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단이 Sep 08. 2023

귤 한 조각


 어느 날 시장에 갔다 온 엄마가 귤 몇 개를 내게 내밀었다. 온몸에 노란색과 초록색이 얼룩덜룩한 청귤이었다. 아직 제철 시기도 아닌데 웬 귤인가 싶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날름 까먹었다. 새콤달콤한 귤 향이 입맛 가득 돌았다. 그냥 시기만 할 줄 알았는데 맛있게 새큼한 것이 제법이다. 역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돼.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난 서글퍼진다. 나만 이렇게 생각해서 뭘 하나 싶다. 세상은 아직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회만 된다면, 겉모습만 보고선 빠르게 판단하려 드는데…. 이상하게도 대부분 그러지 않아도 될 사람들은 겸손했고, 배워야 하는 사람들은 거만했다. 그들은 내실보다도 겉모습만 보기 바빴고 맘대로 낙인찍어버리고는 손쉽게 해치워버리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실속도 없으면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휑- 버리기 일쑤였다. 예전엔 나만큼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이건 미련한 생각이었다. 나는 판단 당하기에만 바빴지 내가 누굴 판단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청귤을 하나 더 까먹는다. 아까보단 덜 시다. 애석한 마음도 달랠 겸 나도 마치 누구처럼 억울한 청귤 껍질이나 희롱해볼까. 덜 달아 보이는 귤 하나를 들고선 실컷 약을 올린 뒤 껍질을 까고 입에 넣는다. 그러자 베어 물은 귤 조각에서 지익- 물이 튀었다.


 한 조각 귤이 머금은 물보다 사람 눈물이 더 농도 짙어 보이는 건 그저 기분 탓일까.



23.09.07.

_

귤 한 조각

작가의 이전글 마음 한 귀퉁이에 자라난 손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