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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Oct 22. 2023

인도에서 만나는 새해

12시 30분 푸쉬카르 티베트 음식점

12시 30분 푸쉬카르 티베트 음식점

새해 첫 일출을 보고 싶었지만 무리였다. 어제 늦게 잔 탓에 오늘 10시 정도에 일어났다. 일어났는데 이렇게 따듯했던 기억은 인도에서 처음인 것 같다. 어제 고빈다가 가져다준 온풍기 덕분이다. 어제 해가 진 다음 숙소로 돌아간 다음에 신년 파티를 하는 곳으로 갔다. 아직 시간이 남아서 가트를 한 바퀴 도는데 벌써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날이라 다들 파티에 갔는지 그렇게 많이 있던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어제 아침에 돌아다니는데 대부분의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부터 신년 파티 춤과 노래와 즐거움 가득! 한다길래 관심이 생겼었다. 우리가 아침을 먹었던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파티를 제안했었다. 1인당 1200루피에 저녁식사 무제한 제공으로 파티를 할 예정이니 오라고 했었다. 각종 공연이 포함되었다고 하더라도 거의 타지마할 급의 금액을 주기에는 아까웠다. 정 안되면 우리는 우리끼리 호텔에서 소소하게 보내도 될 정도로 파티에 미련은 없으니 적당한 가격이 아니면 가지 않으려 마음먹은 상황이었다.


그러던 찰나 낮에 카페에서 나올 때 즈음 모글리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한 어린 친구가 우리에게 호객을 했다. 훨씬 저렴한 금액에 몰래(푸쉬카르는 신성한 공간이라 술을 팔지 않지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는 이렇게 대놓고 몰래 판매를 하고 있다.) 맥주까지 판매하는 곳이라며 우리를 꼬셨다. 이 정도 금액이면 갈 만하니 우리는 전단지 한 장을 받아 두었었다.



7시 조금 넘어서 파티장에 도착했다. 뭔가 우리가 생각하던 파티와는 거리가 멀었다. 젊음, 댄스, 환희보다는 여유, 조용, 감상에 가까웠다. 아쉽다. 하긴 조용한 도시에서 그런 파티를 기대한 것이 이상하지. 그리고 뭐 나도 한국에서나 다른 나라에서나 음악과 사람들 가득한 파티보다는 조용한 곳을 찾아다녔으니 이런 곳이 익숙하다. 그래도 오늘은 쪼금 기대했는데… 


모닥불 옆 자리에 우리 자리가 있었고, 우리는 앉아서 메뉴판을 보았다. 한 가수가 기타 하나 들고 조용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대충 피자와 라자냐를 시켰고 맥주도 2캔 주문했다. 돈이 최고다. 한국에서도 돈이 최고이긴 하지만 그래도 도덕과 체면 때문에 함부로 돈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는 좀 대놓고 하는 기분이다. 타지마할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그렇고, 환전 사기도 그렇고. 뭐 그래도 돈 내면 다 해주니, 여행자 입장에서는 편하긴 하다. 이런 도시에서 해 지나가는데 맥주 한잔 못하고 아쉽게 입맛만 다실 바에. 



음식은 조금 시간이 걸려서 맥주부터 배달이 되었다. 맥주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마시는지 모르게 은색 알루미늄 포일에 감싸서 나왔다. 그래도 신성한 도시라 대놓고는 마시지 못하게 하는 것인가 싶다. 맥주 마시면서 공연 보는데 약간 지루했다. 맛도 있고 분위기도 있는데 알 수 없는 노래만 나오다 보니 그런가, 약간 교수님 손에 이끌려 잘 모르는 음악회를 온 기분이다. 그래도 분위기에 맞춰 노래 끝나면 손뼉 치고 그러면서 음식을 기다렸다. 다행인 건 와이파이가 터졌다. 인도에 와서 유심이 없으니 휴대폰을 오래 보지 못했는데, 기다리면서 긴 시간 휴대폰 보며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 나누었다. 모닥불 바로 옆이라 냄새가 많이 났다. 고기가 먹고 싶어지는 냄새였다. 하긴 이 도시는 고기도 못 먹는 도시라 더 생각났을 수도 있다. 곧 주문한 피자와 라자냐가 나왔다. 확실히 인도는 피자가 맛있다. 모든 음식점이 난을 구워야 하니 화덕이 있고, 덕분에 모든 피자가 맛있는 듯하다. 먹으면서 맥주를 마시는데 드디어 공연이 끝났다. 남들 눈치 보면서 팁을 내고 다시 밥에 집중했다. 맛있어서 다행이었다.

다 먹고 나서 다시 멍하니 휴대폰을 보면서 기다리는데 친구가 조금 부족하다고 하나 더 주문하자고 했다. 그래서 시즐러라는 음식을 하나 주문했다. 뭔지 모르지만 감자랑 뭐랑 들어간다고 하니 그래도 배는 부르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다 마셔버린 맥주 대신 다른 맥주 한 잔을 더 주문했다. 맥주가 맛있다. 예전에 한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2년 동안 술 마실 사람 구함’ 한 해 마지막 날부터 새해 첫날 넘어가는 시점에 술을 마시면 사실상 2년 동안 술을 마신 거나 진배없다는 말이다. 술이 뭐가 그리 좋았을까 하기에는 지금도 사실 심심하니 커피 말고 맥주나 마실까 생각이 든다.


조용하던 무대 위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남자 셋, 여자 셋이다. 가족인가 싶었다. 가장 어려 보이는 소녀는 이제 11살에서 12살 정도로 보였다. 한참 놀 나이인데 어른들 손에 이끌려 이런 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서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막내딸이 아니라 조혼으로 데리고 왔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이쪽이나 저쪽이나 안타깝기는 매 한 가지였다. 음악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하는데 별게 없다.


노래가 하나 끝나고 뭔가 재미도 없고 불편한 기운이 들어서 나갈까 고민했다. 그때 한국은 새해를 맞이했다. 우리는 아직 해를 넘기지 못했는데 한국은 이제 년도가 다르다. 기분이 이상했다. 외국인들 사이에 덩그러니 있는 우리는 우리끼리 신년을 자축했다. 그리고 주문한 시즐러만 먹고 바로 나왔다. 시즐러는 밥과 감자, 브로콜리, 기타 등등 야채들을 바비큐 소스에 버무려 양배추로 감싼 음식이었다. 앞서 먹은 음식들에 비해서는 그냥 그랬다.




후딱 먹어 치운 우리는 그냥 밖으로 나갔다. 파티는 무슨 파티냐. 우리끼리 하루를 보내자 싶었다. 선셋 포인트로 갔더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둡고 남자 무리들이 많았지만 카운트 다운을 앞선 사람들이 뭔가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서 있으니 무섭지는 않았다. 사람들이랑 사진 찍어주고 이번엔 우리도 기념하기 위해 사진 찍으며 놀았다. 어디서 왔냐는 필요 없었다. 그냥 해피 뉴 이어 하나로 퉁쳤다. 그렇게 놀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휴대폰으로 보니 새해가 오기 1분 전이었다. 우리는 다 같이 전광판도 없지만 휴대폰 시계 보면서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그리고 더 많은 소리의 폭죽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새해가 밝았다. 온 동네에서 폭죽이 터졌다. 약간 허무한 기분이다. 벌써 새해가 오다니, 이렇게 한 해가 갔다니, 파티한다고 거기 왜 가서 기다렸는지 등등 조금 기분이 이상하다. 아까 그 소녀를 봐서 그런가.



사람들과 악수하고 새해 인사를 조금 더 나눈 후에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씻고 잠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어나니 아직 빨래가 조금 덜 말랐다. 미세먼지가 많아 햇빛에 안 말려서 그런가. 한참 기다리다가 적당히 마르니 겨우 짐을 쌌다. 친구의 빨래는 조금 덜 말라 더 말려야 했다. 저녁에 버스 탄다고 말했더니 고빈다가 걱정 말라고, 로비에서 편하게 쉬어도 되니 밖에 나가서 놀다 오라고 한다. 착하다. 이따 갈 때 팁 좀 주고 가야지. 인터넷에 평점도 잘 주고. 줄 수 있는 게 이 평점 밖에 없다~ 


그래도 새해니까 아침 먹으러 티베트 음식점에 왔다. 놀랍게도 한국어로 된 메뉴판이 있었다. 생각보다 한국인이 많이 오나 보다. 우리는 한 번도 못 봤는데. 신라면도 있다고 벽에 붙어있다. 그래서 신라면 하나 주문해 보니 각종 야채가 듬뿍 들어가 색다른 맛이다. 뗀뚝이라는 음식은 채수를 끓이고 밀가루 반죽이 들어가니 수제비와 비슷하다. 각종 야채를 넣고 중국식 두부와 수제비, 양배추가 어우러져 있다. 만두와 비슷한 모모도 맛있다.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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