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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Oct 22. 2023

(길을) 잃고자 하면 찾을 것이오, 찾고자 하면 잃는다

12시 42분 자이살메르 포트 카페

1월 2일 12시 42분 자이살메르 포트 카페


7시가 되어 일어나니 한 승무원이 도착했다고 깨우러 왔다. 추워서 여기저기 꺼내놓은 짐을 다시 싸고 버스에서 내리니 허허벌판이었다. 여기서 어떻게 가야 하나 싶었는데 우리에겐 구글 지도가 있었다. 데이터가 터지지 않아도 GPS는 터졌다. 오랜 시간 추운 버스를 타니 배가 아팠다. 빨리 호텔로 가야 했다. 


자이살메르 포트까지는 겨우 도착했는데, 포트 안에서 길을 찾기 어려웠다. 미세먼지인지 안개인지 구분이 되지 않은 거리다. 새파란 하늘과 노란색 가로등만이 성으로 가는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몽환적이다. 두 색상이 만나 거리의 건물 모두 온통 금빛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길을 30분가량 걸어가니 드디어 저 언덕 위에 웅장하게 자이살메르 포트가 나타났다. 점점 해가 떠오르니 새파랗던 하늘이 점차 밝아졌고, 황금의 도시라는 칭호가 어울리게 자이살메르 포트 역시 자기 본연의 색깔을 뽐내기 시작했다. 

호텔이 저 웅장한 포트 안에 있었기에 우리는 언덕을 따라 점차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자이살메르는 사막 근처에 있어 모래가 퇴적된 사암이 많다. 그래서 이 요새 역시 사암으로 만들어져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요새 안은 아직 조용했다. 사람들이 다니기는 이른 시간인지라 이 넓은 요새가 마치 잃어버린 왕국의 유적처럼 보였다. 요새의 정문을 지나 성안으로 들어가니 겉에서 보기와 다르게 안은 구불거리는 골목이 많다. 한두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골목들을 지나가면 또다시 작은 갈림길이 나오고, 다시 어디론가 가면 작은 광장이 나오고, 다시 골목으로 들어가는 미로 같은 길들이 펼쳐져 있었다. 한참을 헤맨 탓에 시간이 훌쩍 지나 완전한 아침을 맞이했지만, 아직 이 성안에는 간간히 새소리만이 우리의 발소리와 겹쳐 있었다.



그리고 같은 길을 몇 번이나 돌아선 끝에 우리의 목적지인 호텔에 도착했다. 골목 안에 있어서 찾기는 어려웠지만, 안은 의외로 깨끗했다. 와이파이 잡아서 호텔과 연락하는데 한 20분 지나니 사람이 왔다. 체크인은 9시부터인 탓에 우선 호텔 식당에서 샌드위치와 커피 시켜서 아침부터 먹었다. 9시 되기 전에 방 준비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들어갔는데, 방은 깨끗하고 깔끔하지만 한기가 느껴졌다. 


에어컨은 있지만 히터는 없는 방이었다. 자이살메르는 고원에 있는 탓인지 엄청 춥구나. 짐 정리하고 대충 샤워한 다음 침대에 누워 버스에서 못 다 잔 잠을 좀 잤다. 한 한 시간인가 30분인가 자고 일어나서 제대로 된 체크인을 하고 혼자 나왔다. 친구는 감기에 걸렸는지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아 그냥 누워있으라 하고 나왔다. 내일은 더 추울 텐데 걱정이다. 




나와서 성곽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구경하는데 미세먼지가 너무 많다. 근데 오히려 사암으로 된 노란 성벽 안에 각종 사원들과 건물들이 빼곡하고 미세먼지로 성벽 밖은 보이지 않으니 몽환적이기도 했다. 사원에는 아침부터 수많은 인도인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사원 앞에 적힌 경고문에 생리 중인 여자는 출입을 금지한다고 쓰여 있었다. 종교가 뭐길래. 


호텔에서 나와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요새의 대포가 있는 곳이다. 사실 이 요새에서 가장 풍경이 좋은 곳은 대포가 지키고 있는 경계탑이다. 고대 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요새의 든든한 모습과 아래에 펼쳐진 자이살메르 도시의 모습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덕분이다. 안타깝게도 오늘은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고, 아래에는 미세먼지인지 안개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무언가 가득해 그런 멋진 모습을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뿌연 모습이 상상력을 자극했다. 황금빛 성곽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언제라도 알 수 없는 적들이 올 것 같은 기분이다. 적들이 이 요새를 에워싸고 공격해도 이 든든한 성채는 무너지지 않고 적을 물리칠 수 있어 보일 정도로 웅장하다.


수많은 전투를 버티며 천 년에 가까운 시간을 버티고 있는 자이살메르 요새는 호텔로 오는 길에 보았듯이 겉면의 웅장함과 다르게 그 안의 수많은 골목이 가득하다. 단순히 골목이라서 대단한 것이 아니다. 올 때는 당장 호텔을 찾느라 미로 같은 골목 바닥만 바라봤지만, 이제 고개를 들어 올리니 다양한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특히 요새의 내부는 외부와 다르게 벽이나 문에 복잡한 조각들이 빼곡하다. 힌두교 신화처럼 보이는 모습부터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듯한 조각들은 매우 섬세하게 만들어졌다.


그래도 역시나 가장 특이한 건물은 하벨리라고 불리는 귀족들의 연립주택이다. 인도의 전통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져 다층 주택을 이르는 말인 하벨리는 이 요새 안에 천년의 시간과 함께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었다. 하벨리의 특징은 다름 아닌 복잡한 조각과 발코니다. 마치 고딕 양식처럼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조각들은 온 건물의 벽면을 완전히 메우고 있었다. 사실 우리의 호텔 역시도 이런 비슷한 양식으로 지어져 있을 정도로 지금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골목이 복잡한 만큼 건물의 장식도 복잡하고, 사람들도 낮이 되니 점점 많아져 길을 지나다니기도 복잡한 요새다. 

우리같이 관광을 온 사람들부터, 수 세기 전부터 이 요새에서 살아온 토박이들,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 이곳에서 장사하는 상인들까지 수많은 인파에 치이다 보니 이곳이 새벽에 봤던 그 장소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상점들도 오전과 다르게 문을 열다 보니 아침에 봤던 길과 전혀 다른 모습인지라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14시 24분 자이살메르 티베트 음식점


밥 먹으러 가기 위해 카페를 나섰다가 시간이 애매해서 그냥 다시 성곽 안을 구경하고 다녔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성벽과 무너진 벽돌을 구경하다가 미로처럼 생긴 포트 안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어디가 어딘지 모를 때 즈음 그냥 길을 찾지 말고 어디로든 통하겠지 싶어서 걸어 다녔다.

언뜻 보니 바라나시와 비슷한 결이 있다. 단지 바라나시는 화려한 색깔로 가득한 기분인데 여긴 노란 벽돌로만 되어 있는 마을 같다. 돌아다니다가 어디서 본 곳이다 싶은 곳이 나타났다. 


이쪽 골목으로 가면 호텔이 나오겠지 싶어서 다가가니 갑자기 요새 밖의 안개를 조준하고 있는 오래된 대포가 나오고, 그럼 반대쪽으로 가면 되겠지 싶어서 다가가니 이번엔 갑자기 처음 보는 두 갈림길이 나왔다. 일단 가다 보면 길이 생기겠지 생각해 또다시 걸어가면 갑자기 광장이 나오고, 광장에서 반대쪽으로 가면 길이 나오겠지 생각하면 이번엔 갑작스럽게 우리 호텔이 등장했다. 길을 잃자 하면 길을 찾을 것이요, 길을 찾자고 하면 길을 잃을 것이오. 호텔을 발견했으니 들어가서 친구를 확인했는데 아직 자고 있길래 다시 나왔다. 나가서 광장 쪽으로 갔다. 작은 광장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걷는데 한 상인이 붙잡았다. 괜찮다고 하고 가야 하는데 용산 전자상가에서 끌려가듯이 끌려가버렸다. 알라딘 바지부터 숄, 옷감까지 다 팔고 있었다. 내가 사서 뭐 하나 싶다. 인도에 왔다고 다 부자는 아닌데 말이다. 이따 친구랑 온다고 하고 겨우 빠져나왔다. 자이살메르 포트는 생각보다 작아서 어디를 가도 성벽이었다. 너무 걸어서 지칠 때 즈음 다른 걸 보고 싶어서 성 밖으로 걸어가 봤는데 사람만 많고 볼 게 없어서 다시 돌아왔다. 광장에 지쳐 앉아 있는데 뒤에서 오렌지 주스를 팔고 있었다. 항상 커피만 마시다가 오랜만에 당이 떨어져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주문했다. 오렌지 자체가 그다지 달지 않아서 맛은 없었다. 그런데 달지 않으니 설탕을 넣는지 오렌지주스를 주문하니 오렌지를 착즙해 주스를 짜내고, 가루를 위에 뿌려주었다. 약간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가루였다. 


주스 파는 아저씨 뒤로 또 성벽이길래 슬쩍 가보니 새끼 강아지 다섯 마리가 모여 있었다. 사람을 보고 신나게 꼬리를 돌리며 다가왔다. 세 마리는 자기들끼리 놀고 한 마리는 내 다리 잡고 엉겨 붙었다. 그러다가 놀던 애들도 나에게 다가와서 순식간에 강아지에게 둘러 쌓였다. 행복했다. 



강아지들을 뒤로한 채 숙소로 돌아가니 친구가 조금 괜찮아져서 샤워하고 있었다. 문이 열려 있어서 놀랐다. 준비를 마친 다음에 같이 나와서 내가 봤던 곳들을 돌아다니며 구경시켜주고, 따듯한 음식을 먹어야 할 거 같아서 티베트 음식점을 왔다. 모모, 국수, 치킨 비리아니를 주문했다. 배가 고픈데 너무 느리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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