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11시 45분 자이살메르 포트 안 카페
1월 2일 11시 45분 자이살메르 포트 안 카페
오늘 아침에 자이살메르에 도착했다. 이제 추위와의 싸움이 시작된 듯하다. 내일 가는 사막은 추워서 어떻게 버틸지 걱정이다. 상민이는 조금 아파 누워있어서 혼자 나왔다. 입김도 나오는 날씨다.
어제 카페에서 나온 이후에 달리 할 일이 없으니 선셋 포인트로 갔다. 다시 한번 더 일몰을 보러 갔다. 일몰도 보다 보니 중독성이 있다. 해가 지기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는데, 푸쉬카르는 그다지 춥지는 않아서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 있었다. 앉아서 가져온 <언어의 온도>를 다 읽고 심심해서 사람 구경을 시작했다.
어제와 같이 악사들이 연주하고 주황색 옷을 입은 수도사가 춤을 추고 있었다. 화려한 옷에 장신구 잘그락 거리는 소리 덕분에 눈이 안 갈 수 없었다. 더 신기한 건 원숭이신인 가네쉬 동상 옆에 원숭이들이 떼 지어 모여 있었다. 자기들 모습인 걸 아는 것일까. 한 마리만 바라나시에서 본 듯한 붉은 얼굴의 원숭이고 나머지는 이 동네의 검은 얼굴을 한 원숭이들이었다. 원숭이가 신기하니 사진 찍으면서 놀고 있는데 셀카 찍으러 다가가니 화를 냈다. 원숭이 눈을 계속 쳐다보면 싸우는 줄 안다고 하더니 진짜인가 보다. 원숭이들이 모여있는 동상 밑에는 한 마리의 개가 다가와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견원지간이라고 하더니만 오히려 개와 원숭이는 서로 시큰둥하게 관심이 없었다. 뒤에 서 있는 나무에는 소 한 마리가 다가와 이파리를 뜯어먹는데 레스토랑에서 한 종업원이 나와서 이파리 뜯어먹는 소를 쫓아낸다. 소, 개, 원숭이, 염소, 인간 모두 모여있는 이곳이야 말로 지구의 용광로가 아닐까.
한참 동물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어제와 같이 해가 사라졌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갔다. 고빈다가 편하게 있으라며 짐을 맡아두니 편했다. 그 보답으로 저녁은 이곳 레스토랑에서 또 먹었다. 옥상에 올라가 카슈미르 밥, 라자냐, 매쉬드 포테이토 그리고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주문하고 또 한동안 인터넷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와 전화해도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맛있으면 괜찮지 뭐. 그런데 그냥 요리하는데 오래 걸리는 줄 알았는데 20분 정도 지난 후 셰프가 우리한테 와서 인사를 건넸다. 사람이 없는 호텔이라 그런지 셰프가 다른 곳에서 온 것이었다. 인사를 하고 주문 확인하고 드디어 조리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더 기다린 후에 드디어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라자냐는 역시나 맛있었다. 화이트소스라 맛있었는데 매쉬드 포테이토는 어제 조식으로 먹은 호텔보다 별로였다. 같은 음식을 먹어보니 요리 실력의 차이가 느껴졌다. 그리고 대망의 카슈미르 밥. 대체 무슨 음식인지 모르지만 우선 밥이라고 하길래 주문했었다. 카슈미르는 이 동네가 속한 주의 이름이고, 밥은 밥이니 우리는 전주한상 혹은 통영한상 같이 한상차림인가 싶어서 주문했었다. 그런데, 살면서 절대 만날 수 없던 밥을 만났었다. 밥도 아니고 디저트도 아니고 이건 대체 무엇인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는 실패한 음식에서 성공적인 여행기가 나온다고 했는데, 글쎄요 작가님… 이건 특별한 식재료도 아니고 먹기도 힘들고 재미도 없는 음식인데요…
겉으로 본 푸쉬카르 밥은 토마토 양파 볶음밥처럼 생겼었다. 상민이가 먼저 먹은 후에 소리를 질러서 놀랐다. 나도 그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한 숟가락 먹어 보았다. 세상에 세상에… 단 맛과 화장품 맛이 동시에 느껴졌다. 과일을 핸드크림에 찍어서 밥과 먹는 기분이랄까. 자세히 보니 말린 과일, 생과일, 우유를 넣고 향신료와 섞어 볶은밥이었다. 차라리 고수를 먹으라면 먹겠다. 섬유유연제 맛이라고 해야 하나. 달달한데 향도 이상하고 묘사하자면 끝이 없다. 그래도 야간 버스를 타야 하고 시켰으니 먹긴 먹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보았다. 라자냐 소스, 후추, 핫소스, 소금 다 찍어 먹어보았지만 실패였다. 소금이 그나마 괜찮았지만 그래도 한 입까지만 허용되었다. 셰프에게는 미안하지만 포기하고 오믈렛 하나 더 주문해 먹었다.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맛이다.
겨우 오믈렛으로 입을 헹구고 나니 날이 슬슬 쌀쌀해져서 1층으로 이동했다. 오전에 마르지 않았던 빨래를 거둬 짐을 쌌다. 내복은 입어두어서 다행이다. 아직 버스 시간이 조금 남아 앉아 있으니 인도의 박찬호 고빈다가 다가왔다. 말이 많을 뿐이지 착한 친구다. 다른 동네에서 레스토랑을 하다가 이곳에 온 친구였는데 한국어로 리뷰 좀 써 주길 바래서 구글, booking.com 모두 평점을 좋게 주었다.
시간이 다 되어서 버스 티켓을 샀던 곳으로 향했다. 표 살 때 당일에 여기 오면 정류장 데리고 가 준다고 했었다. 물과 프링글스 사고 앉아서 쉬다가 8시 30분쯤 한 할아버지가 따라오라고 했다. 우리는 걸어서 가는데 할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가니까 곧 버스가 도착했다. 야간기차처럼 버스 안이 전체가 침대인 줄 알았는데 버스 2층만 침대고 1층은 좌석이었다. 버스 안으로 들어가 발 쪽에 가방을 모아두고 두껍게 껴 입은 못을 이불 삼아 덮었다. 그래도 버스는 그렇게 추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버스는 출발했고 우리는 금세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