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시외버스를 타는 일은 오랜만이었다. 갑작스레 생긴 외박 일정으로 오후 11시쯤 빨간색 시외버스를 탄다. 지금은 서울에서 경기도로 가는 길이지만, 대학생일 땐 집에 가기 위해 4년간 수원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밤에도 종종 탔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서울을 벗어날 일이 놀러 갈 때를 제외하곤 좀처럼 없다. 이 까만 밤에 회색 천장과 미색 벽이 어우러진 터널을 여러 개 지나고, 창밖엔 약속이나 한 듯 시커먼 산들이 줄지어 버스 옆을 지나간다.
어렸을 적엔 고속도로 양옆으로 펼쳐지는 새까만 산을 무서워했다. 지금도 검은 산을 보고 있노라면 여러 생각이 스친다. 빛이 없으니 갈색이나 초록 나무들도 아주 검게 변하고 마는구나. 이전엔 저기서 귀신이라도 튀어나올까 봐 고개를 돌려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저 까만 산속 나무들 사이에 어떤 낙엽이 깔려있을까, 어떤 고양이나 새, 다른 동물이 먹을 것을 찾아 낙엽을 뒤지고 있을까 생각한다. 외로울 것 같다. 산도, 나무도, 낙엽도, 천천히 산길을 헤매는 동물도.
언젠가 12학번이던 내가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80학번 선배님과 빨간색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길이었다. 창가엔 해가 질 무렵의 해가 벌거숭이 산을 군데군데 비추고 있었다. 버스가 달리는 고속도로와 산은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 나무들은 하나같이 잎이 없이 가냘픈 몸을 하고 그마저도 몇 그루 되지 않아 낙엽 깔린 갈색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나란히 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데 선배님이 말씀하셨다.
"저 산속에 해 비치는 걸 봐라. 저 나무들은 얼마나 외롭겠니?"
선배님의 말을 들으며 넌지시 산을 바라보다 도르륵,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그때의 심정으로 까만 산을 바라본다. 해가 있건 없건, 산이 붉게 물들었던 거멓던, 내가 바라보는 저 산속 저 나무는 사람의 손길 한 번이라도 받은 적이 있으려나. 그래도 어떤 나무는 그런 기억이 한 줄기라도 있겠지. 그럼 그 나무는 얼마만큼의 세월을 거슬러 과거를 떠올려야 하는 걸까. 나무가 아니니 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넘어야만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 심정을 아주 근접하게라도 바로 떠올릴 수 없어 헛헛한 마음이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뭇가지에 이는 바람이 아주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려나. 털이 얼마 남지 않은 등을 나무 밑동에 비비대는 늙은 다람쥐에게 사랑받고 있으려나. 온몸에 덕지덕지 매미 번데기를 달고 있어서 그나마 행복하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다가 아무래도 내가 외로운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