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4일 9시 25분 사막 속 캠프
1월 4일 9시 25분 사막 속 캠프
새벽에 일어나서 별을 보러 갔는데 달빛의 어스름이 남아 있었다. 때문에 쏟아지는 별을 볼 수는 없었지만 사막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새카만 하늘의 하얀 점은 낭만적이었다. 별이 수놓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는 하늘의 운과 별의 운이 맞아야 볼 수 있단다. 오늘 운이 없던 것은 다시 만나기 위한 상견례로 생각해야지. 이렇게 운치 있는 모습을 다시 볼 생각에 벌써 설렌다. 언젠가 다시 와야지.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나라다. 오기 전에 생각했던 인도는 참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득했던 나라다. 더럽고, 사람들 많고, 시민의식 떨어지고. 어찌 생각하면 참 편협한 생각이다. 내가 뭔데 한 나라를 그렇게 평가할까.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새로운 문화가 있는 나라다. 무조건 좋은 나라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나쁜 나라도 없다. 환전소에서 사기를 치던 사람이 있는 한편, 따듯한 밤이 되라고 새로 산 히터를 주던 사람도 있고,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 있는 반면, 결국 내 돈을 원하던 사람도 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고 사연이 있다. 주사위 한쪽 면만 바라보면 다른 한 면은 볼 수 없다.
뭐, 그렇다고 무조건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위생적으로 좋지 않은 부분도 있고, 미세먼지도 너무 많고, 생각보다 불편한 것이 많으니 말이다. 그런데 왠지 한 번 더 올 것 같다. 유럽이나 동아시아와 전혀 다른 문화와 볼거리. 이런 매력적인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으니 말이다. 결국 저울질이다. 한 여행지에 대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올려두고 비교해 좋다면 가는 거고, 나쁘면 안 가면 그만이다. 혼자 왜 이리 흥분하지. 손가락이 아프다. 너무 꾹꾹 눌러 글을 쓴다. 뭐랄까 왜 인도에 가냐고 자꾸 뭐라 하던 사람들이 생각나서 그런 것 같다. 아무튼 난 즐겁다.
오늘 밤에 챙겨간 핫팩을 처음 뜯었는데, 자기 주변만 뜨겁게 달구고 나머지 부분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었다. 추워서 그런지 오늘 아침에 군대 꿈을 꾸고 일어났다. 혹한기 하는 기분이라 그런가. 8시 46분에 상민이가 깨워서 일어났다. 8시 정도에 낙타 우는 소리에 한 번 깨서 선잠을 자고 있어 금방 일어났다. 아침은 거르고 씻고 짐을 챙겼다. 9시 정도에 떠난대서 짐 챙기고 일찍 나갔는데 교회 분들은 지프 사파리를 떠났었다. 낙타 말고 지프차로 사막을 달리는 건데 롤러코스터처럼 짜릿한 재미가 있다고 한다. 우리도 신청할걸 아쉽다.
시간이 남아 커피 한 잔 하면서 앉아 있는 중이다. 우리 텐트 앞으로 보이는 작은 언덕이 얕아 보여서 충분히 걸어갈 만해 보였다. 차도 늦게 출발할 것 같으니 그냥 한 번 올라가 봤다. 모래 위에 종달새의 발자국이 마치 눈밭 위에 찍혀 있듯 종종 거리며 찍혀 있었다. 따라서 올라가니 죽은 소의 해골이 나뒹굴었다. 게임 속 한 장면에 온 것 같다. 아직 살아있는 새와 죽어버린 시체들. 주인공이 된 듯 긴장하며 한 발자국씩 내디뎠는데 정상에 올라가니 구릉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도 우리 텐트촌 같은 곳이었다. 하얀 텐트가 펼쳐져 있었다. 우리 텐트촌을 바라보니 수십 개의 텐트가 놓여 있었다. 사막도 이젠 자연이 아닌 인공의 장소 같다. 저 멀리 낙타 유목민들의 초라한 집 만이 사막의 황량함을 아직 간직하고 있었다.
사실 사막의 황량함은 어제 사막에서 진정으로 경험했다. 낙타가 안정적으로 사막에 들어가니 모래 언덕이 노랗게 나타났다. 미숫가루를 뿌려둔 모양이었다. 비현실적이었다. 너무 비현실적이니 사람이 만들어낸 것 같아 보였다. 이게 바로 칸트가 말한 역학적 숭고인가.
다시 낙타에서 내렸다. 롤러코스터처럼 다시 기우뚱하고 내려가니 사막에 드디어 발을 담갔다. 담갔다는 표현이 맞는 게 사막의 모래는 우리의 발을 순간 잡아당겼다. 여기저기 푹푹 빠지며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에 모래를 쥐어도 모래시계보다 부드럽게 손에서 떨어졌다. 아름답다. 모래가 아름답다는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으며 사막을 카메라에 담아두고 있었고, 우리 역시 수많은 사진으로 사막을 간직했다. 같이 온 인도 청년부 애들은 정말 아이처럼 신나게 뛰어놀았다. 델리로 놀러 오라던 하얀 수염이 난 청년부의 한 아저씨도 이때만큼은 어린아이처럼 뛰어놀았다. 한 20분 정도 그렇게 놀았던 것 같다. 썰매도 타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경사가 심하지 않아 썰매는 불가능했다. 그래도 다시 낙타를 타고 다른 곳으로 한 바퀴 돌러 갔다. 같이 온 한국인 사장님이 전도사 같아 보였는데 유목민과 흥정에 성공해 조금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 인도에서 13년째 살고 계셔서인지 한국어만큼은 아니라도 힌디어를 꽤 잘하셨다. 작은 구릉을 낙타로 한 바퀴 돌고 나서 석양을 보기 위해 그 구릉 중 하나에 자리 잡았다.
나는 낙타 옆에 자리 잡았다. 가만히 앉아 있던 낙타는 되새김질을 하는지 뭔가 우물거렸다. 낙타의 이빨에는 초록색 이파리가 잔뜩 끼어 있었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생각보다 신기하다. 속눈썹이 무척 길고 털이 많다. 유목민족에게 낙타가 중요한 자원인 이유를 알 것 같다. 털도 쓰고, 똥도 쓰고, 가죽도 쓰고, 탈것으로도 쓰고.
아, 그리고 사막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사막은 생명이 죽은 곳이 아니었다. 끈기 있고 악착같이 살아남기 위해 자리 잡은 곳이다. 작은 잔디처럼 보이는 풀이 하나 있길래 모래 사이를 파 보았는데, 수십 센티미터에 달하는 뿌리가 옥수수수염처럼 퍼져 있었다. 낙타는 그 풀을 뜯어먹었다. 살고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버텨내는 생물들이 아직 존재하는 그런 곳이다 사막은.
인도인 친구들이 낙타 근처에서 노는 동안 우리는 낙타를 벗어나 조금 멀리 가 보았다. 완전 눈밭처럼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물결무늬의 황금빛 사막에 첫 발을 내딯은 건 우리뿐이었다. 깨끗한 모래사막 위에 낙서도 하고 참, 이런 경험을 할 줄이야. 다시 우리 낙타 있는 곳으로 돌아가 이번엔 신발을 벗었다. 모래가 적당히 미지근하고 고운 모래가 발가락에 닿으니 간지러웠다. 서서히 해가 저물어가니 누워서 한동안 태양을 바라봤다. 얕게 안개처럼 깔린 구름 덕분에 선글라스 없어도 태양의 둥근 모습이 잘 보였다. 구름이 없으면 파노라마 같은 석양이 잘 보이고, 없으면 이렇게 선명하게 둥근 모습이 보이고. 석양을 이렇게 자주 볼 줄이야. TV 보듯이 비스듬히 낙타를 베고 누워 태양을 바라봤다. 자몽색을 띠던 태양은 순식간에 하늘 사이로 사라졌다. 저 멀리 태양을 쫓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태초의 인류가 태양이 뜨던 동쪽으로 움직였다면, 이제는 태양이 그리운 우리가 태양을 쫓아 서쪽으로 가고 싶다. 해가 진 이후에는 우리는 다시 태양의 자취를 따라 돌아갔다. 캠프가 서쪽에 있으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구름에 남기고 간 주황색 상처만이 태양의 마지막 존재를 확인해 주었다.
낙타를 타고 캠프로 돌아온 우리는 팁으로 100루피씩 주었다. 숙소에서 옷을 정리하고 신발을 벗고 모래를 빼는데 진짜 1년 뒤에도 모래가 나온 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털고 다시 털어도 모래가 떨어졌다. 한국 가기 전에 버리고 가야 할 것 같다. 짐정리를 마치고 쉬고 있는데 음악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마당에 캠프파이어와 다과가 깔리고 공연이 시작되어 있었다. 그때 푸쉬카르에서 신년 파티에서 본 공연과 똑같았다. 여기도 어린애와 아기가 있었다. 오늘 보니 이들은 이동이 아니라 여기 사는 사람들 같았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있던 한 여자가 아기가 칭얼대자 작은 텐트로 데리고 갔다. 빈민텐트 같은 24인용 텐트에서 사는 듯했다. 일하는 사람들이 전부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우리도 같이 앉으니 짜이를 나눠 주었다. 과자도 테이블에 놓여 있었는데 흰색 과자는 한국에서 먹던 새우칩과 같은 것이었다. 깨랑 고수를 밀가루에 넣고 튀긴 것도 있었는데 짭짤해서 맛있었다. 땅콩까지 남김없이 먹었는데 소화가 안 되는 기분이라 텐트로 가서 약 하나 챙겨 먹었다. 오전에 먹은 라면이 살짝 얹힌 건가. 소화가 안돼서 밥은 안 먹어야지 했는데 과자를 계속 리필해 준다. 공연은 재미없었다. 인도 노래만 나오니까 안 들린다. 인도인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즐겁게 힌디어로 농담하면서 놀고 우리는 우리끼리 공연 재미없다고 이야기하다 그냥 학교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갑자기 모두를 불러 춤추라고 했다. 우리는 우물쭈물 거리며 어색하게 춤추다가 상민이가 술이나 먹자고 해서 옆에 있는 바에 가서 술을 샀다. 간단하게 럼콕 하나 주문해서 마시면서 신기하게 춤추는 애들을 구경했다. 다들 신났다. 사막에서 음주가무라니, 좋다. 보다가 들어가서 앉아 있으려 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 갔더니 닭고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가기 전에 호텔에서 식사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길래 우린 따로 준비 못해서 그냥 알아서 해 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닭고기가 나왔다. 술 마시니 체기가 내려가서 다행이었다. 큰 텐트 안에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식단이 준비되어 있었고, 우리도 거기서 커리와 밥을 가져와야 했다. 커리와 난을 조금 챙기는데 안에 고사리 같아 보이는 무언가도 있어 신기했다. 앉아서 맥주 하나 더 주문해서 곁들여서 식사를 시작했다. 닭고기를 포일에 감싸서 불에 구워서 그런지 따듯하고 쫄깃했다. 알감자도 4~5알이 들어 있었다. 한참 먹으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니 즐거웠다. 술과 고기. 좋다. 술 한잔 더 사서 모닥불 앞에서 이제 한국인들끼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여행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한 분은 연대 나와서 회사생활 하시는 분이었고, 다른 한 분은 아까 전도사 같아 보인다고 했던 사장님이었다. 참 여행으로 다양한 분들 만나서 신기하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숙소로 다들 서서히 들어가는 분위기였다. 사막이라 물이 적게 나와 샤워는 무리였고, 대충 씻고 잠들었다.
이야 이렇게 어제오늘 일 일기로 다 쓰는 동안에도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5~10분이면 간다고 했는데 한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서서히 사파리 다녀온 사람들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