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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Oct 22. 2023

자이살메르의 마지막 날, 여행의 막바지

1월 5일 14시 6분 카페

1월 5일 14시 6분 카페

자이살메르에서 마지막 날인데 딱히 할 건 없다. 여행의 막바지이기도 하다. 여행이 끝나가는 이 순간의 애매한 기분이 싫다. 더 이상 새로운 건 없어 자극은 덜하고, 현실에 점점 다가가야 한다는 압박이 생긴다. 이런 기분이 싫어서 다시 여행을 떠나오는 건가 싶다. 여행은 중독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싫은 기분이 한국에서는 그리움으로 바뀌고 다시 삶이 여행을 부른다. 어차피 인생은 100년 안에 끝나니 이런 사이클을 즐기며 살아가야지. 삶에 의미는 없다. 내가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그러면 즐거운 의미를 부여해 계속 살아가는 게 즐겁게 인생을 즐기는 이유가 된다.


어제 밤거리가 무섭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전망대에서 맥주와 야경을 즐기고 내려와 숙소에 갔다. 숙소 가는 길에 슈퍼마켓에서 컵라면을 샀다. 드디어 제대로 된 인도 컵라면을 샀다. 숙소에서 한국에서 술에 취한 친구의 푸념을 좀 듣다가 9시 정도에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냥 뜨거운 물 달라고 하기 미안해서 라씨 한 잔을 주문하고 뜨거운 물 좀 달라고 했는데, 우리 컵라면 가져가더니 뜨거운 물 넣어주고 밑반찬도 같이 주었다. 김치와 깍두기, 참나물과 가지무침까지 주었다. 감동이었다. 구글 평점 5점 주길 잘했다. 10점이었으면 20점을 드릴게요. 고객 감동 서비스. 



라면은 각자 다른 맛으로 골랐다. 하나는 마살라였는데 커리에 고수가 들어간 맛이었고, 하나는 약간 싱거운 육개장 맛이었다. 싱겁다기보다 맵지 않은 육개장. 입에 잘 맞았다. 조리할 때 물을 조금 많이 넣은 느낌이라 약간 심심해서 김치와 깍두기를 넣어서 먹었다. 마시듯이 먹고 나서 숙소에서 끔뻑거리며 졸다가 잠이 들었다.


날이 따듯해서 인지, 아니면 창문이 없어서인지, 어제 사막에서 춥게 자서인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알람을 듣고 겨우 일어났다. 일어나서 씻고 짐을 챙겨서 체크아웃부터 했다. 사막 투어와 사막에서 먹은 저녁 치킨, 오늘 숙박까지 모두 합쳐 3800루피를 냈다. 6만 원 정도다. 저렴한데 새로운 문화를 즐기기엔 인도가 최고다. 체크아웃을 하니 이제 어디로 가냐고 묻길래 델리로 돌아간다고 말을 했다. 버스를 예약했다고 하니 이따 6시 30분까지 오면 데려다준단다. 



시간 체크하고 레스토랑 올라가서 비리아니 하나와 신라면, 그리고 튀김이라는 뜻의 파코라 하나를 주문했다. 신라면은 항상 먹는 신라면 맛인데, 비리아니는 첫날 델리 길거리 식당에서 먹은 엄청 맛있던 그 맛이 다시 나타난 기분이었다. 정말 고슬 거리는 볶음밥에 양념도 감칠맛 나고 맛있었다. 개인적으로 비리아니 양념이 강하지 않고, 밥은 조금 날아가듯 가벼워야 맛있다. 고수도 이제 없으면 섭섭하다. 비리아니에 고수가 들어가 있었는데 거부감은커녕 오히려 더 맛있었다. 파코라는 계란을 튀긴 거였다. 파코라는 인도의 튀김 음식이다. 주로 채소를 반죽을 버무려 튀기는 채소 튀김이지만, 빵이나 치즈, 두부, 고기 등도 다 튀긴다. 특히 반죽이 벵골콩가루가 들어가 독특한 향과 맛이 난다. 사막에서 공연을 볼 때도 나눠줬었는데 딱 이런 반죽 맛이 느껴졌었다. 감자튀김에 케첩이 나오듯 칠리소스가 함께 나왔는데 그냥 먹어도 맛있고 찍어 먹어도 맛있다.



이제부터 금식의 시작이다. 5시까지 뭐 먹을 수 없다. 먹으면 배 아플 텐데 이제 장거리 버스를 타야 하니까. 밥 먹고 뒷산에 한 번 올라가 보았다. 호텔 뒤로 길이 나 있는데 길 따라 걷다 보니 인도 전통 악기를 파는 곳이 있었다. 마치 세운상가처럼 다들 악기를 파는 거리였다. 다들 들어와 놀다 가라고 하는데 악기는 정으로 사 주기에도 힘든 물건인지라 그냥 고맙다고 하고 피했다. 내려와서 천천히 걸으며 자이살메르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았다. 스타디움이 있어 목적지로 삼고 걷는데 이제 여행의 막바지에 접어드니 진짜 인도의 모습이 눈앞에 있어도 큰 감흥은 없었다. 익숙한 풍경에는 감흥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스타디움은 휑한 모래밭인데 들어가는 철문은 잠겨있고 회전문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안에는 몇몇 사람들이 운동하고 있었고,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도 있었다. 좌석이 조금 살아있긴 한 모습을 보니 초등학교 운동장 같아 보였다. 역시 자이살메르는 할 게 없다면 포트 아니면 호수다. 호수로 떠났다. 


호수로 가는 길에 공군기지가 하나 눈에 띄었다. 어쩐지 자이살메르 온 이후에 군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파키스탄 국경 인근이다 보니 상주하는 군인도 많았다. 우리도 국경 근처에 군인들이 많긴 한데, 휴전 중이라 국경이 이어지지는 못해, 국경지대가 이렇게 자유롭지는 않지 않은가. 신기하다. 공군 기지에서 비행기가 뜨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노란 사막 위로 이륙하는 비행기의 모습이 낯설어서 좋다.



호수에 도착하니 꽤 시간이 걸렸었다. 힘들어서 호수 근처 카페에 반쯤 누워 쉬면서 책을 읽었다. 가지고 온 책을 이제 다 읽었고, 한 번씩 더 읽는 중이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정말 잘 쓴다. 재밌게 잘 쓴다. 나에게 여행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도망? 혹은 탐험? 혹은 무언가 찾기 위한 시련?


커피는 별 맛이 없어서 한 모금만 마시고 내버려두었다. 배 타려 했는데 이번에는 노 젓는 걸 타고 싶었다. 그런데 카약처럼 생긴 건 300~500루 피고 사람들이 가득 타야 하는 거라 그냥 다시 오리배를 탔다. 저번에도 탔으니 이번에는 그냥 천천히 여유롭게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물 위에서 쉰 셈이다. 시원하고 좋다. 호수 건너편에는 모래사막이 펼쳐져 있는데 살짝 저물어드는 태양이 진짜 사파리를 보는 듯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여행의 이유가 다양하게 있지만, 이것도 여행의 이유였다. 여유로움. 휴식. 그리고 재충전. 



오리배에서 내린 후에는 어제 포트의 전망대에서 보았던 고급스러운 카페로 왔다. 포트의 입구 쪽에 늘어진 건물들 중 가장 멋지게 생긴 곳이었다. 있어 보인다고 할까. 전망대에서는 옥상만 바라보니 카페인 줄 알았는데 고급스러운 호텔에 속한 카페였다. 입구에서부터 비싸 보이는 향이 풍긴다. 1박에 최소 3천 루피정도 되어 보인다. 카페 내관도 고급스럽고, 시설은 정리되어 있고, 종업원들도 각이 서 있다. 커피 가격도 역시나 비싸고, 밥 한 끼 가격도 비싸다. 그래도 고급스러우니 긴장이 풀렸다. 항상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지내는데, 여기는 뭔가 지켜준다는 기분이 든다. 역시 치안도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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