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보니 오전 9시였고 진은 없었다. 어젯밤 그렇게 불안해하더니 출근은 제대로 한 모양이다. 싱크대에 놓인 접시에 식빵 부스러기가 남아있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한편 아침을 제대로 차려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과 함께 걱정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그를 생각하며 나는 휴지통을 비웠다. 쓰레기를 버리면서 진이 말한 비닐봉지를 보기 위해. 쓰레기 봉지를 들고나와 현관문을 닫고 바깥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바로 눈앞에 앙상한 나무가 보였고 그 위 나뭇가지 꼭대기엔 검은 비닐봉지가 매달려있는 것이 보였다. 진이 말한 대로. 바람이 불자 비닐봉지가 흔들렸다. 하지만 바람에 펄럭이는, 예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낼 뿐 새벽에 들었던 캔이 부딪히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역시 어제 누군가 쓰레기를 요란하게 버렸던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본래부터 민감한 성격인 진은 지금 회사에서 한창 프로젝트를 맡고 있던 터라 더 예민해져 있는 것이라고 난 생각했다. 내려놓았던 쓰레기 봉지를 들고 복도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비좁은 그 안엔 위층에 사는 이웃과 그녀의 아들이 앉아있는 휠체어가 보였다. 이 이웃 아줌마는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시간씩 지체장애인 아들이 탄 휠체어를 밀면서 동네를 산책한다. 이웃 아줌마와는 눈인사를 많이 나눴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그녀가 인사했다. 항상 미소를 띤 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는 그녀에게 나도 “안녕하세요.” 딱히 그 친절을 거절할 이유가 없어 웃으며 인사했다. 그러자 휠체어에 앉은 아이가 나를 힘겹게 올려다보며 아는 체를 했다. 건조한 목소리를 가진 아이의 무릎을 덮은 빨간 담요만이 생생한 기운을 내뿜는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아줌마는 내가 설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아휴,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죠? 이제 옷 정리를 시작해야 하는데…. 어젯밤엔 바람도 많이 불더라고요.”
아줌마가 너스레를 떨기에 나는 예의상 “예, 그러게요” 하고 답할 뿐이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아줌마와 나는 서로 문을 잡아주며 차례대로 내렸다. 아줌마를 뒤로하고 쓰레기더미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쓰레기 봉지를 들고 분리수거함이 있는 곳으로 가자 멀지 않은 곳에서 경비원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쓰레기더미가 쌓여있는 공간 맨 위에 우리 집 쓰레기 봉지를 올려놓았다. 손을 털고 경비원의 옆을 지나가며 그를 흘끔 쳐다보았다. 그는 분리수거함 가까이에 심어진 나무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비닐봉지가 걸려있던 그 나무다.
"에, 저걸 어떻게 걷어내지?"
내가 관심을 보이는 걸 알았는지 경비원이 먼저 말을 걸었다. 그는 멋쩍은 듯 웃으며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요즘 저거 때문에 민원이 많이 들어오네요."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나무 위를 바라보는 그의 말이 어떤 대답을 바라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진도, 경비원도 저 비닐봉지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들었다.
"저게 도대체 왜요?"
"1층에 사는 청년이 자꾸 저 비닐봉지 때문에 고시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하는데, 나한테 그렇게 저걸 떼어달라고 해서요."
"눈에 거슬려서요?"
"아니, 저 비닐봉지에서 소리가 난대요."
"소리요?"
"쥐가 싸우는 소리가 난대나 뭐라나…."
"쥐요?"
"쥐가 아니라 고양이에요!"
깜짝 놀라 되묻자 아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았던 이웃 아줌마가 소리쳤다.
“저기에 새끼고양이가 들어있는 것 같아.”
그는 아들이 탄 휠체어를 천천히 밀며 우리에게로 다가왔다.