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있는 곳까지_1.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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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있는 곳까지_1.


나는 소년과 함께 밤길을 걷고 있다. 밤하늘엔 별이 가득하다. 나는 내 손을 맞잡고 걷고 있는 그의 옆얼굴을 올려다본다. 그의 얼굴은 환한 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다. 그리고 내 귓가로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흘러간다.



영원히 사랑한다던 그 맹세 잠 깨어 보니 사라졌네-

지난밤 나를 부르던 그대 목소리, 아 모두 꿈이었나 봐-



노래는 귓가를 쟁쟁 울리며 점점 커져가더니 마침내 머릿속을 진동시키고는 사라졌다. 시야가 부옇게 변해버려 소년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건 하얀 백지.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인애야 일어나. 이제 한 정거장 전이래.”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진혁이 내 팔을 잡고 흔드는 것이 보였다. 짐 챙겨. 이제 금방이야. 그는 내가 앞좌석 바구니에 꽂아놓은 생수병이며 이런저런 물건들을 재빠르게 배낭 안에 집어넣었다. 그가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저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우리가 타고 있는 기차가 역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기차에서 내려 자다 깬 얼굴로 두리번거린다. 뒤에 따라 내린 진혁은 역무실에 짐을 맡길 수 있다며 나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과연 많은 이들이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역무실로 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역무실 제일 안쪽에 짐을 내려놓고 인파가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느리게 걸어 나왔다.

“버스 타야 하는데… 아님 밥부터 먹을까?”

살펴보니 ‘보성’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식당 이름들이 여러 군데 보였다. 그제야 우리가 이곳 보성에 도착했다고 실감하며 나는 허기를 느낀다. 국밥 먹을까? 여태까지 한마디도 않던 내가 입을 열자 이번엔 그가 아무 말 없이 ‘보성 국밥’이라고 쓰인 식당으로 향했다.

국밥이 앞에 놓이자 진혁은 기다렸다는 듯 숟가락을 바삐 놀렸다. 국밥을 한 바퀴 휘젓고는 양념장을 풀어놓고 허겁지겁 밥을 떠먹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쩐지 나는 한 숟갈도 뜰 수가 없다. 그러다 그의 손에 눈길이 머문다. 서른여섯, 아직 젊은 나이지만, 그의 손은 전보다 더 거칠어지고 거뭇거뭇해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의 손뿐만이 아니었다.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도 예외는 없었다. 미간에 잔주름이 잔뜩 잡혀버렸다. 그렇게 진혁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문득 우리들의 일을 떠올리고 만다.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우리들의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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