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_4.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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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_4.


“팀장님, 재무제표 감사 다 끝나셨나요?”

금요일 나른한 오후. 점심을 먹고 졸음이 몰려와 컴퓨터 앞에서 잠시 눈을 감고 앉아있는데 유진이 와서 말을 걸었다. 퍼뜩 놀라 이제 거의 다 끝나간다고 말하려는데 그녀는 내가 졸던 것을 알고 있던 모양인지 콧바람을 내며 슬쩍 웃었다. 회사 후배인 유진의 입은 웃을 때마다 입꼬리가 완만한 선을 그리며 그 옆엔 보조개를 만든다. 평소 그것을 보며 미소가 참 예쁜 여자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점심 많이 드시더라고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존대하면서 얼굴은 친절한 모양으로 꾸미고 전혀 그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지만 유진은 나를 놀리는 것이다. 졸다가 들킨 것도 민망한데 이런 놀림을 받으니 멋쩍어지고 말았다. 유진이 옆에서 뭐라고 재잘대는 것을 무시하며 컴퓨터 화면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지러운 재무제표가 눈에 들어오자 잠시 민망했던 기분이 다시금 현실로 돌아온 듯하다. 또다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냥 일을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집만이 유일한 내 안식처였다. 고개를 한껏 뽑아 컴퓨터 화면 속 숫자를 보고 있는 사이 유진은 어느새 커피를 내려와선 내 옆에 내려놓았다.

“팀장님, 우리 오늘 회식 있는 거 아시죠?”

“또?”

“또라뇨. 얼마만의 회식인데요, 지난주에 차장님께 못 들었어요?”

“들은 것 같은데 하도 정신이 없어서….”

“뭐가 그렇게 정신이 없어요, 팀장님은 맨날.”

유진의 말에 난 흥, 콧방귀를 낀다. 정신을 놓고 살아온 지 6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이런 말을 인애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또 듣게 될 줄이야. 유진을 올려다보니 그녀는 이제 날 걱정스럽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망울이 내 위로 투명하게 쏟아질 것 같다.

“퇴근 후에 저녁은 드세요?”

아까보단 활기가 떨어진 말투로 유진은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투로 묻는 말인지 아니면 대답을 바라고 묻는 말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회사 사람들은 내 처지에 대해선 대부분 알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는 병원에서 머물고 있으며 나는 홀로 집과 회사를 오간다는 것. 처음엔 그런 나를 안쓰럽게 여기는 이들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따금 인애와 은서의 안부를 묻는 이들도 있었으니까. 나도 이미 인터넷으로 여러 번 찾아본 백혈병에 관한 정보들을 일러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런 관심은 짜증스러울 때가 더 많았다. 그러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회사 사람들의 나를 향한 관심은 점차 시들해졌다. 차라리 그편이 나았다. 괜한 동정으로 말 한마디를 덧붙이려 하고, 이것저것 아는 체하는 그들이 구역질 났다.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나 오롯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점이 다행이라고 여겨졌고 이제 회사 사람들은 나에게 무관심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유진만큼은 여전히 내게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주곤 했다.

유진은 사내에서 그나마 제일 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일하게 사적으로 말을 붙여주는 이. 점심시간이면 주말에 무엇을 하며 쉬었는지, 어디의 음식점이 맛이 있는지 등의 대화를 가끔 나누곤 했다. 그녀 외엔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동료는 없었다. 물론 항상 그녀 쪽에서 먼저 말을 골랐다. 하지만 그런 것 말고도 그녀는 나를 살뜰히 챙겨주는 때가 많았다. 유진이 내게 베푸는 친절의 이유를 나는 좀체 알 수 없었다. 밥맛이 없어 일부러 점심을 먹지 않는 날이면 그녀는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돌아오면서 빵 같은 간식거리를 사다 주기도 했다. 또는 직접 싸 온 과일을 내밀며 나에게만 주는 것이라고 소곤거리기도 했다. 일을 보던 중 잠시 졸고 있을 때면 부탁한 적도 없는 커피를 내려주는 이도 유진이었다. 출근 직후 혹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다시 돌아와 책상에 앉으면 유진이 두고 간 초콜릿이나 사탕 따위가 덩그러니 놓여있기도 했다. 유진은 손이 야무진 것 같았다. 지난겨울엔 직접 만들었다면서 레몬차 같은 것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왜 나에게 매번 이런 걸 챙겨주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그냥 드리고 싶으니까요.”라는 말과 함께 무엇이 민망한지 재빠르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꿀에 절인 레몬이 들어있는 유리병은 지금도 우리 집 찬장 안에 놓여있다. 술을 많이 마신 아침마다 레몬 몇 조각을 꺼내 뜨거운 물에 섞어 마시면 어지러운 속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냥 드리고 싶으니까요.’

레몬차를 마실 때마다 이 말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사무실 사람들 모두에게 베푸는 친절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것 같진 않아서.

사람들은 유진이 먼저 내게 싹싹하게 군다고 생각하기보단 우리 둘이 유별나게 친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예 윗사람이 바뀌는 경우엔 그 윗사람이 혹은 몇몇 여직원들은 유진과 내가 얘기하는 것을 볼때마다 힐끔거리기도 했다. 우리 앞에선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유진과 나는 딱 그 정도의 대화만 나눌 뿐이었다. 내 쪽에서도 유진이 챙겨주는 물건만 받을 뿐이었던지라 힐끔거리는 사람들도 선을 넘는 참견은 하지 않았다.

‘저 둘은 그냥 저런 관계? 혹시 저 둘에 대해서 아는 거 없어요?’

자기들끼리 조용히 묻는 이들도 간혹 있는 것 같았지만, 우린 그 이상의 행동거지를 한 적도 없으니 잡힐 건수조차 없었다. 대부분 우리의 관계를 멀찍이서 내다보며 수군대다가도 얼마 못 가 흥미를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우리의 관계를 두고 지루한 회사 생활을 견디기 위한 일종의 수다거리로 삼고 싶어 하는 이들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유진과 나의 관계가 전혀 그럴 일도 아니라는 걸 알고는 그들은 실망의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일이나 하지! 할 일 없는 사람들!’ 그랬기에 나는 가끔 들려오는 사람들의 수군거림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유진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젊은 처자라면 신경 쓸 만도 한데 그녀 또한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아 오히려 나는 그 점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유진도 참 만만치 않게 웃기는 처자다. 아무튼 나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놀아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런 일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유진이 내게 말을 걸면 거는 대로, 다가오면 다가오는 대로 그냥 놔두었다. 그녀가 챙겨주는 물건에 대해서는 딱히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해 받는 날이 많았다. 그냥 자그마한 간식이나 선물이기에 거절하기도 애매했다. 물론 모두에게가 아닌, 왜 나에게만 이런 것들을 챙겨주는지 의아했지만. 그러나 그때의 감정일 뿐 오래지 않아 이런 생각들은 금방 날아가 버렸다.

“어제 저희 엄마가 올라오셔서 반찬을 많이 가져다주셨는데 너무 많아요. 김치도 있고, 나물도 세 종류나 있는데 제가 다 못 먹을 것 같아서요. 혹시 괜찮으시면 좀 드릴까 하고요.”

아직 안 갔나?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내 대답을 기다리다 못한 유진이 다시 말을 걸었다. 다소 귀찮아진 마음에 나도 모르게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큰 눈망울은 물이 쏟아지듯 내게로 쏟아질 것만 같다. 대답을 찾지 못해 아무 답도 못하고 있는데, 웬일인지 나는 그 눈망울을 계속 보고 있을 자신이 없어 유진의 눈을 피하고 만다.

“…어, 아뇨. 괜찮아요. 저도 반찬 할 줄 알아요. 가끔 장모님이 와서 해주시기도 하고.”

“그런가요? 아니, 집 냉장고에 더 이상 반찬거리 채울 틈이 없어서 그래요. 냉장고가 작거든요. 서울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러니까 좀 드릴게요. 전 괜찮으니까 가져가세요. 다음 주 월요일에 가져올게요.”

이 말만을 남기고 유진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의 남색 스커트가 눈에 확 틔었다. 그녀가 의자에 앉는 모양을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계속 보고 있었다. 신경 써주는 유진이 고마웠지만, 왠지 모르게 속으로 켕긴다고 해야 하나? 그런 감정이 느껴지면 괜히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는 이유 또한 알 수가 없다. 이런 종류의 친절을 인애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받고 있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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