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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Oct 22. 2023

인도 사막으로 가는 길

20시 15분 사막 한가운데 어딘가

20시 15분 사막 한가운데 어딘가

사막에서의 하루. 운치 있다. 사막은 참 신기하다. 한국에서 만날 수 없어서인가. 오전에 포트에서 내려오는 길에 한 슈퍼마켓에 들렸다. 인도의 슈퍼마켓이라. 밖에 앉아있는 상점 주인에게 물이나 과자를 산 적이 있어도 이렇게 안으로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낯선 문자가 적힌 각종 재료들을 보니 신기했다. 사막에서 먹을 과자를 사는데 뭐가 맛있는지 모르니까, 이럴 땐 감자를 고르는 게 최고다. 거기에 음료수도 우리가 아는 콜라로 골랐고, 날씨도 좋으니 아이스크림도 하나 샀는데 망고 아이스크림이었다. 겉은 망고가, 안은 우유 맛이었다. 이건 한국에서도 꽤 인기 있을 맛이다. 수입하면 어떨까. 



호텔로 돌아가서는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떴다. 그래서 그냥 앉아 있는데 호텔 매니저가 친절하게 빈 방에서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빈 방에서 쉴 수 있다는 건 방이 하나 남는다는 뜻이고, 그럼 우리도 괜히 춥고 사파리를 강매하는 호텔에 머무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곧바로 가격을 물어보니 500루피밖에 하지 않았다. 기존에 예약했던 호텔은 바로 취소했고, 방은 우리가 쓴다고 호쾌하게 말을 했다. 예약 취소금에 여기 가격 합쳐서 1500루피다. 여행의 막바지인데 좋은 호텔에 쿨하게 머물렀다고 치면 그리 비싸지도 않다. 한국어도 잘하는 직원도 있고, 한식도 있으니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이 든다.


방에서 잠시 쉬다가 햇빛이 좋길래 나가 보았다. 앞 뜰 작은 정원에는 강아지가 놀고 있었다. 쉽게 배를 보여주며 헥헥거리는 모습을 보니 평화롭고 기분이 좋았다. 여유롭다. 이런 게 여행인가. 내가 그동안 했던 여행은 과연 무엇일까. 그냥 떠나면 여행인 건가, 아니면 무언가 즐겨야 여행인 건가. 일단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평화로움, 아무런 걱정 없이, 이제는 호텔에 대한 걱정조차 사라졌으니, 이대로 있는 행복이 어쩌면 내가 여행에서 찾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참 앞에 앉아서 놀고 있는데 한 한국인 꼬마 아이가 다가왔다. 7살 정도 되어 보이는데, 델리에서 살고 있단다. 어려서 그런지 낯선 사람에게 낯도 안 가리고 자기 이야기, 엄마아빠 이야기를 쫑알거렸다. 조카 놀아주는 기분이라 귀여웠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길래 약간 힘들긴 했는데 아빠가 다가왔다. 델리 지사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는 분이었다. 멋있다. 나도 저렇게 세계 다양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그러고 나서 사막으로 떠날 시간이 되었다. 가지 호텔은 한국어를 잘하는 가이드와 친절함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있었다. 짐을 챙겨서 지프차로 갔다. 지프에는 짐을 싣고 우리는 다른 차 뒷좌석에 앉았다. 가는 길에 앞에 앉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다. 인도인인데 우리 같은 동아시아인처럼 생겼다. 인도도 참 많은 인종들이 모여있다. 바라나시에서 만난 철수 아저씨, 바라나시 부엌에서 만난 친구들, 자이푸르의 고빈다, 그리고 이분들 등 정말 다양하다. 하긴 인도 대륙이라고 불리는 나라이니 참 많은 인종과 문화와 이야기가 섞여 있을 수밖에 없긴 하다. 그래서인지 재밌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 친구들은 델리에서 한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이었다. 한국이라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텐데, 힌두교와 이슬람이 많은 인도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맨 앞자리 조수석에 앉은 한국인 아저씨가 이들이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모두 데리고 와 주신 거였다. 일종의 교회 수련회였다. 인도가 넓어서 그런지 자기가 속한 주를 빼고 다른 곳에 잘 못 가는 듯했다. 그래서 이곳 자이살메르와 사막은 사실상 우리처럼 처음 오는 친구들이었다. 한국인 아저씨는 인도에서 사업 중인데 이렇게 교회 아이들을 데리고 혹은 자기 지인들이랑 사막을 자주 갔다 오신 분이었다. 사막에 가는 15명 중 이 친구들 같은 교회 청년부를 빼면 우리와 아저씨 내외분들만 한국인이었다.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났다. 



사막에 서서히 들어오자 노란 모래만이 도로 양 옆에 가득했다.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은 왕릉이었다. 차로 입구에 들어섰는데 외국인은 150 루피를 내야 했다. 그리 큰돈은 아니니 아무 생각 없이 냈는데, 다른 인도 애들은 검표하는 애랑 이야기를 좀 나누더니 환하게 웃었다. 마치 동향 사람을 만난 듯이 웃길래 물어보니까 진짜 동향 사람이었다. 같은 동네 출신이라 그런지 인도 친구들한테는 돈을 받지 않았다. 같이 차를 타고 온 인연이 있는 우리도 좀 봐주지 거참. 


왕릉이라고는 하지만 황량했다. 노란 건물들이 가득한 고원이 전부였다. 주변에는 풍력발전기 수십대가 돌아가고 있어서 오히려 분위기를 신기하게 만들어주었다. 과거와 미래가 한 곳에 모여 있는 기분이었다. 섬세한 조각이 신기하긴 해서 천천히 돌아보았지만, 이 왕릉에 온다는 정보도 없었고 어떤 역사나 이야기가 있는지 모르니 금세 지루해졌다. 그래서 차라리 같이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회 청년부의 일원인 한 아저씨가 우리에게 지난달에 한국에 다녀왔다며 반갑게 인사했다. 백발 수염을 가진 아저씨인데 너털웃음이 보기 좋았다. 항상 왜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들은 웃는 모습이 쾌활할까. 자기는 델리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다음 목적지가 델리라고 하니 자기네 집에 꼭 머무르라고 말했다. 델지 중심에 있어서 뭐도 가깝고 뭐도 가깝다고 자랑을 한다. 인도에서 아파트에 산다니까 잘살아 보였다. 카카오톡도 있길래 아이디 교환하고 꼭 가겠다고 인사했는데, 우리가 델리에 미리 잡아둔 호텔과는 거리가 있었다.



왕릉에서 나와 다시 사막 캠핑장으로 향했다. 이동하면서 바깥을 보니 정말 황량하긴 했다. 미국 서부극을 보는 느낌이다. 사구가 서서히 나타나니 신기했다. 한참을 타고 가다 잠시 졸았는데 어느새 도착했다. 사막 한가운데에 큼직한 텐트촌이 나타났다. 작은 텐트를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거대했다. 몽골의 게르 정도 되는 규모의 텐트였다. 주변이 모두 모래언덕인지라 밤에는 춥겠다 싶었다. 우리가 도착하니 웰컴 드링크를 들고 기다리던 사람이 모두에게 음료 한 잔을 주었다. 용과를 간 듯한 새콤하고 달달하고 시원한 음료수였다. 분홍빛이 투명하게 빛났다. 



방을 배정받았는데 생각보다 넓고 깔끔했다. 짐만 두고 우선 옷을 갈아입었다. 사막에 여행한 옷은 3년 동안 모래가 나온다는 말이 있듯이 온 옷 사이사이에 모래가 들어갈 걱정을 했다. 입고 나가니 벌써 낙타가 대기하고 있었다. 낙타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유목민 같아 보였다. 순서대로 낙타에 올라타는데 생각보다 낙타가 거대했다. 앉아있을 때 올라타는 것도 어렵지만, 낙타가 일어설 때 기우뚱 하니 마치 롤러코스터 타듯 무서웠다. 그리고 다리를 다 편 낙타는 정말 크다. 떨어지면 다치겠구나 싶을 정도로 높이 있으니 다리가 약간 후덜거렸다. 승차감은 처음에는 거칠었는데, 막상 적응하니 괜찮았다. 우리 낙타가 가장 먼저 출발해 앞이 훤하게 드러났다. 천천히 낙타의 움직임에 맞춰 가니 사막이 또 다르게 보였다. 오래전 이곳에서 움직이던 역사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낙타를 타고 가는데 저 뒤에 계셨던 한국인분이 나중에 팁 줘야 하니 돈을 준비하라고 했다. 낙타를 끌고 가는 사람에게 주는 팁이었다. 낙타 2~3마리가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한 명이 가장 앞에 있는 끈을 끌고 가고 있었다. 이동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내가 탄 낙타는 민무늬였는데, 얼룩무늬가 있는 낙타, 점박이가 얼굴에만 있는 낙타 등 낙타마다 생김새도 다 달랐다. 무거운 나를 태워 가는 낙타가 미안했지만, 한편으로 가장 안타까운 마음이 든 것은 유목민 중 한 명이었다. 



바로 5살 배기 어린아이였다. 어린아이는 능숙하게 한 무리의 낙타를 끌고 함께 가고 있었다. 꼬마가 아빠를 따라오는 것을 좋아해서 데리고 온 것은 아닐 것이었다. 너무 당연하게 일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떠돌아다니니 아이를 맡길 수 없어 함께 가는 것인지, 아이가 아빠처럼 일하는 것이 좋아 어쩔 수 없이 시킨 것인지 몰라도 한참 놀 나이에 또래 친구들과 놀지 않고 이렇게 아빠와 함께 일을 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어린아이에 대한 노동은 금지되어 있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 아이는 노는 것일까 아니면 일을 하는 것일까. 억지로 하는 것일까 자기가 하고 싶어서 아님 어쩔 수 없이 가는 것일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물어볼 수도 없었고 어떤 도움을 줄 수도 없었다. 전통적인 교육의 일환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현대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인지 머리가 복잡해 마냥 웃고 떠들 수 없었다. 아이를 보고 귀엽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렇게 바라만 보기엔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 가족의 아무런 상황을 모르는 내가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며칠 전에 보았던 한 풍선을 팔던 꼬마가 기억이 났다. 축제의 신나는 현장에서 맨발로 구경하면서 자기 또래에게 풍선을 팔던 소년. 세상 참 복잡하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모르는 낙타는 사막의 황량함 속으로 우리를 데리고 계속 걸어갔다. 꼬마는 생각보다 낙타에 능숙했다. 낙타는 이동하면서도 풀이 보이면 먹어 치웠다. 꼬마는 길을 이탈해 풀을 먹으려는 녀석이 보이면 바로 줄을 끌어당겼다. 저 멀리 하나둘씩 거대한 사구가 나타났다. 점점 낙타가 먹을 풀도 사라지고 드디어 모래 언덕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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