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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Sep 06. 2023

'그렇구나' 하며 살아요


  좀처럼 연락하지 않다가 1년에 두세 번 정도 만나는 인연들이 있다. 전 회사를 다닐 때 친했던 친구들이라거나 반짝 친했다가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어져 연락이 자연스레 줄어든 사람들이 주로 그랬다. 그렇다고 그 인연들이 소중하지 않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어쩌다 약속을 잡고 만나면 서로 이런저런 근황을 전하며 혼이 빠지도록 웃다가 헤어지곤 했다. 최근엔 그런 친구 중 하나인 전 신문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사람과 안부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일하던 팀이 아닌 다른 팀의 인턴이었으나 자주 마주치게 되어 친해진 사람이었다. 결국 그녀는 ‘인턴’을 끝으로 그 신문사와는 결별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퇴사한 후에도 종종 나에게 연락하며 소식을 전해주었고 우리는 1년에 세 번 정도는 늘 만났다. 그 신문사에서 건진 건 유일하게 나뿐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애교 섞인 목소리와 커다란 하이톤의 웃음소리를 지닌 유쾌한 사람이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오랜만에 그녀와 연락이 닿았다. 그녀는 이미 새로운 회사에 취직해 벌써 3년 차에 다다랐고 대리 직함까지 달고 있었다. 잘 지내냐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아리송한 답변을 남겼다.


 그냥, ‘그렇구나’ 하며 살고 있어요.


 카톡으로 오간 대화였지만, 저 말엔 여러 의미가 담겨있는 듯 보였다. 유쾌한 사람인 걸 내가 아는데, 별로 유쾌하지 않은 대답이랄까. 그렇구나…. 어쩌면 그 의미를 대번에 이해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저렇게 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나. 그냥, ‘그렇구나’ 하며 살아가는 삶. 왠지 모르게 우울감이 전이되는 답변이었다. 그녀에게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답하며 우린 곧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끌어갔지만, 저 답변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그렇구나.


 이 단어는 뭐길래 이렇게까지 나의 마음에 자취를 남긴 걸까, 생각하다가 네이버 사전에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단어로는 ‘그렇다’의 의미가 먼저 떠올랐다.



그렇다.

1. 형용사 상태, 모양, 성질 따위가 그와 같다.

2. 형용사 특별한 변화가 없다.

3. 형용사 만족스럽지 아니하다.



 역시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무엇인가 바라고 있었건만, 특별한 변화가 없는 상태, 현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임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족스럽지 않음’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나도 그녀의 답변에 문득 슬퍼지고 만 것일까. ‘그렇다’ 단어의 아래엔 ‘오픈사전’이라며 ‘그렇구나’의 뜻도 실려있었다.



그렇구나

감탄사 상대방의 말에 대한 동의나 공감을 나타낼 때 쓰는 말.



 뜻만 보았을 땐 그저 ‘동의’와 ‘공감’을 표하는 단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의미를 염두에 두고 ‘그렇구나’ 하며 살아간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그 속뜻은 달라진다. ‘상대방의 말에 동의하고 공감하면서 살아간다(살아가야 한다)’라는 뜻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 이 한 문장에서 주체자인 ‘나’의 생각이 어떠한지는 빠져있지만, 어쨌든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상대방의 말에 동의하고 공감하면서 매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내 의지에 따른 동의와 공감이면 좋겠지만, 하고 싶지도 않은 동의와 공감이라면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삶이라면…? 왠지 끔찍하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녀로부터 ‘그렇구나’를 이끌어내는 그 상대방은 과연 누구일까? 아니면 무엇일까? 물론 끔찍하다고 말하는 나도 오랫동안 이런 삶을 살아오고 있다. 아마도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살고 있겠지.


 내가 원할 때 즐거울 때 ‘그렇구나!’ 외치고 공감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말에 진심을 담아 즐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전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애써 웃어 보이며 “그렇군요”, “그렇구나”, “맞아요”라고 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 매번 반복되면 내 마음은 ‘결국’이라는 외마디와 함께 어느 순간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한 번만이라도 내가 정말 동의하고픈 상대방을 찾아보자. 하고 싶지 않은 ‘그렇구나’를 도저히 안 할 수 없는 삶이라면,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서 ‘그렇구나!’,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웃을 수 있도록.



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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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하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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