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의 ‘연민’에 대한 고찰

by 김단이



알베르 카뮈가 말했다.


원칙은 큰 일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엔 연민이면 충분하다.


여느 때처럼 SNS 릴스를 연달아 넘기다 보게 된 문장이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이 한 문장이 마음에 꽂혔다. 하루하루 다른 일을 해 나가면서도 이 문장은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원칙과 큰 일과 작은 일과 연민. 저 중 어떤 단어가 내 마음을 데운 것인지 헷갈렸다. 처음엔 ‘연민’인가 싶었다. 어릴 적 나는 ‘연민’이란 것을 사랑해왔던 사람이었다. 인간 세상엔 연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2년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젠 연민이고 뭐고 나 살기 급급한 사람이 되었기에 이 단어에 오랜만에 눈길이 머물렀던 것일까?’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큰 일’은 무엇이며 ‘작은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 것이다.



아쉽게도 나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 중에서 ‘작은 일’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 나에겐 ‘큰 일’뿐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어떤 종류의 일을 ‘큰 일’이라고 인식하고 살아갈까. 개인적일 일보다는 좀 더 국가적 사회적인 범주에서 일어나는 일이 ‘큰’ 일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일까?



나는 어릴 적부터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세상을 뒤흔들만한 거대한 일처럼 느꼈다. 따라서 다른 이들보다 슬픔과 아픔과 기쁨의 정도가 컸다. 그런데 그렇게나 커다란 모든 일들에 원칙도 연민도 아무것도 적용하지 못하고 살아갔었다. 원칙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라는데, 나는 살아가면서 타인을 위한 또는 나를 위한 어떠한 원칙이나 규칙을 세운 적이 없었다. 아, 어떻게 생각해보면 규칙이 하나 있긴 했다. ‘타인이 세운 원칙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고 지켜줄 것.’ 내가 세워가는 원칙과 규칙 그리고 기준이란 게 사람들이 포용하는 사회적 기준에 어긋나는 것일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았기 때문이었다. 나의 것보다 타인들의 원칙이 더 타당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타인의 것보다 나의 기준… 아니, ‘기준’ 그만큼도 못 되는 조그마한 나의 생각 다발들이 오히려 더 사회적 기준과 범주에 가까이 맞춰줘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최근이었다. 그렇다고 타인이 늘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건 내 생각들이 사회적으로 옳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며 늘 자기 점검하고 나를 채찍질한 결과였다. 지나온 그 모든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내가 올바른 사회적 구성원이 된 것에 한몫한 셈이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뛸 듯이 기뻤다. 그 이후로 조금씩 나만의 기준과 원칙을 만들며 살아왔다. 그러다 일상이 바빠 그런 건 생각하지도 못할 나날을 또 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간 세운 기준과 원칙을 시원하게 적용하며 살아가지도 않았다. 그저 그것은 마치 나의 정체성인 것처럼 내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 나에게 작은 일보단 큰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 더 많다. 그렇다고 원칙을 적용하지도 않았지. 그렇다면 나는 그 큰 일마다 연민을 적용했을까.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카뮈는 연민을 작은 일에만 적용하면 그뿐이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나의 ‘큰 일’들에도 연민을 쓰고 살았다면 좀 더 삶이 편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 이제야 원칙이란 것을 생각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원칙’ 친화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대관절 삶을 살아가면서 맞닥트리는 일 중에 어떤 것이 ‘작은 일’이 될 수 있는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큰 일이던 작은 일이던 연민을 가지고 삶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이건 얼마나 숨통이 트이는 일일까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칙을 적용할만한 일은 없어 보인다. 나에겐 그저 원칙이란, ‘나’란 사람에게 어떤 생각이 박혀있고 내가 누구인지 설명해주는 한 가지 척도일 뿐. 어느 곳에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만 알고 있으면 될, 어쩌다 누군가가 “네가 세운 원칙과 규칙은 무엇이니” 묻지 않는 이상 설명해줄 필요도 없는 그런 것일 뿐이었다.



아까 ‘나는 연민을 사랑해왔던 사람’이라고 썼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는 ‘연민’을 사랑은 하는데, 나에게 일어나는 ‘일’과 나의 ‘큰 일’에 연민을 사용하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나 스스로에게 연민을 가진 사람이 되는 건 굉장히 초라해지는 일이다. 그게 무슨 의미인 줄 알기에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를 상하게 하는 타인들에게 연민만 가지면 되는 일이었는데 왜 나는 그러지 못했을까 또다시 생각의 굴레에 빠졌다.



카뮈의 인생엔 ‘큰 일’도 있고 ‘작은 일’도 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는 좀 더 수월하게 이곳엔 ‘원칙’을, 저곳엔 ‘연민’을 사용할 줄 아는 이였나 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삶이 서투른 사람이기에 여전히 내 세계에선 ‘큰 일’만 일어난다. 물론 ‘나’라는 인간에게 좀 더 편한 인간이 되려면, 수많은 일 중에서 작은 것으로 분류할 수 있는 연습도 해 나가야겠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에 대해선 천천히 실행해보려 한다. 우선은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연민’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것이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저 문장이 계속 내 마음에 남았던 것이다.






출처 :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원칙은 큰 일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엔 연민으로 충분하다-알베르 카뮈)

https://www.instagram.com/reel/DLM8wxuJPzW/?igsh=dDY2eHA1MGMyZ3Fs




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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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연민’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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