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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Oct 22. 2023

이름 모를 인도의 산에 오르다

3시 19분 푸쉬카르 카페

3시 19분 푸쉬카르 카페

푸쉬카르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1월 1일 맞이해서 처음 온 날부터 눈앞에 보이던 이름 모를 산으로 한 번 떠났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이름은 '팝모차니 마타' 였다. 호수에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높은 산 꼭대기에 있는 작은 사원이다. 사실 어제 루프탑 카페에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산 꼭대기마다 사원이 하나씩 있어서 한 번 올라가서 구경하고 싶었는데, 그나마 지도상 가까워 보이길래 결정했다. 가는데 20분 밖에 안 걸린다고 나왔었다. 



호수 주변의 상권을 벗어나서 조금 걸어가니 버스 정류장 너머 길이 나왔다. 이 동네도 괜찮은 호텔이 꽤 많았다. 호수 근처 말고도 호텔이 꽤 있나 보다. 작은 산 정상에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산을 타야 하는데, 입구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근처에 올라가는 길이 있긴 한데 어딘지 몰라 두리번거리니 한 인도인이 말을 건다. 템플은 이곳이 아니라 반대로 내려가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딱 봐도 길 잃은 여행자가 불쌍해 보였는지, 저 멀리서 작업하던 거 내팽개치고 달려와주었다. 그 말을 듣고 따라가니 길이 나왔다.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갔는데 민가가 나타났다. 민가 앞 길에는 사람들 몇 명이 농기구를 들고 험악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산적인가 싶었다 솔직히. 무서워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칠까 생각했다. 솔직히 이 광경을 보고 도망치지 않은 사람은 도망치기엔 몸이 굳은 사람들뿐일 거다. 우리도 약간 그랬으니까. 그런데 쓱 일어나더니 옆으로 길을 터 주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지만 솔직히 무섭긴 하니까. 고맙다고 하고 덤덤한 척 걸어가는데 손에 땀이 났다. 괜한 짓을 한 건가 싶다. 근데 또 생각해 보면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그동안 봤을까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우리를 보고도 아 또 저 사원에 가는 사람이구나 싶어 길을 터 주지 않았을까. 괜히 오해해서 약간은 미안했다.



덕분에 걸어 올라가는데 확실히 한국의 산과는 다른 기분이다. 한국의 산은 흙이 짙은 색에 나무가 여기저기 우거져 있는데, 이곳의 산은 모래에 가까운 거칠고 옅은 색의 흙에 빽빽한 나무보다는 작은 관목이 많다. 그래도 조금 익숙해서 어디서 보았나 싶었는데 우리 군부대 근처 훈련하던 곳이 딱 이렇게 거친 흙이 쌓이고 나무보다 돌이 많은 모습이었다. 훈련하러 고지에 올라가는 풍경과 닮았다. 나무만 빼면 말이다. 절벽과 큼직한 바위까지 닮았다. 뭔가 여행하다 보면 조금이라도 한국과 비슷하게 묘사하는 기분이다. 예전에 엄마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로잔으로 가는 길이 양평 가는 길과 닮았다고 했던 일이 기억난다. 돌산에는 염소가 한 마리씩 서 있었다. 참 인도에 동물 많다. 선인장처럼 생긴 식물들도 눈에 띄었고, 슬슬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저 멀리 모래 언덕이 이곳이 사막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확실히 오르는 데는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손에 핑크색 사원이 잡힐 즈음 한 염소가 길을 막았다. 짧고 검은 털로 서 있는 모습이 처음에는 도베르만 같아 보였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는지 우리를 슬쩍 쳐다보더니 다시 절벽 너머 저 멀리를 응시했다. 우리도 같이 바라봤다. 길 오른편에는 푸쉬카르가 한눈에 들어왔다. 미세먼지가 안개처럼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호수 근처에 몰려있는 건물들 사이로 언뜻언뜻 산이 서 있다. 어제 일몰을 본 그곳이 보였다. 우리도 거기서 이 사원을 보고 가보자 한 거니까. 반대편에는 말 그대로 사막이 보였다. 흰 건물들이 노란 모래 사이에 서 있다.



확실히 이곳이 사막이 맞긴 하구나. 염소는 구경이 끝난 우리를 데리고 마치 길잡이처럼 사원으로 데리고 갔다. 관광객 한 명이 있을 뿐 조용한 바람 소리만 들리는 외로운 사원이었다. 미세먼지가 많아 좋은 풍경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햇빛을 등진 쪽은 어느 정도 풍경이 볼만했다. 미디어에서만 만나던 중동의 오아시스 마을처럼 연못 주변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땀도 식힐 겸 가만히 앉아서 바라봤다. 등산이 좋긴 하다. 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멍하니 어… 하고만 있다. 한 10분 정도 보니 졸렸다. 아무도 없으니 배낭을 가방 삼아 베고 잠시 잤다. 운치 있는 1월 1일이다. 


한참 쉬다가 이제 슬슬 목마르니 내려가자 이야기하고 내려왔다. 지금은 내려와 위에서 봤던 호수 근처의 한 카페에 앉아서 쉬고 있다. 커피라 음료가 일기 다 쓸 때 즈음 나왔다. 사과주스에서 흙맛이 난다. 8시 버스까지 뭐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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