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섭게 무더웠던 작년 여름이 아직도 생생하다. 땀이 많은 체질일지언정 그래도 온몸에 땀띠가 난 적은 없었는데 작년 여름은 땀띠로 고생했다. 그런데 작년 8월에 이사 온 뒤 처음 사는 곳에서 겨울을 맞아보니 유달리 추웠던 기억이 또 여름을 잊게 했다. 그리고 다시 여름. 까마득한 듯 그렇지 않은 계절이 돌아왔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그 시간이 두텁지 않은 듯하다.
여름이 옴과 동시에 베란다 문을 열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습한 날엔 오히려 문을 닫아야 하지만 겨울에 죽기 살기로 환기를 시키던 것을 떠올리면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 못 했을 정도다. 낮엔 후덥지근 하지만 피부에 찬 공기가 닿는 것이 느껴지는 날엔 하루의 끝이 행복하기만 했다.
하루의 반을 문을 닫고 살 땐 몰랐는데, 베란다 문을 열고 나니 컴컴한 저녁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마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창문에 불이 한두 개 켜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창문들에선 제각기 다른 채도와 명도의 불빛이 은은하게 비췄다. 그렇다고 그 집 창문들을 매번 주시하며 사람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은 아니고, 불빛이 비추기에 그저 무언가를 하다가도 넋 놓고 그 빛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각자의 소견에 맞는 색을 가진 등을 택한 것이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색이 달라도 어우러지지 않아도 네모난 그 공간이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내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은 안정감을 준다.
내가 저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우리 집 창문에서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을까. 그럼 나와 조금이나마 같은 결의 생각을 지닌 사람인 것일까.
새삼스레 우리 집 거실 형광등을 올려다본다. 그저 하얀빛이 쨍하게 뿜어져 나올 뿐이다. 이 빛이 저 밖에서 보면 전혀 다른 빛으로 보이려나. 우리 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보려면 이 시간, 마주한 아파트의 다른 층에나 가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진 그런 일을 하진 않았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면서도 정작 그 안에 있는 나의 빛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어떤 감정일지 감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혹스러울지 혹은 기고만장해질지.
그래서 우리 집 불빛은 ‘나’라는 한 사람에겐 한 가지 의문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저 나는 열심히 보이고 비추기만 하자는 의미로. 늘 그래왔듯 묵묵히 제 할 일이나 열심히 하자고 다짐하면서.
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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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보는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