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과 수돗물

by 김단이


비가 오기 전에 집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되니 미친 듯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려야 하는 정류장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빗속을 뚫고 그냥 뛰어가야 할까 아니면 지하철역 편의점으로 내려가 우산을 사야 할까 잠시 망설였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집까지는 걸어서 5분 이내. 하지만 빗방울의 굵기를 보니 짧은 거리라도 우산 없이 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나는, 메고 있던 가방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바로 앞 지하철역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편의점엔 우산이 남아있었고 우산을 사서 쓴 채로 느릿느릿 집을 향해 걸었다. 샌들을 신은 발은 이미 빗물에 젖어있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가방만 대충 내려놓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샤워기를 틀고 차가운 물로 샤워하는데 방금까지만 해도 찝찝했던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후덥지근 습한 공기 속에서 벗어나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니…. 빗물에 발이 흥건하게 젖었을 땐 기분이 좋지 않더니, 차갑고 미지근한 그 어디쯤의 온도를 띤 수돗물로 발을 적시니 쾌적해지는 기분이었다. 뭐 빗물보다야 깨끗한 수돗물이겠지만, 같은 성분인 물 하나에도 장소와 시간, 생각에 따라 사람의 기분이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오늘은 다소 씁쓸하다.


빗물과 수돗물 중 빗물이 더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왠지 드물 것 같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개인의 기준에서 발현하는 게 사실이었다. 어떤 이는 자연이 내려주는 빗물을 맞을 때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고 또는 빗물이 더 깨끗한 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일이 개인의 생각과 기준을 따라간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삶에서 만나는 모든 일이 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것은 빗물처럼 느껴지고 또 어떤 것은 깨끗한 물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함부로 말도 안 되는 차별을 두지 않기를. 그런 내 생각으로 인해 함부로 상처받는 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의식과 생각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 매번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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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빗물과 수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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