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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Sep 06. 2023

마음 한 귀퉁이에 자라난 손톱


  손톱 깎는 일은 여간해선 귀찮다. 그래서 최대한 할 일을 모두 다 한 뒤에 깎는 편이다. 이마저도 이틀 혹은 삼 일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그러나 미루기만 할 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내 손톱은 그다지 길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손톱을 너무 짧게 자르는 것 아니냐는 말도 여러 번 들어왔다. 그러나 난 손톱이 정갈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편하다. 그래서 길지 않은 편임에도 어느 정도 손톱이 자라나면 깎아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었다.


 손톱을 잘라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기준은 한가지 뿐이다. 머리를 감는데 손톱이 날카롭게 느껴질 때. 손톱이 아닌 손끝을 세워서 두피를 마사지하지만, 손톱이 닿게 되면 머리를 감을 때마다 할퀴어지듯 살갗이 아팠다. 이럴 땐 손톱을 빨리 깎아줘야 한다. 한 삼 일간 머리를 감으며 다짐만 하다가 오늘에서야 손톱을 깎았다. 뚝, 뚝…. 금속으로 만들어진 손톱깎이용 가위로 손톱을 잘라낼 때마다 둔탁하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손톱 깎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자라났을까. 그간 내가 뭘 먹은 것이 많아서(?) 피부가 죽은 때를 배출하듯 이만큼이나 쌓인 손톱을 밀어낸 것일까. 아니면 그저 물질대사가 좀 더 활발했을 뿐일까. 무엇이든 간에 내 몸이 무언가를 배출하고 밀어내는 것은 확실했다. 밀어내고 밀리는 만큼 이미 소진되고, 영양가 없는 것은 몸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버려진다. 그럼 이 손톱이란 무엇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때, 찌꺼기, 영양가 없는 피부 그리고 어쩌면 몸으로 쌓인 스트레스 조각?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손끝에 모인 찌꺼기를 뚝뚝 잘라내고 우툴두툴한 쇠붙이 밀대로 날카로운 부분을 문지르며 다듬는다. 내가 원하는 손톱 모양이 나올 때까지. 짧게 자르고 다듬는다고 해도 피를 볼 정도로 손톱을 밀진 않는다. 그저 깔끔해 보일 정도로만. 몸이 손톱을 배출해내는 것처럼, 마음도 찌꺼기를 쉽사리 밀어내고 뱉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손톱깎이로 잘라내듯 시원하게 뚝뚝 마음의 찌꺼기를 잘라낼 수만 있다면. 마음의 어느 한 귀퉁이도 날카로워진 부분은 갈고 갈아서 내 맘에 드는 모양으로 다듬을 수 있다면.


 몸은 저 혼자 알아서 찌꺼기를 뱉어내는데, 유일하게 마음은 내가 비워내야만 했다. 마음은 몸에 비해 배우고 익히는 것에 서툴렀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잘할 줄 알았건만, 나날이 갈수록 고집도 세어졌다. 그런 그를 다독이거나 잘하고 있다며 칭찬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지켜보는 수밖에. 그 또한 받은 상처가 많아서일 것이라고…. 마음이 몸보다 회복이 더디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내가 먼저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용기를 내야 했다. 물론 나란 사람에겐 이 또한 익숙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러나 언젠간 손톱을 잘라내는 일처럼, 마음을 정리하는 것도 수월해지겠지. 보란 듯 마음을 움직이고 정리하고 잘라내는 일. 그게 익숙해진다면 손톱 깎을 때처럼 며칠을 미뤄도 알아서 잘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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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 귀퉁이에 자라난 손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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