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성 Oct 22. 2023

오랜만에 노을을 바라봤다

1월 1일 11시 12분 게스트하우스

1월 1일 11시 12분 게스트하우스

이제 새해다. 인도에서, 그것도 작은 도시인 푸쉬카르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크리스마스를 다른 나라에서 보낸 것도 신기하지만, 해가 넘어가는 걸 다른 나라에서 하니 더 특별한 기분이다. 올해는 뭔가 특별한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제 카페에서 나오니 늦은 오후가 다 되었다. 하루종일 잘 쉬었다. 아침을 먹은 레스토랑 앞 가트로 갔다. 여기 이름은 선셋 포인트로 말 그대로 일몰을 보는 장소다. 아직 어스름이 찾아오려면 시간이 걸려 보였다. 가트 안으로 신발 벗고 내려가봤는데 비둘기 똥이 어마어마했다. 지뢰 피하듯 조심히 내려가 호수의 물 가까이 가봤다. 신성한 물이다. 푸쉬카르는 비쉬누, 시바와 함께 인도의 3대 신이라 불리는 브라흐마의 사원이 있는 몇 안 되는 도시다. 그 덕분에 작은 연못이 있는 도시가 육식이 금지될 정도로 신성한 도시로 간주되고 있다.



물 안을 가만히 보니 미터급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물고기도 보였다. 다시 가트 위쪽으로 올라와 가만히 앉아 보았다. 평소 같으면 앉아서 휴대폰을 보면서 일몰을 기다리겠지만, 휴대폰이 사실상 사진기와 MP3 기능밖에 하지 못하니 가만히 가라앉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는 점점 노란빛을 뿜어냈고, 모스크에서 나오는 기도 소리가 맨발을 통해 진동으로 느껴졌다. 황금 잉어가 일렁이는 듯 햇빛이 반사되는 일몰의 연못에는 길게 뻗은 태양이 눈부셨다. 이렇게 오랜 시간 태양을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한 해의 마지막 해가 지나가니 더 생각이 많아졌다.


낚시할 때도 비슷한 기분이다. 가만히 찌를 바라보기만 하지만 사실 생각은 더 많다. 낚시를 가서 생각을 정리하고 온다는 말은 사실 낚시꾼들이 몰래 낚시 가고 싶어서 만들어낸 거짓말이거나, 낚시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끊임없이 찌가 움직이는지 보면서 뭐가 문제인지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멍하니 태양을 바라보니 조금씩 움직이는 태양에 집중하며 생각이 많아진다. 



시간은 조금씩 흐르고 수많은 비둘기가 햇빛 사이로 날아다녔다. 지구와 태양을 이어주는 탯줄이 연못에 비쳤다. 어느 순간부터 음악이 흘러나왔다. 누군가가 스피커로 튼 음악이었다. 마지막 해를 보며 힌디어로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나타났고, 음악이 아닌 바람에 맞춰 훌라후프와 함께 춤을 추는 사람도 나타났다. 연못 앞에서 춤을 추는 사람 등 뒤로 태양이 지고 있으니 그림자 진 모습만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모든 색이 그림자 사이로 숨고 실루엣으로만 춤을 추는 모습을 보니 더 아름다웠다. 꾸물거리며 사라지는 태양을 재촉하는 춤사위 같다.


작은 도시 구석구석에서 한 해의 마지막을 보냈던 사람들이 점차 선셋 포인트로 몰려들었다. 한 해의 마지막 태양은 미세먼지 때문에 유난히도 투명하게 타들어가는 구멍 같아 보였다. 드디어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자몽 색깔의 동그라미가 모습을 감추자 사람들이 환호하고 주변 사람들과 어느새 모인 도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어제, 한 해가 저물었다.


아직 작년의 여운이 남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추위를 느끼고 호텔로 돌아갔다. 

이전 16화 여행은 새옹지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