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_1.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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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_1.


가늘고 보드라운 티끌.

알람을 끄면서 스마트폰 액정에 내려앉은 먼지를 손으로 집는다. 검지와 엄지로 지그시 누르다가 떼었다가를 반복한다. 아침부터 바쁜데 뭐 하는 짓이냐고 빨리 씻고 회사 가라고 잔소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루의 시작은 늘 스마트폰의 알람이 알려준다. 그러나 나는 그 아침부터 하루를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스마트폰 액정에 내려앉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집고선 다시 검지와 엄지로 굴리며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이런 시간이라도 없으면 나는 곧 숨이 막혀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집안에 쌓인 먼지를 발견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나도 집에서 혼자 밥을 하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했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갈수록 이 모든 것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밥 먹는 데 필요한 일을 빼곤 집안일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특히 청소는 거의 손을 놓은 상태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니 서랍장이나 화장대, TV 위엔 하얀 먼지가 수북이 쌓였다. 집안 어느 곳에서나 심심찮게 먼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밤 자고 일어나면 스마트폰 액정에도 어느새 먼지가 자리를 잡고 가득 들러붙어 있었다.

스마트폰 액정처럼 소주병 입구에도 먼지가 포실하게 내려앉았다. 그 먼지를 떼어내 손가락의 예민한 표면으로 천천히 굴린다. 먼지의 감촉을 느끼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지는 것 같다. 아무런 목적 없이 벽을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부엌 바닥의 마른 물기를 세는 어린아이처럼.

겨우 먼지를 털고 일어나 침대 옆에 둔 소주병을 현관문 앞에 내놓았다. 병은 모두 4병. 이젠 주량이 한 병에서 다섯 병 정도로 늘어났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나에게 찾아온 변화는 주량이 늘었다는 것뿐이다. 대충 씻고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식빵 몇 조각 말고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장모님께서 갖다주신 반찬도 다 떨어졌다. 어차피 아침은 잘 먹지 않는 편이기에 간단하게 요기만 하면 되었지만, 저녁에는 뭘 먹어야지 싶었다. 라면이나 끓여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찬장을 열어보니 라면 5개가 묶여 들어있던 봉지는 텅 비어있었다. 이걸 언제 다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왜 빈 봉지를 버리지 않아 아쉬움만 남기는지 괜히 속이 부글거렸다. 오늘은 퇴근하고 돌아오면서 장을 봐야겠다.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면서 복도에 난 창으로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것이 보였다. 어제 비가 왔기 때문인지 꽃잎은 거의 다 떨어져 시멘트 바닥 위를 뒹굴고 있다. 바닥에 떨어진 목련꽃들은 제각기 하얀 빛을 내기도 전, 갈색으로 변색 되어 바닥에 짓이겨져 있었다. 아직 완연히 피지도 못한 채 저버린 모양이 서럽다. 목련꽃 위로 은서의 얼굴이 겹쳤다. 은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인애가 은서를 붙잡고 병원에서 나온 밥을 먹이고 있을까? 잔뜩 부은 얼굴의 인애가 은서를 어르고 달래며 밥을 먹이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선연했다. 먹기 싫다고 도리질하는 은서의 모습도.

“냠냠- 우리 은서 입으로 맛있는 밥이 슈웅-!”

인애는 아이가 밥을 반이라도 비울 때까지 계속 숟가락을 놀릴 것이다. 은서가 밥을 다 먹고 나면 인애는 그제야 은서가 남긴 밥을 먹고 있으려나….

하루에도 몇 번씩 은서를 품에 꼭 껴안아 보고 싶었다. 얄팍하지만 따뜻한 인애의 가슴에도 얼굴을 묻고 싶다. 은서에게 예쁜 인형도 사주고, 인애에겐 따끈한 국밥 한 그릇이라도 먹이고 싶다. 하지만 이런 것들조차도 인애는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무언가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 인애와 은서를 찾아가면 인애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며 ‘왔어?’라는 한마디 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옆에 앉아있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 인애의 곁에 앉아있으면 나는 무언가 할 말이 있었다가도 금세 머리가 멍해지고 말았다. 나도 알고 있다. 이제 우린 전처럼 지낼 수 없다. 인애가 점차 나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