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동생으로부터 헌팅 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출근하던 도중 어떤 남성이 자기에게 번호를 물어봤다고.
“그래서?”
“그래서는 뭘 그래서야. 남자친구 있다고 했지.”
“그 남자가 네 맘에 안 들었구나?”
내 말에 동생은 아무 대꾸도 없이 이어폰을 꼈다. 좋겠다, 야. 어깨를 주먹으로 퍼억, 쳐도 동생은 꿈쩍도 안 했다. 우리의 관심사는 ‘남자’가 아니다. 그냥 ‘누가 번호를 물어봤다’라는 사실뿐. 동생은 소위 말하는 ‘헌팅을 당하는 일’을 종종 겪기도 했다. 동생의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오히려 내가 설레었다.
그렇다면 나는?
물론 나도 그런 경우는 있었다. 번화가를 걷고 있는데 술 취한 남자가 따라와서 번호를 물어보는 그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순수하게 ‘헌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1살 때 딱 한 번 있었다. 당시만 해도 과천에 살던 난 모든 일과가 끝난 후 저녁마다 서울대공원을 두 바퀴씩 돌곤 했다. 주말 아침에도 시간을 내어 운동을 했는데 더운 여름날이 아니면 무조건 걸었다. 운동할 때면 화장도 안 한 민낯에 헐렁이는 츄리닝 바지를 입고 티 하나만 달랑 걸친 채 열심히 돌았다. 가을이나 겨울, 온도가 낮은 날이면 그 위에 후드 잠바를 입고 뛰듯이 걸어서 땀을 냈다. 그땐 스마트폰의 음악 어플을 쓰지 않고 MP3를 사용할 때였다.
여느 때처럼 운동하려고 나온 시간, 서울랜드로 향하는 입구를 오르려는데 음량을 크게 키웠음에도 뒤에서 계속 이상한 뒤척임(?)이 느껴져 두세 번 정도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등 뒤엔 아무도 없었고, 어떤 움직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양팔을 휘저으며 조깅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족히 190cm는 훌쩍 넘어 보이는 고등학생 남자애 둘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내 양옆으로 뛰어오더니 난데없이 앞에 멈춰선 탓에 놀란 나는 ‘아악-!’ 비명을 질렀다.
“아…. 죄송합니다!”
내 얼굴을 본 고등학생들은 90도로 허리를 꺾어 사과했다. 운동하다 말고 이게 웬 봉창? 얼굴도 모르는 키 큰 고등학생 남자애 둘이 사과하니 나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왼쪽에 선 안경 낀 남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저, 혹시, 몇 살…?”
그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난 빠르게 이 둘의 의중이 무엇일까 파악하려 애썼다. 그런데 그때 내 머릿속은 꽃밭을 헤매고 있었던 걸까…? 고등학생의 나이로 답해야 하는지 아니면 현재 나이로 답해야 하는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결국 양심이 이겨서 솔직하게 말했다.
“스, 스물한 살….”
그러자 그 둘은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더니 다시 나에게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곤 그 말을 남겨둔 채, 다시 내 뒤로 달려가더니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사라졌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이것이 내 인생 처음으로 헌팅 당할 뻔한(?) 기억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젠장.
친구 중엔 지금도 열심히 헌팅을 당하는 이들이 있다. 20대만 해도 출근할 때 1번, 퇴근할 때 1번씩 누군가 번호를 물어보기도 했다는데…. 그러다 어느 날은 회사에서 퇴근하여 집으로 가는 길에 각각 다른 지역에서 남자 2명이 번호를 물어본 적도 있다고 했다. 물론 그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예쁜 친구였다. 그런데 이제 서른이 넘고 나니 아무도 자기에게 번호를 물어보는 이가 없다고…. 그게 서글퍼서 괜히 대로변을 빙- 돌다가 집에 가기도 하고, 신호등 불이 바뀌어도 건너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린 적도 많다고 했다.
“야야, 그만둬. 우리 늙어갈 동안 헌팅 당할만한 애들은 1초마다 1명씩 태어난다….”
그러자 친구는 정말 그런 거냐며 씁쓸해했다. 그래, 오랜만에 생각해본다. 그 고등학생 둘은 왜 나한테 나이를 물어봤을까? 아무 이유가 없이 내 나이가 궁금했던 걸까? 아니면 정말 예상대로 번호를 물어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나름대로 다른 이유가 될만한 것들을 떠올려 봤지만, 번호 물어보기 위한 질문이 아니고는, 모르는 애들 둘이서 나에게 나이를 물어볼 만한 마땅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에이, 됐다. 접어두자. 지금까지도 이 일을 기억하는 내가 더 한심해지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