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액세서리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늘 챙기는 액세서리들이 있다. 왼손가락 세 번째와 네 번째에 끼는 로즈골드 색의 반지 두 개, 마찬가지로 왼쪽 손목에 차는 다니엘 웰링턴 시계 하나. 그리고 여름인 만큼 더울 때 언제든지 머리를 묶을 수 있도록 시계를 찬 손목 위로 검은색 고무줄을 하나 더 챙길 뿐이다. 아침에 유일하게 신경 쓰지 않는 건 십자가 목걸이 하나다. 14살, 교회에서 입교할 때 엄마한테 선물로 받 목걸이인데, 선물 받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풀은 적 없이 마치 피부처럼 내 목에 걸려있다.
이 정도면 액세서리를 많이 하고 다니는 편인가? 다른 사람들을 보면 내 기준에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세어보니 5개나 되는구나. 아주 가끔 귀걸이를 하기도 하는데 귀걸이를 챙기기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겐 정신없지 않은 아침이 없으므로 반지 두 개와 시계 하나 그리고 고무줄 하나 챙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가끔 너무 정신이 없는 날, 반지들을 빼놓고 밖을 나서기도 한다. 그러다 보통 3층 계단을 다 내려가면 반지를 챙기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남들 같으면 그냥 가겠지만, 왠지 나는 반지가 없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손가락이 밍숭맹숭 옷을 입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다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편이다. 반지 두 개가 손가락에 자리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참고로 왼손가락 세 번째 끼는 반지는 여동생과 커플링으로 맞춘 것인데 여동생은 이제 그 반지를 착용하고 다니지 않는다. 아마도 잃어버린 것 같다. 물론, 이건 내 추측이지만. 그리고 왼손가락 네 번째 끼는 반지는 남자친구와 맞춘 커플링인데 남자친구도 역시 늘 커플링을 하고 다니지 않아서 내게 오만가지 협박을 듣고 혼이 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는 커플링을 집안에서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찾지 못한 상태다. 아무튼 의미를 잃은 두 커플링을 난 혼자서 한결같이 정성스레 끼고 다닌다. 어떠한 의미가 있다기보단 그냥 내 살붙이가 된 느낌이어서.
반지를 챙기지 못한 날은 대부분 나의 최애 다니엘 웰링턴 시계도 챙기지 못한다. 그리고 이 시계 역시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반지가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다시 집으로 뛰어 들어갈 때 챙기게 된다. 두 반지를 서둘러 끼고 시계도 얼른 찾아 왼쪽 손목에 빠르게 찬다. 그리고 또다시 밖으로 헐레벌떡 뛰어나간다. 다니엘 웰링턴은 어느 기념일에 남자친구가 선물로 준 시계다. 아마도 몇백일 기념일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언젠지는 잘 기억나지 않고, 모처럼 보너스를 받은 남자친구가 내게 평소 갖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묻기에 망설이지 않고 다니엘 웰링턴을 외쳤었다. 내 대답을 들은 그는 차라리 스마트워치를 사주겠다고 했다. 그게 더 뽀대가 난다나? 그러나 난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다. 또 클래식한 분위기나 레트로를 좋아하는 편이다. 나와는 정반대 성향이면서 기계에 밝은 남자친구는 굳이 스마트워치를 사주겠다고 고집했다. 남자친구만큼 고집이 센 나는 그에게 스마트워치는 필요 없고, 다니엘 웰링턴이기만 하면 된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스마트워치가 더 쓸모 있을 거라며 나에게 어울릴만한 색의 제품 사진들을 여러 장 보내주었다.
“생각해봐. 아무 흰 티에 검은색 반바지만 걸치면 사람이 추레해 보이잖아? 그런데 거기에 스마트워치를 찬다? 그럼, 사람이 달라 보인다니까! 그거 하나로 완전 패셔너블해지는거야.”
하마터면 설득당할 뻔했다. 그래, 스마트워치가 더 쓸모가 있긴 하겠지…. 스마트워치는 색도 참 다양했다. 남자친구는 민트색이나 특정 색 스마트워치 제품 사진들을 내게 보내주며 "너한테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러나 난 굽히지 않았다. 결국 남자친구에게 다니엘 웰링턴을 받아냈고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만일 스마트워치를 선물 받았다면 지금처럼 잘 차고 다니지 않았을 것 같다. 갈색 가죽끈에 테두리가 골드 빛인 다니엘 웰링턴은 내가 가장 아끼는 아이다.
제각각 다른 사연과 색으로 모인 액세서리들인데 이들은 어느새 자기들끼리 통일성을 띠더니 그대로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애착하는 친구들이라기보단 그냥 내가 되어버린 느낌. 값나가는 명품은 아닐지언정 나의 이미지를 만들고 나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나의 일부가 되었다.
길을 걷다가 다니엘 웰링턴 시계를 내려다보거나 두 반지를 확인하기도 한다. 가끔은 내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손때가 묻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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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3.
오늘은 풀장착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