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6년 전의 일이다. 갓난아기였던 때에도 은서는 엄마 품에서 곤히 자본 일이 거의 없다. 인애는 은서를 돌보기 위해 산후조리 할 새도 없이 회사에 달려가 사표를 내고 병원에서 아이와 함께 지냈다. 은서가 4살이 되었을 때 병은 조금씩 호전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해 봄엔 병이 완치되었다는 진단을 받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은서를 데리고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6개월도 채 못가 은서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직 은서의 병이 완벽하게 호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작은 몸속 어디에 그렇게 암세포들이 숨어들 틈이 있다는 것인지 다시 한번 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었다. 서른이 되기까지 내 몸 하나만 중요했던 나에게, 은서는 가장의 역할을 심도 있게 알려준 하나뿐인 내 아이였다.
잘 먹질 못해 또래보다도 키가 작고 조그마한 아이가 항암치료를 받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곤욕이었다. 항암치료를 받을 때마다 인애도 아이처럼 서럽게 울곤 했다. 하도 울기에 인애를 그 자리에 오지 못하게도 해보았다. 그러나 아이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인애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혼자 남은 인애는 은서의 침대 위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그러다 간호사가 치료를 마친 은서의 침대를 밀고 병실에 들어오면 인애는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달려오는 것이었다. 아이의 손과 발을 어루만지는 인애의 얼굴엔 눈물과 엷은 미소가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왜 이런 식으로밖에 웃을 수 없을까. 이렇게나 마음이 미어져야 하는 걸까.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인애가 은서와 함께 병원에 있는 동안 열심히 돈을 벌어 오는 일뿐이었다. 이미 적금을 깨고 여기저기 빚을 지고 부모님과 친척들에게도 손을 벌려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은서의 병원비는 항상 모자랐다. 나는 가까스로 그 돈을 채워 넣었다.
매일 진득한 무게감에 짓눌려 하루를 겨우 살아내고 저녁엔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인애는 내 지친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마도 이제 우리 둘이 만나는 자리에선 돈 얘기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애는 더 이상 나를 반기지 않았고 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는 퇴근하면 무작정 집으로 갔다. 지금까지의 6년이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피로감에 지쳐 집에 들어오면 겨우 몸을 씻고 저녁도 먹지 않은 채 텅 빈 집에 혼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천근 같던 피로에도 내성이 생겼다. 내일도 돈을 벌기 위해선 자야 하는데, 요즘은 자정이 넘어가기 전까지 이런저런 생각들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원래 잘 마시지 않던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그 짧은 시간에 술은 습관이 되어버렸다. 술을 좋아하지 않던 나였지만, 이젠 소주 한 병 정도를 비우고 나면 느껴지는 달짝지근하고 알딸딸한 기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었다. 소주를 박스째 사다 놓고 밤마다 한두 병씩, 많게는 세 병에서 네 병정도 꺼내 마셨다. 보통 그 이상은 더 마시지 못했다. 몸이 따라주지 않기도 했거니와 술을 마시면서 마음이 편해져도 인애와 은서가 계속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술 없이 잠들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술은 이런저런 고민이나 생각, 삶의 무게를 끝내 잊게 해주진 않았지만, 시종일관 절망적이었던 기분만큼은 잠시 그 무게를 가벼운 것으로 바꿔주었다. 그러나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절망적인 기분으로 돌아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쉬고 싶었다. 물론 인애도 많이 지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은서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렇지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나를 위해 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인애와 은서를 위해 살아야 했고 일을 나가야 했다. 나에게 닥친 모든 현실이 부담으로 다가와 아침이 올 때마다, 해가 반짝이는 창을 볼 때마다 더는 살아가기 힘겹다는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이런 감정들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인애라도 곁에 있었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원 밖을 벗어날 수 없는 인애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현실을 비관하며 습관처럼 먼지를 어루만졌다. 먼지를 만지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꼬불거리는 짧은 모양의 실낱같은 것이 더해지고 더해져 폭신한 덩어리로 ‘먼지’가 된다는 것이 기특하게도 느껴지면서 속을 아리게 했다. 꼬불꼬불 모여 한 덩어리로 얽히고설킨 이것들은 절대 헤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 먼지들이 부러웠다. 우리도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며 손을 맞잡고 얽히고설킬 수만 있다면. 미미하더라도 폭신한 한 덩어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