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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Sep 09. 2023

여름이 가기 전 콩국수


 평소 콩국수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여름이 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사실 콩국수라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고 정말 진한 콩국을 머금은 걸쭉한 콩국수를 좋아한다. 사실 콩 비린내에도 약한 편은 아니어서(특정 향신료에도 끄떡없는 편) 맹탕 국물만 아니면 된다. 그래도 아는 사람들만 알 듯 걸쭉한 콩국수여도 맛이 별로인 집이 있다. 그렇기에 살면서 어쩌다 마주치는 콩국수 맛집은 늘 점찍어두곤 했다. 내년 여름에 다시 방문하기 위해. 그런데 생각보다 주변에 콩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매번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와 만나는 약속을 잡을라치면 콩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하는 것도 다소 애매했다. 콩국수가 호불호를 잘 타는 음식이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에게 콩국수는 예의가 아닌 듯한 느낌이랄까…. 처음 보는 사람에겐 더더욱 그렇다. 아무튼 그런 탓에 이번 여름은 콩국수를 한 번도 먹지 못하고 지나가는구나, 싶었다(어찌 그런 일이…).


 그러다 우울한 며칠을 보내다가 드디어 오늘, 콩국수를 먹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원래는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지만, 솔드아웃 되었다는 소식에 아쉬운 대로 옆집 콩국수로 변경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나오는 콩국수 집. 누군가와의 약속도 아니고 혼자서 콩국수를 먹겠다고 버스 타고 가는 내가 잠깐 한심해 보였지만, 그래도 나의 기분을 바꾸기 위해서라면 갈 수도 있다고 고쳐 생각했다. 평소 그렇게 먹고 싶다고 점 찍어둔 콩국수 집에 도착했고, 난 콩국수를 주문했다.


 ‘휴, 올여름은 콩국수도 못 먹고 보내버리는 줄 알았네.’


 나는 안심했다. 일주일도 되지 않은 어느 날, 남자친구와 함께 국수집에 들렀는데 메뉴판에 콩국수가 있기에 주문했다가 이젠 콩국수는 팔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콩국수를 먹으려면 내년 여름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 집은 여전히 콩국수가 메인메뉴에 걸려있었다. 나는 10분도 채 안 되어 콩국수를 만날 수 있었다.


 콩국수다!


 국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걸쭉했다. 그러나 내가 기대를 많이 한 탓일까, 생각보다 미친 듯이 맛있지는 않았다. 아쉬웠지만 그래도 올여름 콩국수를 놓치지 않았다는 생각에 즐겁게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도 9월이면 콩국수는 이제 여름 메뉴로 내놓지 않는 것이 정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계절에도 콩국수를 먹을 수 있다니! 이 늦은 여름에도 콩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집으로 돌아온 시각, 여느 때처럼 남자친구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보다 행복해 보이네. 콩국수를 먹어서 그런가?” 나는 그런가, 반신반의하면서도 즐거웠다. 남자친구 말에 의하면 평소 난 우울한 목소리였는데, 오늘은 행복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리고 난 이미 아까 남자친구에게 콩국수를 먹는다고 자랑한 뒤였다(남자친구는 콩국수를 싫어한다).


 참, 먹는 것 하나에 행복이 오가는 여자라니…. 뭔가 별로지만 이게 내 모습이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자친구는 늘 말하곤 한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찐으로 행복해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도 맛이 없다느니 별로라느니 불평불만이 많은데, 나는 늘 어떤 음식을 먹을 때에도 행복해하고 감사하면서 먹기에 바라보는 이도 행복해진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 아니다. 나에겐 대부분 모든 음식이 맛있다. 블로그 맛집 리뷰를 남길 때도 맛있어서 맛있다고 쓴 것뿐인데, 몇몇 댓글러로부터 ‘객관적인 맛 리뷰’를 쓰라고 지적을 여러 번 받기도 했으니까(이건 자랑이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오늘은 올해가 가기 전 콩국수를 먹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우울해서 출발했는데 콩국수를 먹고 나니 제3자가 들어도 내 목소리는 행복해 보인다고 한다. 이것만으로 보면 행복은 그다지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나의 행복은 나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니 진득한 여름을 끝내듯 나의 불만과 불평도 이제 막을 내리고 상쾌한 행복으로 뒤바꿈 하길. 늘 잠자리에서 하듯 빌어본다.



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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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가기 전 콩국수



** 참고(?) : 내가 찾아다니는 음식별 리스트 : 참치 > 평양냉면 > 콩국수 > 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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