로움에 대한 원인은 찾지 않고 덮는 길을 택했다. 커플들을 피해 카를교가 보이지 않는 구시가지 안의 카페로 이동해 숨어버렸다. 하지만 커플들이 보이지 않아도 외로움은 슬며시 다시 올라오며 해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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