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한 조각이면 풀릴 일

by 김단이



아침부터 아랫집에서 웬 남자가 한 명 올라왔다. 마침 남편과 현관문 앞에서 이야기 중이었는데 남자는 우리집 대문을 두드렸다.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올라올 만한 일은 없었기 때문에.


"아랫집인데요. 안방에서 계속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서요. 웬만하면 이런 일로 이렇게 잘 안 올라오는데…. 한두번이 아니라서…."


속옷만 입은 채여서 난 옆방으로 숨어 들어가 남편과 남자가 이야기 나누는 걸 듣고 있었다. 소리만 들어도 남자는 정말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했다. 오전 7시 16분이었다.


"아, 아마 이불 들추고 청소하는 소리 때문에 그랬을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남편은 정중히 사과한 뒤 그 남자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청소하지 말래. 아침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니까 청소하지마.



아니, 청소를 어떻게 하지마? 내가 하루종일 집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빠르게 안방청소를 다 끝내놓고 이불정리도 한 다음에 출근해야 되는데? 남편은 원체 내가 집안에서 청소기 돌리는 걸 싫어했다. 청소기 소리를 굉장히 싫어하기 때문. 청소기 소리가 자기 옆에서 1분 이상이 넘어가게 들리면 발칵 짜증을 냈다. 혐오스럽다는 표정과 함께. 청소기 좀 그만 돌리라고 말하는 얼굴엔 혐오스러워 뒈져버릴 것 같다는 걸 입증하듯 입꼬리가 삐딱하게 올라간 채 파르르르 떨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그렇게 웃음이 난다. 좋은 의미로는 아니다. 저런 표정을 가족한테 지어보일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다름. 그것도 다른 놈 마누라도 아니고 지 마누라한테. 이미지는 상당히 충격적인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같잖아서 웃음이 난다.


물론 청소기를 자주 돌리는 건 맞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아니, 낸들 아침에 돌리고 싶어서 돌리나? 그럼 제발 그 털 좀 떨어뜨리지 말라고. 머리카락과 털이 온 방을 굴러다니는데 그걸 보고는 그냥 외면하고 출근하라고? 아마 자긴 똥 싸도 휴지로 안 닦고 바지를 올리나 보다.


출근 전 말싸움이 오갔다.


씻으려다가 말고 속옷바람으로 쇼파에 앉았다. 화살은 아랫집 남자에게로 향한다. 아니, 자기네는 청소 안 하나? 그 아침에 잠깐 청소하는 거 좀 참지. 난 아침에 아무리 큰 소리가 들려도, 잠을 이루지 못해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 원래 그런 성격이다. 모든 게 내 맘 같지 않아도 세상이 그런 거라면 참고 견뎌야 할 때가 있다. 그 하나를 못 참으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들 그러 실까. 그런 거 하나하나 트집 잡아서 말 한마디로 상황을 바꾸려 할 바에야 차라리 정치계로 나가 세상을 바꾸는 편이 효율적일 것이다. 아랫집 남자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뉴스에 나오는 국제회의당 테이블에 아랫집 남자가 앉아서 목청을 높이는 장면을 상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얼굴이라도 봐둘 걸.


도대체 남편도 왜 청소기 소리 하나때문에 트집인지 모르겠다. 자긴 집안에서 밤낮으로 유튜브 소리나 크게 틀고 다니면서. 소리 좀 크게 틀지 말고 이어폰을 꽂으라 해도 전혀 내 말은 듣지 않는다. 사람 말소리가 정말 듣기 싫다고, 괴롭다고 아무리 울고불고 싸워도 듣지 않는다. 이제 난 유튜브 소리가 크게 들려도 말을 않는다. 그게 집안의 평화를 유지하는 법이다.


"밀대 부딪히는 소리야. 조용히 청소할게."


싸움은 크게 번진다.



니네 엄마한테 전화해서 네가 하는 행동이 옳은지 물어봐.



싸움이 크게 번질 때마다 자주 엄마들이 출동한다. 슈퍼맨처럼. 남편은 나에게 불만을 말할 때 내가 지지않고 받아치거나 싸움이 크게 번질 때면 늘 이렇게 말했다. 그의 단골멘트다.


"네가 나한테 이러는 거 알면 우리 엄마 충격 받아."


앞으로도 살면서 많이 듣게 될 말이므로 이제 익숙해지려 한다. 같이 사는 5개월 동안 지혜를 터득했다.


"네 행동이 맞는지 엄마한테 물어봐."


이건 그의 입을 통해서 내가 많이 듣는 우리 엄마 얘기다. 물어보라고 했으니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전 7시 30분이었다. 밖으로 흘러나오는 전화연결음을 들은 남편은 고집만 세고 멍청한 어쩌구저쩌구를 시전했다. 안 받을 줄 알았는데 엄마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 엄마-" 하는 순간 남편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엄마에게 상황설명을 한 뒤 녹음어플을 틀었다.


"엄마, 아침에 청소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야?"

"어휴…. 그건 아니지."


몇 차례 이야기가 오가고 녹음어플을 일시정지 시켰다. 남편이 호출한 나의 슈퍼맨은 임무를 마치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녹음본을 남편에게 공유했다. 엄마와 내 목소리가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었다. 잘못 녹음되어 있지는 않은지 여러 차례 확인했다. 카톡의 1은 사라졌지만 남편은 절대 듣지 않겠다며 이미 녹음본을 삭제했다고 답변을 수차례 날렸다. 시간을 두고 그에게 틈틈히 녹음본을 전송했다. 열 차례의 동일한 녹음본이 남편의 카톡에 수놓아졌다. 얼마 안 가 난 차단당했다. 나도 그를 차단했다.


무승부-


이제 출근준비를 한다.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씻는 시간이 20분이나 늦어버렸지만 상관 없다. 우리집 청소가 중요하지 남의 사무실 출근이 중요한가.


다행히 사무실에 도착해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늘 같은 날엔 케이크 한 조각이라도 먹어야 한다. 맛있게 먹고 머리를 비운 뒤 케이크가 준 힘으로 내일도 오전 6시 50분에 일어나 안방을 청소해야 하니까. 아, 무조건 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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