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_6.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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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_6.


고요한 방에 알람이 시끄럽게 울렸다. 알람이 네 번 정도 울리고 나서야 겨우 일어나 알람을 껐다. 여태 이렇게 편안히 잠이 든 적은 없는 것 같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일어나 침대에 앉으니 침대 아래로 나뒹구는 소주병이 보였다.

어릴 적, 나에겐 드물게 새 물건이 생기곤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쉽사리 내 물건이 될 수 없었다. 새 물건이 생겨 기뻐하던 것도 잠시, 정작 새것을 사도 한없이 예민하던 나는 사용하는 데에 큰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시간이 지나고 먼지가 쌓여야 비로소 새 물건은 내 물건이 되었다. 중학생 때 발견한 법칙이라고나 할까. 새 연필이던, 볼펜이던, 공책이던, 심지어 새 옷이던 모든 것은 처음에 익숙지 않다. 그러나 먼지가 쌓이면 그 위에 어느 순간부터 ‘다정함’이라는 감정이 쌓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로소 새것이 아닌 ‘내 것’이 되는 순간. 그제야 사람들은 안심하고 그 물건을 정말 내것처럼 받아들이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든 뒤로 나는‘먼지’를 좋아하게 되었다. 어딘가 슬며시 달라붙어 있는 그것을 떼어 검지와 엄지로 둥글게 굴리면 그 감촉이 따스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따금 어떤 물건을 만질 때마다 손에 닿는 먼지의 감촉이 위로처럼 다가올 때가 많았다. 아무리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실낱같은 것들도 모이고 모이면 온기를 지닐 수 있다. 그리고 그 온기를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먼지에게 배운 셈이다. 그런 먼지와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먼지처럼 작지만 따스한 온기를 전해줄 수 있는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지난밤, 유진에게 아파트 동, 호수만 알려주고 아파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날은 쌀쌀했지만 열이 나는 듯 온몸이 뜨거웠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유진을 부른 것은 실수였다. 그동안 생각해보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한 일을 나는 하고 있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나는 끝내 유진에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번 한 번만!

전화했을 때 유진은 망설였지만 금방 가겠다고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정말 유진이 와줄 것인가도 의심스러웠지만 나는 그녀를 얼마간이고 기다리기로 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아파트 입구에 서 있자 유진의 차가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내 앞에 차를 세운 유진은 창을 내리고 나에게 뭐라 말을 하려다가 대뜸 괜찮냐고 물었다. 내 안색이 안 좋았던 것인지 유진의 눈엔 아까 회식 자리에서나 보았던 걱정스럽다는 투의 빛이 서려 있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유진의 옷차림은 아까와는 전혀 달랐다. 회사에서 입고 있던 블라우스와 스커트 차림이 아닌, 얇은 잠바와 티셔츠 그리고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딱 보기엔 편한 옷차림이었지만 그녀의 모습에선 왠지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풍긴다. 그녀를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으니 유진은 잠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물먹은 듯 청초한 눈망울이 내게 머물다 앞을 향하는 모양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그녀를 항상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전혀, 거리낄 것조차 없는 것이라고.

우린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짐을 꺼냈다. 트렁크엔 유진이 들면 품을 가득 채울만한 큰 플라스틱 통이 세 개나 들어있었다. 나는 두 통을 양팔에 들고 유진은 한 통을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내가 아무 말이 없으니 그녀도 말이 없었다. 현관문을 열고 유진에게 들어오라 말했다. 집이 잔뜩 어질러져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뜸을 들이다 집 안으로 들어온 유진은 매우 놀란 듯 보였다. 그녀는 탁자 위에 잔뜩 쌓인 물건들이며 찬장에 뽀얗게 쌓인 먼지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거실과 방안에 나뒹구는 소주병들. 냉장고를 열고 유진이 가져온 반찬거리를 정리했다. 어차피 냉장고 안엔 음식도 별로 없어 그릇만 꺼내 반찬을 나누어 담고 냉장고 안에 넣어두기만 하면 끝이었다. 일을 다 끝낼 즈음 거실에서 유리병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은 소주병을 치우는 중이었다.

“이왕 온 거 제가 좀 치워드릴게요.”

“아니, 그냥 둬요.”

유진의 손에 든 소주병을 뺏어 들자 그녀는 망설이는 듯 주위를 둘러보며 “그래도….”라며 말끝을 흐렸다. 다시 날 걱정스레 올려다보며 깜짝이는 눈망울을 보니 순식간에 나는 용감해졌다. 그녀를 내 앞으로 끌어당겼고 그러자 유진은 화들짝 놀란 채 주춤거렸다. 평소라면 내가 먼저 유진의 눈을 피했을 텐데, 이번엔 그녀가 내 눈을 피한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 잡힌 팔을 거두지는 않은 채. 속눈썹을 내리깔며 괜히 다른 곳을 보는 그녀가 잔망스럽게 느껴진다. 뜨거워진 아랫도리에 피가 몰리며 서서히 고개를 드는데, 갑자기 유진은 오늘 반찬을 가져다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다른 소리를 해댔다.

“음식이 쉴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도록 나는 유진 끌어안았다. 평소라면 하지도 못했을 일을 이렇게나 유연하게 할 수 있다니. 나도 그랬지만 유진도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그녀의 몸은 굳은 듯 딱딱했지만, 명치 아래 둥그런 가슴이 부대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작은 소리로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난 이제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는다. 유진을 점차 힘주어 안으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자 야릇한 체취가 느껴졌다. 그 체취란 이성의 끈을 흐트러뜨리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녀의 목선을 입으로 훑으며 마음껏 탐했다. 그와 동시에 반사적으로 유진의 손이 내 어깨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유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거야…. 그간 나와 같은 심정으로 그녀 또한 나를 바라보던 것은 아니었을까. 게다가 유진도 술을 마셨으니 온전한 정신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목을 애무하다가 나는 문득 서러워졌다. “한 번만.” 갑자기 이런 말을 한 것도 같다. 그 한마디가 유진에겐 어떤 의미로 들렸는지 모르겠지만, 아까보다 몸이 더 굳어버린 그녀는 여러 번 나를 떼어내려다 어느 시점에선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버린 그녀의 얼굴을 찾아 입술에 키스했다. 내가 점점 더 대담해질수록 유진의 숨소리도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온순해진 그녀를 침실로 이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티셔츠와 브래지어를 순식간에 벗겨내니 거뭇하게 도드라진 유두와 하얗고 둥근 가슴이 보였다. 여자의 가슴은 신기하게도 위기감과 다정함이라는 전혀 상반된 두 가지의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그녀의 검은 유두를 입에 물곤 마음껏…. 이 모든 시간이 허락됨에 만족해하며 다른 한 손으로도 그녀의 가슴을 탐했다. 오랜만이었다. 내 머리 위로 숨소리가 오가는 것이 들렸다. 어느새 그녀의 손은 내 머리칼을 부드럽게 움켜쥐고 있다. 그녀의 온기를 느끼며 나는 이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양쪽 가슴을 번갈아 애무하던 나는 그녀의 바지를 끌어 내렸다. 순간, 인애와 은서의 얼굴이 눈앞에 스쳤으나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는 절망밖엔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애써 인애의 얼굴을 밀어냈다. 그러나 은서의 얼굴은 차마 밀어낼 수 없었다.

‘은서야, 아빠가 이런 것도 한다.’

자조적으로 은서를 불렀다. 은서를 생각하니 침대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그러나 떨리는 손은 이미 유진의 속옷을 잡아 내리고 있었다.

‘그래, 사랑하진 않으니 나는 지킬 건 지킨 셈이다.’

속으로 외친 나는 입고 있던 바지의 벨트를 풀어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발갛게 젖은 도톰한 살덩이를 입에 물었다. 그녀의 신음 소리가 방안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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