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있는 곳까지_2.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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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있는 곳까지_2.


동갑이었던 우리는 스물일곱이 되던 해에 결혼했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진혁은 회계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꽤 3년간 알뜰하게 살았다.

미래에 관해선 별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서른이 되니 예고도 없이 우리에게도 아이가 생긴 것이다. 잠깐 당혹스러운 마음이 있긴 했지만, 나날이 기쁨이 더 커지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우리도 여느 부부들처럼 일상 속 찾아온 변화에 큰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온종일 고민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다. 좋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지만, 한번 결정이 나면 영원히 그렇게 불릴 거라는 생각이 들어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불리지도, 엄마 아빠 품에 안겨보지도 못했다. 긴 시간의 몸부림 가운데 아이를 낳은 것 같은데, 어쩐지 아무도 아이를 빨리 보여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진혁이 아이를 안은 간호사 곁에 있어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한동안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간호사 한 명이 아이를 안고 분만실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다급하게 손짓했지만, 진혁만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아이는 잠시 검사받으러 간 것이라고 걱정하지 말라며.

잠도 이룰 수 없던 이틀이 지난 후에야 나는 그에게 겨우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발열과 출혈증세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난 후 내려진 병명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 분명 아이는 건강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진혁이 아무리 따져 물어도 의사는 소아의 경우 90% 이상 거의 완치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은 나는 아이를 보러 갔다. 아직은 볼 수 없다는 의사, 간호사와의 기나긴 실랑이 끝에 겨우 만난 아이는 가느다란 팔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고 숨을 몰아쉬며 자고 있었다. 여자아이였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 아이를 껴안고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걸어왔다.

나는 산후조리를 할 새도 없이 회사로 달려가 사표를 냈다. 아이가 2년 가까이 입원하여 항암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부터 병원에서 아이와 함께 지냈다. 골수 이식수술을 네 차례나 받은 아이는 늘 힘이 없었다. 틈틈이 병은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소식들은 안도감을 주면서도 마음 한 곳엔 늘 극심한 불안을 키우기도 했다. 완치가 ‘완전히’라는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은 언젠가부터 극명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 의사의 허락을 받고 아이를 데리고 잠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6개월도 채 못 가 아이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완치된 줄 알았던 아이의 암세포가 아직 남아있었다. 진혁과 나는 다시 병원비를 벌기 위해 적금을 깨고 빚을 지고 부모님과 친척들에게도 손을 벌렸다. 예전엔 웃는 얼굴로 맞아주셨던 부모님과 친척들도 어느새 우리를 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쉽게 알아차리면서도 모른 척해야 하는 현실이 숨을 옥죄는 것처럼 느껴졌다. 죄인처럼 살고 싶지 않은데, 죄인이 되고 말았다는 죄책감까지도 떠안아야 했다.

우린 어느새 각자 양가 부모님까지도 부담으로 느끼고 있었다. 시간의 빠르기보다도 더 빠르게 그와 나는 서먹해졌고 급기야 서로를 볼 면목마저도 없어지고 말았다. 결혼하기 전에도 좀처럼 싸우지 않던 우리였지만, 이젠 서로에게 한껏 모질어지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그러는 것처럼 그도 나를 대할 때마다 얼굴 위에 도드라지는 신경질적인 표정을 숨길 수 없는 것 같았다.

진혁과 내가 그러는 사이에도 아이는 언젠가부터 ‘엄마’, ‘아빠’를 포함한 간단한 말을 하게 되었다. 힘이 없어 몇 걸음도 채 못 걷지만, 곧 숨을 헐떡이긴 하지만, 조금이나마 걸음을 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항상 푸르고(蒑) 아름답게(藇) 자라달라는 뜻을 담아 ‘은서(蒑藇)’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불렀다. 그러나 은서가 여섯 살이 되어도 병은 도저히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되기 시작했다. 병원비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진혁 덕분에 형편은 사실 꽤 나은 편이었지만, 계속되는 수술과 입원비로 가세는 점차 눈에 띄게 기울었다. 그야말로 그는‘돈 버는 기계’가 되어 회사와 집을 홀로 오가게 되었고, 나와 은서가 있는 병원엔 자주 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우린 서로에게 ‘남’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도 나도 서로에게 이미 많이 지쳐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끔 피로와 우울감이 가득한 얼굴로 그가 나를 찾아오는 날이면, 난 마주할 자신이 없어 같은 공간 안에서도 그를 피하곤 했다. 이제 나에겐 그를 반갑게 맞이해 줄 힘조차 없었다. 돈 문제로 상의할 것이 있을 때만 그가 병원에 들른다는 것은 이제 안 봐도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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