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인가 며칠 전부터 풀이 자라는 곳이면 곳곳마다 그 속에서 아주 작게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7월 중순이 다 넘어가는 계절,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리면 그때부터 이른 설렘이 시작된다. 아직 입추가 되려면 일주일 이상은 더 남았는데 매년 풀벌레들은 서둘러 자신의 존재를 알리곤 했다. 확실히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풀벌레 소리가 들릴 때면 장마는 이미 끝나있었고, 높은 온도와 습도의 한 낮이 지나 저녁이 되면 더위는 한풀 꺾여 있었다. 저녁뿐 아니라 낮에도 아주 가끔 시원한 바람이 몰래 귀밑을 스치곤 한다. 풀벌레 소리를 들은 나는 여러 번 너스레를 떨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을이 온 것 같다고. 그러면 옆에 있던 사람들은 이 한여름에 가을은 무슨 가을이냐며 우스워했다. 너 지금도 땀 흘리고 있다고 말하며. 그런 상대의 반응을 들으며 나도 웃고 만다. 그렇지만 개의치 않는다. 확실하게 나에겐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을이 벌써 성큼 다가왔다.
하반기 6월이 시작되고 끝나가는 시기보다 오히려 가을의 발걸음이 느껴질 때 나는 올해의 마지막도 머지않았음을 실감한다. 가을 냄새가 날 때마다 그제서야 생각이 짙어지는 것 같다. 이번 해를 맞이할 때의 작년 겨울 12월을 떠올리고, 1월 1일의 제야의 종소리를 기억하고,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할 때의 그 느낌과 그 후 숨 가쁘게 달려온 나날이 모두 생각난다. 올해 나는 무엇을 배웠나. 얼마만큼 성장했나. 깨달은 것이 여태 없다면 올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배움 속 마지막 페이지에 아직도 난 다다르지 못한 것일까. 남은 시간을 얼마나 더 달려야 하는 것일까…. 수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올해는 이미 배운 것이 많다. 세세하게 말하자면 끝도 없어서 겨우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부끄러움”을 배웠다. 여전히 난 철 없고 부족하지만 이제 가을로 다가서려는 한 해의 지난 기억을 떠올리자면 부끄러운 일들뿐이다. 부끄럽다. 이런 부끄러움이 견딜 수 없어질 때면 누군가 내게 한 말을 떠올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너한테 관심이 없어.”
이 말 자체도 어느 면으로 생각해보면 내게 더 큰 부끄러움을 안겨주는 것 같다. 그래, 내가 뭐라고. 이 바쁜 세상 속을 살아가며 어느 누가 나한테 자잘한 관심이나 가져줄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내가 숨기고, 지우고 싶은 말과 행동들만 기억할 수도 있지 않나.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면 끝도 없는 부끄러움의 늪 속에 빠져들고 만다. 그러나 부디, 내가 만난 타인도 나보단 자기 일이 더 중요해서 나와 관련된 기억은 그만 하찮게 생각해주기를. 잊은 줄도 모르게 잊어주기를. 가끔은 마음속으로 바라기도 한다.
가을이 온다는 것이 나만 설레는 일은 아니겠지? 새로운 바람이 불면 다른 이들에게도 이전의 기억보다 새로운 다짐이 가슴 속에서 퐁퐁 솟아오르지 않을까. 늦은 밤에도 애써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올해 여름도 지독하게 더웠다. 수많은 눈물도 빗물에 쓸려갔다.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곧 다가오는 가을과 새로운 공기를 마주할 준비를 할 것.
_
23.07.31.
풀벌레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