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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Sep 30. 2023

힘 빼기 연습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잖아.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이 한 대사로 한동안 많은 이들의 명대사가 되어주었다. 나는 그 드라마를 아주 뒤늦게 보았는데 당시 드라마를 방영할 땐 엄마가 <나의 아저씨>를 아주 재밌게 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선균이 이런 대사를 하더라고 엄마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 대사를 듣고 내가 생각이 났다면서.


 난 참 경직된 인간이다. 일하는 내내 목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 회사 다닐 땐 정기적으로 한의원에 가서 목과 어깨에 침을 맞으며 근육을 풀어줘야 했다. 운동도 하고 한의원도 줄곧 병행해 가기는 했지만, 긴장으로 뭉친 어깨는 쉽사리 풀어지지 않았다. 회사 사람 중 어떤 이들은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내 자세를 바로 앉혀주기도 했다. 뭘 그렇게 경직되어 있냐고 말하면서. 일할 때면 특히 화장실도 못 가고 책상 앞에 세 시간이나 네 시간씩 앉아있기도 했는데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나 홀로 경직된 채 일하다 정신을 차려 보면 그만큼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일할 때마다 전혀 나를 챙기지 못했다. 쏟아지는 일을 거부하지도 못한 채 덮어두고 일하다 보면 오랜 시간 야근하는 것은 곧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렸을 적엔 요령도 없어 이틀이나 삼 일간 해야 하는 밤샘 야근을 피하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이미 목, 어깨, 허리가 망가져 버렸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기도 했다. 덕분에 정신건강의학과도 여러 번 들락거려야 했다. 특히 월경 날짜가 아닌데도 스트레스성 부정 출혈로 속옷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을 때면 시각적으로도 그 장면이 충격으로 남아 잊히지 않았다. 그때부터 난 회사가 무서웠다. 이전엔 아주 밝은 성격이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웃음을 잃고 불안할 때가 많아졌다. 내가 원치 않는 불편한 사람들과 있을 때 혹은 자신 없는 상황에 있을 때마다 경직된 채로 행동하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난 내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지인들이 나를 배려한답시고 “편하게 해요, 편하게.”라고 말할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나를 생각하고 한 말이겠지만 그런 말들을 들을 때면 ‘아, 나 또 긴장해있구나. 경직되어 있구나. 내가 지금 그렇게 보이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경직되어 있으려고 경직된 것은 아닌데…. 나도 힘을 빼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음, 어쩌면 힘 빼기를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힘을 빼려고 노력하는 일은 나에게 에너지 소모가 심한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두려움 때문에 생긴 경직이기도 하지만 나보다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느라 생긴 경직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히려 이게 또 나를 ‘눈치 보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떤 상사는 나에게 ‘왜 이리 눈치를 보느냐고 짜증 난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런 말을 듣는 날이면 종일 그 한마디가 귓가에 쟁쟁 울렸다. 말뿐만 아니라 그 장면이 머릿속에 그림처럼 남아 잊히지 않았다. 심하면 몇 날 며칠 그 장면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힘 빼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운 것은 요가원에서였다. 한 시간 동안 요가를 마치고 가장 마지막 동작으로 ‘사바아사나’를 하는 중이었다. ‘Saba’는 시체라는 뜻이다. 사바아사나의 목적은 주검이 되어 등을 바닥에 대고 손과 발에 힘을 완전히 뺀 상태로 누워있는 것인데 이를 두고 ‘시체의 자세’라고도 한다. 나는 강사 선생님이 말한 대로 사바아사나 자세로 매트 위에 누워있었는데, 선생님이 다가오시더니 “혹시 어디가 불편해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아니라고 말하자 선생님은 다시 왜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냐고 물었다.


 “전 힘 뺀 건데요?”

 “이건 힘을 뺀 게 아니에요.”

 “여기 힘이 들어가 있죠? 힘 한번 빼보세요. 이렇게. 힘을 빼면 손등이 툭, 바닥에 떨어지고 손가락이 뜨게 돼요. 이제 알겠죠?”


 내 팔을 꾹꾹 누르며 힘을 완전히 빼는 법을 알려준 선생님은 내 팔을 바닥에 살짝 내려놓았다. 난 몰랐다. 내가 힘을 뺀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힘이 들어가 있는 줄은. 그 후로 나는 다른 사람들은 연습하지 않는 사바아사나 자세를 연습했다. 시체가 되기 위해 최대한 힘을 빼고 머릿속도 비우려고 한다. 생각하는 시체는 없으니까. 그러나 여전히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나 역시 경직된 인간으로 살기 싫다. 그러나 이미 오래간 경직된 인간으로 살아왔기에 경직되지 않는 법을 익히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저 연습해볼 뿐이다. 나 또한 경직되고 싶지 않다. 아니, 경직되더라도 괜찮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직된 사람을 이해해주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왠지 모르게 경직되는 일도 줄어들 것 같다. 그러나 아직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은 것 같으니 오늘도 자기 전 사바아사나 자세를 연습해봐야겠다. 그럼 연습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언젠간 오지 않을까?



2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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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기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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