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by 김단이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이것저것 채워 넣는 것보다 비우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 세상, 나름대로 예쁘게 빈 마음을 가지고 살아보려 하지만 아직 날씨가 더운 탓인지 나도 모르는 새에 짜증만 더해지고 있었다. 특히 내 기준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몇 차례 벌어지면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고 그것도 모자라 마음은 한없이 불편해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불안과 짜증이 치솟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서 점차 자의식이 강해지는 건가? 이 못된 심정을 다시 어떻게 해야 제자리로 되돌릴 수 있을까 머릿속만 복잡해졌다.


나의 현 상태가 다소 걱정된다. 그렇다면 난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식으로 내게 주어진 소중한 삶과 관계를 망치기는 싫었다. 먼저 생각을 비워보기로 했다. 생각하지 않는 것. 당장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꼿꼿이 들고 눈앞에 있는 사물과 눈싸움하며 멍때리기. 시작해본다. 그러나 원체 생각이 많은 성격이라 멍때리고 있으려니 여러 잡생각이 날 그냥 두지 못하고 자기네들도 끼어들겠답시고 머릿속 잠긴 문을 두드렸다.


아, 좀! 잠깐만!


한두 번은 생각 쫓아내기에 성공했는데, 몇 분 후 편안하게 멍때리고 있는 줄 알았던 나는 또 다른 생각에 빠져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지없이 오늘 하루 일정을 머릿속으로 체크하고 며칠 전부터 마음에 걸리는 일을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도리질한 뒤 다시 멍때리기에 집중해본다. 이번엔 눈싸움이 아니라 초점도 흐리게 만든 후 그냥 멍하니 앞만 바라보기….


여전히 어렵다. 애써 멍때리기를 하는 도중 문자가 왔다는 스마트폰 신호음에 잠깐 시선을 빼앗긴 것뿐인데,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3사 은행의 계좌를 넘나들며 금액을 확인하고 있었다. 가만히 두어도 입금될 돈은 문제없이 들어오고 빠져나갈 돈도 알아서 정해진 때가 되면 나갈 것인데, 난 모든 것을 일일이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 때문에 난 집에서도, 밖에서도 늘 바쁘고 정신없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성격 자체가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인 걸 알면서도 스스로 스트레스를 키우는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10분이라도 머릿속을 비워보자고 시작한 멍때리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나를 돌아보면 남들보단 여유로운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나의 내면은 누구보다도 여유롭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면 나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법을 언젠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마치 사람이란 마음을 다루는 법을 배우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몇 분간 지속하다가 그래도 용기를 가져보자고 마음먹는다. 그래, 아무리 더뎌도 세상은 늘 한 자리에서 내가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기까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물론 내가 깨고 나와야 하는 껍질이 수없이 많긴 했지만. 외면하기보다 언제나 더딘 나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내면을 다독이는 일도 나의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었다. 모든 일엔 시간이 필요했다. 끊임없이 세상이 베풀어주는 시간을 따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채워놓은 것을 비우는 연습을 계속해서 해보자고….


하루에 10분, 멍때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눈과 귀와 머리에 담을 수 있는 신선한 것은 담아내며 내실을 다지되 때 지난 지식은 더 이상 붙들지 말고 떠나보내 주자. 그것들은 더 이상 나의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니까. 정말 필요한 때가 오면 나를 거쳐 간 모든 것은 자연히 내게 손 내밀어 줄 때가 올 것이다. 그럼 수도 없이 깨고 나와야 하는 껍질의 단면도 어느새 얇디얇아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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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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