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글이 되지 못하는 것들

by 김단이


6월 중순부터 매일 하루에 한두 페이지씩 글을 쓰고자 마음먹었다. 일요일만 쉬는 것으로 하고. 그 덕에 3년간 쉬고 있던 블로그도 다시 시작했고, 인스타그램도 부계정을 만들어 꾸준히 글을 올렸다. 그리고 늘 생각만 하던 브런치에 가입해서 작가 심사(?)를 거친 후 작가가 되어 꾸준히 활동 중이다. 그 후 일요일만 제외하고 매일같이 글을 써왔다. 한글 파일을 하루에 하나씩 만들어 수집하는 재미도 붙였고, 무엇보다 세 군데나 활동할 수 있는 SNS가 생기고 나니 간혹 귀찮아도 글을 쉬지 않고 쓸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학창 시절부터 글을 쓰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꼭 글을 써야지만 하루의 스트레스가 풀리곤 했다.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써야 거친 파도가 이는 불안정한 마음에 다시금 잔잔한 바람이 부는 것 같다. 마치 ‘착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글’엔 굉장히 예민하고 못된 심보의 나를 누그러뜨리는 힘이 있었다. 어느덧 이렇게 나의 ‘1일 1글’ 챌린지는 한 달하고도 열흘을 넘어가고 있었다.


-비밀이지만, 체력문제로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던 어느 3일은 어물쩍 넘기기도 했다.-




매일같이 글을 써내야 하다 보니 짧게는 10분, 길게는 1시간 정도 오늘은 무엇을 써야 하나 매번 주제를 고민하게 된다. 글의 ‘주제’를 잡기 위해 혼자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 뉴스나 신문을 보기도 하고 주변 친구들의 SNS 내용을 확인하기도 한다. 아니면 무심코 책을 들여다보기도 하는데, 그래도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남자친구에게 “오늘은 뭘 쓸까?”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오늘 자신에게 카톡하거나 이야기했던 주제를 다시 꺼내며 그에 관해 써보라고 권유했다. 어떤 때는 평소 내가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써보라고 하면서. 예를 들어 고양이, 식물, 가족 구성원, 떡볶이 등등. 때론 내 특정 지인을 지칭하며 내가 생각지도 못한 여러 주제를 말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남자친구의 답변을 들을 때마다 그다지 시원치 않다. 내가 원하는 답변이 아니어서가 아니다. 나도 알고 있다. 세상엔 나를 둘러싼 수많은 주제가 참 많다는 것. 그러나 어떤 주제는 쓰려고 하면 망설여졌다. 아직 나에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너무 개인적이어서 쓸 수 없는 주제도 있었지만, 사실 그런 주제는 문제 되지 않는다. 그냥 피하면 된다. 그러나 대개는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과거나 좋지 않은 추억에 진득하게 얽혀있는 것들이다. 그런 주제들은 당당하게 마주할 수가 없다. 도저히 펜을 들 수 없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몇 가지 주제들은 누군가에게 추천받으면 ‘이거 쓰면 되겠다!’라고 외치게 된다. 반짝! 머릿속에 조그마한 동심원이 그려진다. 그러나 그 순간, 이 주제를 쓰려면 피하고 싶은 나의 과거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럼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하겠지?


“네 얘기 말고 그 주제에 관련된 다른 이야기를 써 봐!”


그런데 나는 그 주제에 관해 쓰려면 도저히 나의 옛일과 기억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의 이야기가 전혀 담기지 않은 다른 내용을 쓰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겨우 한 내용을 잡아 그렇게 한 문장씩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결국 나의 이야기로 향하게 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과거를 어떻게 글로 풀어야 하는지 몰라서 망설이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기억은 글이 되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 글을 마주하기가 굉장히 꺼려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과거를 마주하는 일이 그렇다. 내 과거를 타자로 쳐내는 현재의 ‘나’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눈앞에 ‘글자’가 되어 나타나는 내 과거를 노트북 화면으로 마주하는 것도. 여전히 내겐 어려운 과제다.


알고 보니 ‘글’이란 나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나도 꺼내 보고 싶지 않아서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겨놓은 나의 비밀과 여러 속마음, 욕망과 잊고 싶은 기억을 마주하는 일. 써내야겠다는 다짐이 생기는 동시에 내 속에 있는 줄도 몰랐던, 꼭꼭 숨겨놓은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불현듯 고개를 들어 나를 조롱했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게 있을까 싶어 한글 파일을 열어 글을 쓰다가도 여러 번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오랜 시간 잊고 지내다가 그 아픈 감정을 마주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다소 충격을 주기도 했다. ‘아, 나한테 이런 기억이 있었구나. 나는 이 기억을 마주하기 싫어서 그 오랜 시간 깊숙이 묻어놨었구나.’ 이런 종류의 주제는 글이 되려면 먼저 과거의 ‘나’와 오해를 풀고 화해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러나 한 번도 그 과정을 제대로 거친 적은 없는 것 같다.


글이 될 수 있는 주제와 이야기는 정말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아직 나는 쓰지 못했다. 글을 쓴다는 건 지난날의 나를 마주하고 그를 똑바로 마주 보는 일. 현재의 내가 괜찮게 느끼더라도 과거의 ‘나’와 그 '기억'은 준비가 안 되었을 수도 있잖아? 물론, 이건 모순적인 생각이었다. 화해해야 하는 두 대상은 모두 ‘나’일 뿐이다. 그 모순은 곧 다시 형태를 달리해 나를 장악하기도 했다. 언젠간 쓸 수 있을까 싶다가도 곧 언젠간 써야겠다는 다짐, 그런 모순된 감정으로.


지금은 할 수 없지만 언젠간 해야 하는 것. 반드시 마주해야 하는 문제들. 나는 이 모든 주제를 ‘과제’라 부르기로 했다. 그러나 여전히 난 겁쟁이처럼 한쪽 벽면에 몸을 숨긴 채 얼굴만 쏙 내밀고 그들을 지켜본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처럼. 멀리 떨어진 그들을 지켜보다가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들의 그림자는 제각기 다른 모양이었지만, 나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_

23.08.02.

아직 글이 되지 못하는 것들

keyword
이전 13화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