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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Sep 04. 2023

1월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작년 가을엔 풀벌레들이 울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곧 가을 내음이 느껴졌던 것 같은데, 올해는 여름이 쉽게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풀벌레들이 초저녁 때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지도 꽤 되었지만, 아직도 매미는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운다. 귀뚜라미 등 가을 소식을 나지막이 알리는 풀벌레는 괜찮고, 치열한 여름 동안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는 싫다, 이런 건 아니지만 매번 하염없이 가을을 기다리던 나는 그만 9월부터 힘이 빠진다.


 나는 가을과 겨울을 좋아한다. 단지 날이 추워서 혹은 연말의 느낌을 좋아한다기보단 올해 내가 걸어온 흔적과 자취들을 이제는 좀 더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연초부터 달려오던 달리기가 지쳐버렸다. 연말이 아니면 내 마음에 ‘새로움’은 좀처럼 깃들지 않았다. 내가 머무는 장소들마다 새로움이 필요했다. 왠지 다른 루트로 뛰어보고 싶달까. 가을이 시작되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모든 것들이 항상 마무리되던 것을 기억한다. 그다음 해를 기다리며 코끝 시린 추위와 함께 이유 모를 설렘을 느끼던 그 시간까지도. 어쩌면 겨울이 시작할 때부터 이른 설렘을 느끼는 바람에 그다음 해에 너무 일찍 지쳐버리는 탓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음, 아니야. 아니다. 난 알고 있다. 올 한 해부터 나는 너무 힘겨웠다. 아직 9월밖에 되지 않은 이 이른 시점에 지쳤다는 것은, 난 정말 열심히 달렸음을 뜻했다. 실상 나의 1월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작년 가을부터 세상과 맹렬하게 싸워온 한 편, 12월 31일의 자정을 넘어 1월 1일의 아침이 올 때까지 나는 연말 연초를 즐길 새도 없이 밤새 교정교열을 하며 원고와 싸우고 있었다. 일하다 보니 새해가 된 것. 본격적으로 경력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한 회사에서 적응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던 중이었다. 그런데 2월 말이 되자마자 그 회사와는 이별해야 했다. 내 뜻이 아닌 퇴사였다. 내 딴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회사는 나에게 퇴사를 고했다. 3월이 시작되는 그 시점부터 나는 올해가 힘겨웠다. 연초를 다시 살고 싶었다.


 회사 운영을 위해서라면 그럴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 회사 입장에선 나보다 뛰어난 대기자들이 넘쳐날 테니 당연한 처사겠지만, 나로서는 다소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충격이 큰 건 아마도 내가 단단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처음엔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객관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는 어느 곳에 가서 물어보아도 ‘그 회사가 너한테 잘못했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었다. 그 회사가 나에게 그러면 안되었다는 것. 그 이후론 나를 깎아내리지 않겠다고도 다짐도 했으나 영 쉽지 않았다.


 어서 빨리 가을을 맞고 싶다. 난 1월을 올해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이번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며 12월을 맞이하고 1월을 만끽하고 싶다. 회사와 일보다는 지금까지 달려온 나 자신을 돌아보며 12월을 보내고 1월을 맞이하고 싶다.


 얼른 찬 바람이 불 수 있기를.



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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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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