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요기한 뒤 청소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일이 늦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바탕화면에 정리된 문서를 열어 오늘 쓸 자료들의 창을 하나씩 열어놓았다. 최근 서울시에서 새로 개설된 병원에서 내게 블로그 포스팅을 의뢰하며 보내준 자료이었다. 나는 일을 시작할 때마다 그 자료들을 다시 한번 더 차례대로 읽어본다. 이 자료에 쓰인 글들은 어쩌다 한 두 문장만 다른 똑같은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 내용을 다시 읽어가며 다른 표현과 문장을 찾아 써야 했다. 아무리 파워블로그라고 하더라도 같은 내용의 똑같은 문장으로 글을 매일같이 써내려 가면, 광고성으로 취급받는 저품질 블로그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운영하기 위해 나는 매일 한두 개씩 개인적인 일상을 담은 포스팅을 작성하기도 했다. 블로그가 최적화되기 위해서는 늘 같은 내용이나 광고, 홍보용 포스팅만이 아닌 순수한 일상이 담긴 포스팅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나는 블로그에 쓸 소재거리를 고민하고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기도 했다. 남들은 이러한 내 일을 그냥 주부의 아르바이트거리라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나는 내 일에 자부심이 있었다. 나에게 의뢰가 들어온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찍은 사진이나 글들을 블로그에 업로드하며 방문자 수를 늘리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학생 시절 때부터 취미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혼하고 나서 이 일에 더욱 열중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파워블로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올라 있었다. 결혼하기 이전까지 이렇다 할 만한 일거리 없이 아르바이트만 해왔던 나는 이 일을 업으로 삼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블로그에 포스팅을 업로드하며 나만의 일을 하고 있다. 글만 쓰면 되는 것인데 은근히 돈 버는 재미가 쏠쏠했다.
병원에서 보내준 자료들을 다 읽고 하나의 포스팅을 완성했다. 그리고 내일은 쉬고 싶다는 생각에 또다시 다른 문장, 같은 내용의 포스팅을 한글 파일에 저장해 두었다. 이젠 끝!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어제까지 모아놓았던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몰아넣고 커피를 끓였다. 벌써 베란다를 통해 햇빛이 부엌 바닥까지 비추는 걸 보니 시간이 꽤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커피포트가 미세한 소리를 내며 떨고 있는 앞에서 나는 오후 시간엔 어떤 일상 블로그를 쓸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젠 커피를 마시면서 한가로이 소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시끄럽던 커피포트가 탁, 스위치를 올리며 멈추었다. 커피잔을 꺼내 커피 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런데 그때 문밖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일정하지 않은 박자로 계속 들려오다 무언가가 밖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큰 소리로 끝을 맺었다. 우당탕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나는 그만 커피를 쏟아버렸다. 보통 소리는 아닌 것 같고, 괜히 놀란 마음에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현관으로 뛰쳐나갔다. 아파트 복도에 서서 자연스레 비닐봉지가 있는 나뭇가지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비닐봉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씨발!”
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내밀어 위를 보자 내가 있는 층에서 10층 정도 위로 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 보는 남자였다. 나도 모르게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남자와 눈이 마주쳐 조심히 고개를 빼었다. 그러자 1층 분리수거함이 있는 곳에 평소 경비원이 쓰는 청소용 긴 빗자루가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것이 보였다. 곧 빗자루가 있는 쪽으로 경비원이 뛰어왔다.
“제정신이에요? 사람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요!”
경비원이 소리를 치길래 나는 다시 위에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도록 새카만 머리칼이 긴 남자였다. 얼굴이 길쭉한 그는 멀리서 보아도 잔뜩 입술을 깨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입술을 문 채 비닐봉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경비원이 계속해서 뭐라고 소리를 지르자 그의 얼굴이 아파트 복도 속으로 쏙 사라졌다.
‘저 사람이 경비원이 말한 그 청년인가?’
경비원이 구시렁거리며 빗자루를 주워 들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농 안에 넣어둔 DSLR을 꺼내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거리를 조절하고 망설임 없이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봉지를 찍었다. 이게 블로그에 쓸 글감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찍어야겠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화면 속을 들여다보니 비닐봉지의 모습이 기괴했다. 곧 DSLR의 전원을 껐다. 그러자 나를 둘러싼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듯 느껴졌다. 또다시 알 수 없는 두통이 오고 있었다. 주위로부터 물이 들 듯 나도 이상해지고 있는 그런 기분은 오랜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