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있는 곳까지_3.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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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있는 곳까지_3.


진혁을 향해 애써 이어오던 마음, 부부의 정이 스르륵 끈 풀리듯 마침내 풀어진 때가 분명히 있었다. 큰 수술이 있는 전날 저녁, 은서가 전에 집에 놓고 온 인형을 찾기에 친정엄마에게 은서를 잠시 맡기고 우리가 함께 살던 집으로 갔을 때였다.

몇 달 동안을 병원에서만 지내다가 오랜만에 집으로 가는 그 시간이 잠시나마 즐거웠다. 버스를 타고 어둑해지는 밤거리를 물끄러미 내다보며 오랫동안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이어폰을 꺼내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도 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비로소 ‘엄마’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으로 돌아간 것 같아 갑작스레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원망과 절망의 느낌은 아니었다. 죄책감이 실린 설렘이었다. 이 감정은 온전히 내 것이었으나 이상하게도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마치 나의 것이 아닌 듯 꿈을 꾸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러나 나는 이내 이러한 감정조차도 사치라고 생각이 들어 다시금 음악을 끄고 이어폰을 가방에 넣었다.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아픈 은서를 두고 나 혼자 이런 즐거움에 빠져있을 순 없지. 진혁도 매 순간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있을 터였다. 그에겐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은 채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괜히 온다고 말하면 일찍 퇴근하여 허겁지겁 집을 치우고 있을 그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다. 함께 살던 당시에도 청소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사람이었으니까, 아마도 지금 집에 가면 집안은 굉장히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을 것이다. 결혼 전에는 바닥조차 쓸지 않던 그에게 핀잔을 준 적도 많았다. 그러나 결혼하고부터는 ‘청소야 뭐 내가 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것이 떠올랐다. 옛일을 생각하던 나는, 그를 위해 반찬거리도 좀 사서 들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틈을 타 청소도 좀 해놔야겠다고…. 그러다 문득 오랜만에 그의 손을 다정히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일었다. 그의 손을 잡아 본 적이 언제쯤이었으려나. 돈이나 집안일, 앞으로의 계획들…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이 아닌, 그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언제쯤이었으려나? 그의 다정다감한 목소리를 다시 들어볼 수 있다면, 전보다 조금이나마 더 기운이 날 것 같았다. 만일 누군가 이 또한 사치라고 말한다면, 그건 아직 젊은 우리 부부에게 너무 가혹한 일은 아닐까?

근처 마트에 들려 찬거리를 산 후 집에 도착했다. 먼저 나를 맞아준 것은 말할 수 없이 쾨쾨한 공기였다. 아니, 환기조차 하지 않고 사는 건가? 집 안 곳곳엔 지독한 술 냄새와 먼지가 배어있었다.

‘술을 마셔…?’

찬찬히 집안을 둘러보니 과연 거실과 현관 쪽에 소주병이 가득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수많은 소주병이 이곳저곳 널브러져 있어서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결혼하기 전에도 평소 술 한 잔 마시지 않는 진혁이었다. 그런데 이제 술을 마신다니? 침실로 가보니 개지 않는 이불 위와 방안에도 소주병들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베란다엔 소주병이 든 박스가 가득 쌓여있었다. 그래, 혼자 지내다 보면 마시지 않던 술이 생각날 수도 있지. 그러나 그런 동정과 이해심보다는 집안을 가득 채운 술병에 나는 그만 질려버리고 말았던 것 같다. 살면서 이만큼이나 쌓인 술병과 먼지는 본 적이 없다. 그럼, 그간 더 이상의 돈은 줄 수 없다고 말한 이유가 이것과도 연관되어 있지 않았을까…? 갑자기 배신감이 잔뜩 치미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가득 쌓인 먼지 속에서 여러 번 기침이 났지만, 말끔히 청소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은 이미 싹 가시고 없었다. 은서와 내가 병마와 싸우고 있는 와중에도 그는 이곳에서 자기만의 기분에 취한 채 술을 마셨던 것이 아닌가. 화가 나서 다시 눈물이 떨어졌고, 고개를 들어보니 거실 형광등이 나의 처지를 비관하듯 미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았다. 도대체 회사는 제대로 다니고 있는 것일까? 나는 바보처럼 울다가 사 온 반찬거리들을 쑤셔 박듯 냉장고에 넣었다. 냉장고는 예상대로 비어있었다. 그러나 청소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싱크대에 잔뜩 쌓인 그릇들만 빠르게 해치웠다. 그가 미웠다. 그릇에 담긴 음식물 찌꺼기 위로 피어난 곰팡이를 물로 박박 씻어냈다. 먼지와 곰팡이를 돌아보자니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났다. 그저 먼지만 좀 쌓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이제 우리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전혀 다른 형질로 변질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마치 곰팡이가 피어난 것처럼. 돌이킬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그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바보같이 내가 몰랐던 거지, 사랑이란 진작 사라진 것은 아니었을까?

설거지를 마친 후 깜빡이는 형광등 아래에서 밤 11시가 될 때까지 그를 기다렸다. 집에 오지 않는 것인가 싶어 연락하려던 찰나 도어락 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매우 취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집에 돌아올 땐 멀쩡히 들어올 줄 알았는데…. 그는 나를 보자마자 매우 놀란 듯 보였다.

“왜 이제 와.”

“오늘 회식이 있어서…. 온다는 말 없었잖아? 어떻게 지금…?”

“내일 아침에 은서 수술 있는 거 알아, 몰라?”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몰랐구나. 그제야 애써 붙잡고 있던 끈이 우수수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너란 인간과는 이제 끝이다. 이제 우린 허울만 남은 부부가 되겠구나. 가방을 챙겨 들고 그를 지나치려는데 그가 내 팔뚝을 잡아 나를 돌려세웠다.

“미안해. 이번 주중에 수술인 걸 알고는 있었는데, 그게 내일인 줄은 몰랐어.”

나와 눈을 맞추며 그가 하는 말의 모양새를 듣고 있자니 남아있던 미움이란 이성마저도 산산이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그를 밀쳐냈다. 아무렇게나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나는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나왔다. 그다음 날의 모든 일을 겪고도 우린 한동안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도 마찬가지로 나에게 할 수 있는 말 따윈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하필 그다음 날이었다. 여섯 살이 되고 나서 그해 처음, 은서가 골수 이식수술을 받은 날. 은서는 다른 때보다 정말 많이 힘들어했다. 저녁이 되자 아이는 어렵게 잠이 들었고, 두 시간 후에 숨을 거두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한참이나 작았던 아이. 조금이라도 힘주어 팔을 잡으면 바스라질 것 같아 아주 잠깐 매만지기에도 여러 번 망설이던 시간. 그 작은 아이가 숨을 거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제 막 따뜻해지기 시작한 조용한 봄날 밤이었다. 간호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난 은서의 자그마한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리 없이 울뿐이었다. 입에선 신음만 흘러나와 공기 중에 흩어졌다. 얼굴이 어떻게 눈물로 범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간호사들이 나에게서 은서를 떼어내려고 하기에 나는 그녀들을 한쪽 팔로 밀쳐냈다.

한참 동안 간호사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진혁이 도착했다. 은서가 숨을 거둔지 30분 만이었다. 어제 집에서 만난 그였지만, 침대 앞에 선 그를 올려다보니 훨씬 더 수척해진 얼굴이었다. 면도도 하지 않았는지 제멋대로 돋아난 수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조용히 나를 지켜보던 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제 끝났구나.”

그 말을 뒤로 지난 6년간, 내게 우는 모습 한번 보인 적 없던 그는 아무 소리 없이 몸만 조용히, 조용히 들썩이며 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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