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애와 나는 스물일곱이 되던 해에 결혼식을 올렸다. 인애와는 대학에 입학하고 신입생 때 만났으니 7년 가까이 만난 셈이다. 그렇게 우리는 신혼을 즐길 새도 없이 몇 년간은 각자의 자리에서 참 열심히도 살았다. 회계사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결혼한 탓에 난 일찍 퇴근하는 경우가 없었다. 회사 적응을 위해 사무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당시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인애도 야근 후 집에 늦게 돌아오는 때가 많았다. 학창 시절에도 워낙 열심이었고 모범생이었던 인애는 야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에도 늘 한두 시간을 넘기며 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놈의 책임감! 주말에도 종종 일을 나가는 인애에게 돈은 내가 벌 테니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말라고, 몸 상하겠다고 핀잔을 준 적도 많았다. 그럴 때면 인애는 “지는!” 외치며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안쓰러운 마음이 크기도 했지만, 고개를 뒤로 젖히며 깔깔거리면서 웃는 인애의 얼굴을 볼 때가 제일 행복했다. ‘웃음의 여왕.’ 연애하던 시절 인애의 번호는 이렇게 저장되어 있었다. 인애의 함박웃음은 보는 이들에게 늘 즐거움을 안겨주곤 했다. 그러나 이젠 ‘웃음의 여왕’도 웃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결혼 후에도 둘 다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우린 그에 대해 크게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였기에 즐겁기만 했다. 한 편으로는 가정을 이루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돈을 모으고 꽤 알뜰하게 살았다. 당시엔 돈이 모이는 재미도 쏠쏠했다. 물론 아무리 바빠도 주말, 시간이 나는 날이면 데이트하러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데이트란 어쩌면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인애와 함께 있는 모든 시간이 좋았으니까. 평일 저녁 가끔 먼저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인애를 위해 고기를 굽고 국을 끓였다. 요리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요리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서둘러 저녁을 준비하다 보면 인애는 언제 집에 왔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부엌으로 들어와 내 허리를 꼭 껴안았다. 참 바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3년 뒤 우리에게도 마침내 아이가 찾아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발열과 출혈증세가 있었고 검사를 위해 우리 부부와 오랜 시간 떨어져 있어야 했다. 한 달처럼 느껴지는 이틀이었다.
병원에서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니 검사를 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아이의 건강에 대해선 염려치 말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느냐고 의사에 몇 번이나 따져 물었다. 그러나 의사는 그저 얼버무릴 뿐이었다. 심장을 짓누르는 먹먹함과 화가 치미는 가운데 우선 인애 먼저 안심시켜야 했다. 인애를 다독이는 것도 굉장히 진땀 나는 일이었다. 인애에게 아이는 으레 받는 검사를 받으러 간 것뿐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인애는 굉장히 불안해했다. 당연하다. 배 아파 낳은 자식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벌써 이틀이나 시간이 지체되었는데, 이 긴 시간을 넘길 수 있는 엄마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닦달하며 캐묻는 인애에게 나는 결국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인애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원장실로 내달렸다.
비틀거리는 인애를 원장실로 부축해 가던 도중 복도에서 주치의와 간호사들을 만났다. 그들은 아이의 정확한 병명을 알려주기 위해 마침 우리에게 오던 참이라고 했다. 아이의 병명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인애는 주저앉아버렸고, 나는 잠시간 사고가 멈춘 듯 아무런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의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주저앉아버린 인애를 다시 잡아 일으켰다. 의사는 뻔뻔한 얼굴로 소아의 경우 90%가 완치될 수 있다며 실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그제야 제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태 아이에게 질병 같은 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의사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나의 기세에 인애도 아이를 봐야겠다고 말하며 의사의 팔에 매달렸다. 간호사들은 진정하라며 우리를 뜯어말렸지만 이게 어디 쉽게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는 일인지…. 그들은 아직 아이를 보여줄 수 없다고 우기기만 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병원 복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몇몇 남자들이 달려와 의사의 멱살을 잡은 내 팔을 뜯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에게 달라붙은 남자들은 병원에서 지내면서 한두 번 눈인사를 나눈 예비 아빠들이다. 몇 명의 임산부들도 궁금한 나머지 밖으로 나온 모양이었지만, 대부분이 배를 문지르고 쉬쉬하며 자기네들이 있던 방으로 돌아갔다. 내 팔을 잡아 뜯던 남자 중 몇 명도 자기네들 와이프가 방에서 나오자 그녀들을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그 모양새에 나는 그저 웃음이 나올 뿐. 기가 막혔다.
‘다 남 일이겠지. 자기네들 아이만 중요하겠지. 자기들도 이런 처지가 될 것이라곤 생각도 안 하겠지.’
앞뒤도 맞지 않는 고함을 질러대며 나는 여전히 의사의 멱살을 움켜잡고 있었다. 그런데 한동안 내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던 인애가 내 팔을 힘주어 잡았다. 인애의 손길에 나도 모르게 맥이 탁 풀려버려 자연스레 멱살을 풀었다. 벌게진 얼굴로 의사가 목을 움켜쥐고 기침해대며 작은 소리로 욕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인애는 간곡히 말했다.
“아이를 보여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굳은 표정의 의사와 간호사는 아이가 있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아이는 팔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2.5kg의 몸무게. 팔을 움켜쥐면 부서질 것처럼 작은 아이였다.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내려다보다 인애의 얼굴을 돌아보니 인애는 아까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서글픈 빛을 띠고 있었지만, 그만큼 강인한 다짐이 담겨 있는 듯했다. 인애의 눈길은 옹골지고도 부드러운 엄마의 손이 아이의 시린 몸뚱이를 어루만져주듯 아이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말이 없던 인애가 처음 나에게 한 말은 '우리 아기 참 예쁘네.'였다. 그러곤 아이의 발을 얇고 여린 꽃잎 만지듯 지그시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아이의 발과 인애의 손을 눈으로 좇으며 나도 서글펐지만, 가슴 속에 뜨거운 다짐이 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